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사진 한 장 보고 ‘K시리즈’ 방아쇠 당겼다… SNT모티브 이병완 CTO에게 듣는 한국 소총史

입력 : 2025-05-25 08:00:00 수정 : 2025-05-25 09: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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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개인화기 K1 첫 양산
도면도 없이 ‘맨땅에 헤딩’ 제작
기관총·권총까지 국산화 성공

가성비·내구성 뛰어난 K총기
23개국에 180만 정 수출 성과

최근 국산 소총 현대화 적극 나서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K13 개발

SNT모티브 이병완 부사장은 국산 소총의 시초인 K1 제작 때부터 참여한 우리나라 소총 역사의 ‘산 증인’이다. 이 부사장이 K2 소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SNT모티브 이병완 부사장은 국산 소총의 시초인 K1 제작 때부터 참여한 우리나라 소총 역사의 ‘산 증인’이다. 이 부사장이 K2 소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가스 조리개가 사라졌습니다.”

우리 군의 주력 화기인 K2 소총의 부품 중 하나인 가스 조리개가 분실되면 그날은 온 분대가 완전 군장을 하고 연병장을 돌 각오를 해야 했다. 그만큼 군인에게 개인화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기억하게 하려 했던 중대장의 얼차려였을 것이다.

군인에게 개인화기는 생명을 지키는 소중한 도구다. 이러한 점을 알기에 SNT모티브 이병완 CTO(부사장)는 총열 길이, 강도, 손잡이 재질까지 총기 디테일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 부사장은 1982년 방산특례요원으로 대우정밀공업(SNT모티브의 전신)에 입사해 기술연구소, 품질본부장 등을 거친 전문가다. 우리나라 소총 개발 ‘역사’인 이 부사장으로부터 소총의 ‘A부터 Z까지’를 들어봤다.

■‘피나고, 알 배기고, 이 갈리는’ 개발

소총예비훈련(Preliminary Rifle Instruction)은 병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훈련 중 하나다. 소총예비훈련의 영어 앞 글자를 따 ‘피알아이’라고 부르는데 어찌나 힘든지 병사들은 피(P)나고, 알(R) 배기고, 이(I) 갈리는 훈련으로 부르게 됐다. 소총이 전투력의 중요 요소라는 점을 방증하는 명명이기도 하다.

한국 소총은 K시리즈로 시작된다. 원래 한국군은 미군이 제공한 무기를 주로 사용했다. M1 카빈 소총, M16 등이 주요 전력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자주국방을 위해 무기 국산화를 추진했다. 1973년 국방부 조병창이 설립됐고, 1982년 민영화를 거쳐 대우정밀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결과 기관단총 K1이 1981년, 소총인 K2가 1985년 양산에 들어갔다. K1, K2 제작에 참여한 이 부사장은 곧이어 K2에 부착되는 K201 유탄발사기, K4 고속유탄기관총 개발에도 참여한다. 이 부사장은 “K1, K2 제작 때도 그랬지만 총기 제작 도면은 외부 반출이 안되는 보안 문서라 개발팀 대부분은 미국 고속유탄기관총 사진 한 장이나 실물을 한 번 보고 ‘맨땅에 헤딩’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해외 무기를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고 고민에 고민을 더해서 프로토 타입을 만들더라도 개발 완성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총열 마모 문제, 혹한기 야외 테스트 등 테스트마다 고배를 마시는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제대로 된 도면 하나 없이 시작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 부사장은 “테스트 실패가 반복되면 시험 요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병가를 내는 직원도 있었다”며 “혹한기에는 한 번이라도 더 테스트를 하기 위해 외부에서 머물다 손가락이 얼어 제대로 당길 수 없게 돼 결국 고무 밴드를 손가락에 감고 테스트를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개발, 테스트, 실패, 재개발, 테스트, 실패가 이어지며 실험실 바닥은 늘 깨진 부품 조각으로 가득했다. 이 부사장을 비롯한 연구팀의 ‘피알아이’ 노력으로 K1, K2에 이어 1985년 K201 유탄발사기, 1994년 K4 고속유탄기관총을 본격적으로 만들었다.

■뚜렷한 사계절은 한국 무기의 장점

총기 국산화를 이룬 한국군은 어느덧 무기 수출국이 됐다. 특히 이 부사장은 그 배경으로 가성비와 내구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특히 내구성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다. 이 부사장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과 영상 30도를 훌쩍 넘는 여름, 엄청 습한 장마철과 건조한 봄, 염분 많은 지역, 모래 지역 등에서 이상 없이 사용되는 무기는 드물다”며 “한국은 뚜렷한 사계절에서 전투를 해야 하기에 내구성만큼은 어디 내놓아도 안 빠진다”고 말했다.

남미의 한 국가에서는 K2C 소총이 진흙탕에 빠지고도 오작동 없이 연속 사격이 가능했다고 놀라움을 표한 적도 있다. 건조한 사막 지형이 많은 중동 지역에서도 한국산 기관단총 K1, 소총 K2, 권총 K5가 현지 경찰과 군에 제공됐다. 당시 중동 지역은 전쟁 중이었기에 실전에 가장 적합한 총으로 한국산이 선택된 셈이다.

2013년 대한민국 최초의 저격총인 K14가 본격 생산됐다. 이 저격총은 800~1000m 거리에서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다. 특전사, 해병대, 경찰특공대 등에서 K14를 운용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이 총기를 수입해 실전 배치하기도 했다. K14는 동계 작전이나 고산지대 등에서도 성능 저하가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산지대를 병참 기지로 삼는 남미 국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SNT모티브의 총기 180만 정이 해외 23개국으로 퍼져나갔다.

이 부사장은 “실전에서는 어떠한 상황을 만나게 될 줄 모르는데 소총의 기기 고장은 우리 군인의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발자의 마음”이라며 “한국의 어떤 지형과 환경에서도 이상 없이 작동되는 총기를 연구했는데 이게 글로벌 경쟁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소총도 커스터마이징 시대

2000년 이후 SNT모티브는 국산 소총의 현대화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K2의 개량형인 K2C1이다. 이 소총은 현대 보병의 작전 환경에 맞게 광학조준기 장착, 가변형 개머리판 등으로 개량돼 있다. 기존 K2보다 사용자 편의성과 부착 장비 호환성이 크게 향상됐다. K1A 기관단총 또한 근접 전투에 적합하게 개량돼 특수부대에 공급됐다.

이 부사장은 국산 소총 현대화의 완결판으로 최근 개발 완료한 K13을 꼽았다. 이 부사장은 “K2 소총을 개발할 때는 미국인 기준으로 만들어진 M16을 한국인에게 맞도록 만드는 것이 과제였다면 K13은 병사 한 명 한 명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만드는 것이 과제”라며 “개인의 전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인화기의 커스터마이징이 쉽게 가능할 수 있도록 연구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에서 보급되는 개인화기의 커스터마이징은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음기, 레이저표시지시기, 야간투시경 등 전투력을 높일 수 있는 장비 장착에서부터 개머리판 길이 등도 자신에 맞게 바꿀 수 있도록 K13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를 일부 부대에 보급했다. 이 부사장은 “전장에서는 작은 차이가 군인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고 지킬 수도 있는데 자신에게 맞춰진 무기라는 생각은 그 작은 차이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는 군인들을 위해 믿을 수 있는 화기를 만들고자 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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