대진여객 소속 187번 산타버스 철거 전 내부. 천장은 소복하게 쌓인 눈과 구름을 연상시키는 솜으로 꾸몄고 의자에는 커버 대신 산타 모자를 씌웠다. 주형민 씨 제공
매년 연말마다 부산 도로를 훈훈하게 했던 ‘산타버스’를 올해부터 볼 수 없다. 내부 화려한 장식으로 인한 화재 위험이 산타버스를 멈춰 세웠다.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지만 시민들 사이에선 크리스마스의 ‘낭만’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크다.
지난 1일 버스 기사 주형민(51) 씨는 여느 연말처럼 산타버스에 시동을 걸었다. 차고지인 기장군 대진여객부터 대룡마을까지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대진여객 소속 187번 버스다. 버스 내부 천장은 소복하게 쌓인 눈과 구름을 연상시키는 솜으로 꾸몄다. 의자에는 커버 대신 산타 모자를 씌웠다. 평범한 버스를 산타버스로 꾸미는 일은 주 씨가 12월마다 사비를 들여 치르는 연례행사다. 2016년 회사에 처음 입사하며 자기소개서에 쓴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기사가 되겠다”는 말을 지키고자 9년째 겨울마다 산타버스를 운행한다.
특히 올해는 기존 구형 버스 대신 최신형 수소 전기버스를 산타버스로 꾸몄다. 주 씨는 “크고 넓은 새집에 이사와 설레는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달 말부터 약 10일간 총 67시간을 들여 새 산타버스를 완성했다. 한 달 치 월급이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래도 매년 잊지 않고 산타버스를 찾아오는 승객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산타버스를 준비했다. 산타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승객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진 버스 안에는 캐럴이 흐르고 산타복을 입은 주 씨가 승객을 맞이했다. 크리스마스 조명 아래서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주 씨는 마치 진짜 산타가 된 기분이었다.
11일 대진여객 소속 187번 산타버스 장식을 급히 철거 중인 모습. 주형민 씨 제공
그러나 주 씨의 산타버스는 크리스마스를 맞기도 전에 불이 꺼졌다. 부산시는 지난 7일 부산버스운송여객조합에 산타버스 내부 장식 철거를 요청했다. 화재 등 재난 상황에 대한 안전 우려 때문이다. 시는 산타버스의 화재 위험성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고 이에 대해 검토했다. 그 결과 내부를 꾸민 솜이나 비닐이 불에 타기 쉬운 소재라 화재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전선과 트리 장식이 떨어지면 승객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운행을 시작한 지 겨우 열흘이 지난 11일, 산타버스 장식을 모두 떼어낸 주 씨는 당황스럽고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주 씨는 “버스 회사에서도 산타버스를 계속 운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의견을 전하는 등 많은 도움을 줬지만 결국 철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원래는 떼어낸 장식을 보관했다가 다음 해에도 사용하기에 하나하나 신경 써서 천천히 제거했지만, 당장 내일부터 장식 없이 운행해야 하는 데다 버스 내부 장식이 금지돼 이제는 쓸 일도 없기에 1시간 만에 공들여 한 장식을 급히 떼어냈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허전한 마음을 전했다. 자신을 8살 아이 엄마라고 소개하며 주 씨의 SNS에 댓글을 남긴 한 시민은 “지난해 아이와 함께 산타버스를 탔고 올해도 산타버스를 타기 위해 다음 주 부산 방문 일정을 잡고 숙소도 예약해 놓았는데 장식이 모두 철거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며 “산타버스는 아이들에게 행복을 줄 뿐만 아니라 부산시를 더 알릴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산타버스가 좋은 취지로 운영되고 있고 많은 시민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대중교통은 안전이 우선이기에 이를 고려하면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산타버스 4개 노선(187번·508번·3번·109번)과 인형버스(41번)의 시설물은 철거 작업을 밟게 됐다.
11일 대진여객 소속 187번 산타버스 장식을 급히 철거 중인 모습. 주형민 씨 제공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