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수인 줄’ 이웃에 빙초산 줘 숨지게 한 시각장애인, 법원 판단은

입력 : 2024-10-25 10: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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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과실치사 80대에 금고 4개월·집유 1년 선고
재판부 “주변 사람에게 음료수병 맞는지 확인했어야”

울산지방법원 전경. 부산일보DB 울산지방법원 전경. 부산일보DB

빙초산을 음료수로 착각해 이웃에게 줘 숨지게 한 80대 시각장애인이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울산지법 형사4단독 정인영 부장판사는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여) 씨에게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시각장애 1급인 A 씨는 지난해 9월 울산시 북구 자택 인근 평상에서 이웃들과 이야기하던 중 친분이 있던 B 씨와 C 씨 목소리가 들리자 집에서 음료수 2병을 꺼내 와 건네줬다. 평소 B 씨 차를 얻어 타는 것이 고마워 자주 음료수를 줬다고 한다.

한데 C 씨가 갑자기 “속이 탄다. 속이 답답하다”며 고통을 호소하더니 화장실로 가 구토했다. 옆에서 보던 다른 이웃이 C 씨가 마신 음료수병을 찾아 근처 약국에 가보니, 약사가 “마시면 안 된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C 씨는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중 사망했다. 비타민 음료수를 마신 B 씨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조사 결과, A 씨가 C 씨에게 건넨 음료수병에는 ‘식용 빙초산’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유통기한 또는 제조 기한으로 보이는 2011년 8월 30일 날짜가 표기돼 있었다.

재판에서 A 씨는 시각장애로 문자를 볼 수 없고 색깔을 구별할 수 없으며 눈앞에 움직임이 없으면 사물을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 씨가 시각장애인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음식물을 건넬 때 독극물은 아닌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시력이 나빠 구분할 수 없다면 주변 사람에게 음료수병이 맞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비타민 음료수병은 매끈하지만 빙초산 병은 주름이 있어 A 씨가 촉감으로 다른 병인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봤다.

A 씨는 자기 냉장고에 빙초산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재판부는 최소 12년 이상 된 빙초산의 제조 또는 유통기한을 고려할 때 A 씨가 과거 냉장고에 넣어둔 사실을 잊고 지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내용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다만,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이 받은 병의 내용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마신 점, 유족들과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나이 등을 참작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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