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최대 아트페어로, 부산을 대표하는 ‘아트부산 2025’가 8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4일간의 화려한 미술 축제의 막을 올렸다. 올해 제14회 아트부산은 17개국 109개 갤러리가 참여한 가운데 11일까지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계속된다. 9일 일반 관람과 함께 개시된 아트부산의 담론 프로그램 ‘컨버세이션스’(CONVERSATIONS)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커넥트’(CONNECT) 섹션에 출품(맥화랑)된 부산 방정아 작가의 대형 걸개형 천 작품 ‘얼씨구 절씨구’와 ‘올리버 스톤의 수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경계를 가르고 흐르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조명하며, 우리가 믿어왔던 빛과 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얼씨구 절씨구’는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반복되는 몸짓을 통해 저항과 체념, 그리고 그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낸다. ‘올리버 스톤의 수영’은 핵과 전쟁을 다룬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을 모티브 삼아 우리가 믿어온 가치와 서사가 실재하는 것이지, 혹은 조작된 믿음에 불과한 것인지 묻는다. 이 작품은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방정아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였던 것으로, 국내에선 처음 공개됐다.
아트부산 개막 전날인 7일 오후에는 전야제 격으로 커넥트 섹션에서 다뤄질 정현 작가의 대형 조각 작업을 수영구 도모헌(옛 부산시장 관사) 야외 공간에서 선보였다(PKM 갤러리). 이 작업은 침목, 고철, 잡석 등 오래돼 버려진 재료를 재구성해 높이 4m에 달하는 조각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정현의 대표작 ‘서 있는 사람’으로, 행사 경계를 확장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이 외에도 커넥션 섹션에는 각 갤러리가 판매와는 별도로 자체 기획한 작가들의 단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24년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관의 대표 작가로 선정된 마시모 바르톨리니(마시모데카를로), 엘살바도르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한 스튜디오 렌카(탕 컨템포러리 아트), 독일 미술계에서 먼저 주목한 이소연(조현화랑), 삶 속의 사물과 노동의 흔적을 탐구하며 이를 작품으로 재구성한 권용주(이아), ‘가파도 레이크’ 연작을 통해 생태·문화 혹은 내러티브를 가진 소재를 발견해 서술하고 기록한 이소요(피에스센터), 해운대 장산·지리산 등을 콘크리트와 레진으로 선보인 ‘심산’ 시리즈의 전아현(리나 갤러리), 예술과 공학의 융합을 보여주는 신교명(로이 갤러리),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래밍된 자율시스템을 사용해 작품의 일부 또는 전체를 제작하는 미술 저작물인 ‘제너러티브 아트’(Generative Art) 방식의 조형 언어를 선보인 강영길Ⅹ웨스트월드(갤러리 M9)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은 기존 아트페어의 형식을 뛰어넘는 실험적 기획을 조명한다는 취지 아래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관객 참여형 작업 등으로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아우르는 큐레이토리얼 프로젝트인 셈이다.
올해 아트부산은 이처럼 특별 전시 섹션인 ‘커넥트’에 공을 들이는 등 외연 확장에 상당히 신경 쓴 모습이 역력했다.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한 고원석 라인문화재단 디렉터를 총괄 큐레이터로 위촉해 ‘영토와 경계’ 주제전을 맡기는 등 총 11개의 커넥트 전시를 진행했다. 고원석 총괄 큐레이터는 “비수도권 아트페어 중에선 유일하게 수도권 아트페어와 동등한 무게를 지니는 게 아트부산일 것”이라면서 “아트페어 본연의 목적인 마케팅을 위한 붐업도 필요하지만, 중견 기획자를 섭외해 전시(‘커넥트’ 주제전 외)도 열고, 신진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아트 악센트’ 섹션) 등으로 미술 생태계 구축을 위한 아트부산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권도연, 김상돈, 김옥선, 박기원, 알렉산더 우가이, 호우이팅 등 6인이 참여한 주제전 ‘조각난 세계, 살아 있는 것들’은 아트페어 부스가 상징하는 영토의 인위적 개념을 재고하는 데서 출발했다. 참여 작가들은 다양한 영토의 경계면을 인식하는 사유하는 존재들인 셈이다. 권도연은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일상적 시선으로 포착되지 않은 대상을 주목한다. 김상돈은 과거 망자를 저승으로 운송하는 거대한 상여와 거대 자본이 개인을 삶을 지배하는 현실을 상징하는 쇼핑 카트가 결합된 대형 설치조각 작품 ‘카트’(2019~2020)를 선보인다. 오랜 기간 다양한 주변적 대상을 담아온 김옥선은 사회적 구조가 강권하는 무게를 관통해 온 세 사람을 삶을 추적하고, 박기원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해 공간을 확장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또한 알렉산더 우가이는 과거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 3세이고, 여성 노동자의 익명성을 다룬 영상을 발표한 호우이팅은 대만 작가이다.
신진 갤러리를 위한 ‘퓨처’(FUTURE) 섹션에서는 CDA, CUT ART, WWNN 등 국내외 갤러리 19개가 참여해 부스를 꾸몄다. 올해는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으로 참여 작가 중 1명에게 1000만 원을 수여하는 ‘퓨처 아트 어워드’가 신설됐는데, WWNN 갤러리 소속의 중국계 캐나다인 제프리 청 왕(1979 년생)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에는 고원석 라인문화재단 디렉터, 이장욱 스페이스 K 수석 큐레이터,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가 참여했다.
또 부산·울산·경남 지역 기반의 신진 작가 7명(편대식 박시월 김지수 최민영 밍예스 어밍 방상환)도 공동 기획 전시 ‘아트 악센트’를 선보이고 있다. 이들 중 1명에게는 2026년 아트부산에서 단독 부스를 낼 기회가 제공된다.
한편 첫날 프리뷰 행사가 진행된 벡스코에는 박형준 부산시장,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 관장, 박양우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은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주한스위스대사관 다그마 슈미트 타르탈리 대사, 주한헝가리대사관 이슈트반 새르더해이 대사, 개러지 현대미술관 안톤 벨로브 관장, 샤넬 코리아 클라우스 올데거 대표이사, 주중 프랑스 상공회의소 파비앙 파코리 부회장 등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아트부산 정석호 대표는 “올해 아트부산은 ‘예술 그 이상의 경험’을 지향하며, 미술의 다양한 지형을 탐색하는 전시를 구성하고자 노력했다”며 “구성과 도시의 결을 깊이 들여다보는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아트부산과 함께 새로운 영감을 만끽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트부산 입장권은 1일권 4만 원, 3일권 6만 원이다. 관람 시간은 9~10일 오전 11시~오후 7시, 11일 오전 11시~오후 6시이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