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이 자기주식 전량을 기초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기로 하면서 논란에 휩싸이자 연말까지 1조 원 이상의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해명에 나섰다. 주주환원을 위해 자사주 소각을 하는 것보단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가 먼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자 법 시행 전에 자사주를 최대한 활용해 투자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일종의 ‘꼼수’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더군다나 태광산업은 높은 신용도에 저리로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외부 차입이 충분한 상황이지만 사실상 유상증자와 동일한 교환사채 발행으로 기존 주주를 희생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태광산업은 1일 화장품·에너지·부동산개발 관련 기업 인수와 설립을 위해 내년까지 1조 5000억 원가량을 투입하는 투자 로드맵을 세웠다고 밝혔다. 올 연말까지 1조 원가량을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회사 측은 “정부 정책을 반영해 자사주를 소각하고 이를 통해 주식 가치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적극적인 투자와 사업 재편을 통해 생존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앞서 태광산업은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자사주 전량(지분율 24.41%)을 교환 대상으로 하는 3186억 원 규모 교환사채(EB) 발행을 의결했다. EB는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나 다른 법인의 주식으로 교환해 줄 수 있는 회사채로 사실상 3자 배정 유상증자와 유사하게 기존 주주들의 지분이 희석되는 효과를 낳는 것이어서 논란이 불거졌다.
태광산업은 현재 유보금으로는 투자자금을 충당할 수 없어 외부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월 말 기준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금은 1조 9000억 원 수준인데 실제 신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은 1조 원 미만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재계에선 태광산업의 부채비율이 1분기 말 기준 16.1% 수준으로 극도로 낮은 만큼 EB 말고도 금융권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적정 수준의 부채비율은 100~200%로 보는데 태광산업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1분기 말 기준 태광산업이 발행한 회사채는 전혀 없고 은행 차입금은 876억 원에 그쳤다. NICE평가정보 기준 태광산업의 신용등급은 A+로 4% 내외의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태광산업 관계자는 “선대 회장 때부터 외부 차입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경영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런 경영 DNA가 이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자사주 소각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EB를 발행을 의결했다는 꼼수 논란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정부·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는 시점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번 결정은 경영상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과 주주 보호 정책을 회피하려는 꼼수이자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30일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사들의 위법 행위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더군다나 태광산업이 발표한 투자 계획은 이미 2022년에 예고한 것이다. 당시 태광산업은 10년간 10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으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부재를 이유로 투자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재원을 마련할 다른 방법도 많고 시간도 충분했다”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발표되자 EB 발행을 결의한 것은 자사주 소각은 피하겠다는 오너의 선언처럼 읽힌다”고 해석했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회사 자금 횡령·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되면서 태광그룹 회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8년여에 걸친 법정 공방을 벌였고 실형이 확정된 이후엔 병보석으로 나왔다가 무단 외출 등 ‘황제 보석’으로 파장이 일었다. 2018년 말 다시 구속 수감된 이 전 회장은 2019년 6월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고,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이후 2023년 8월 15일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복귀를 미루고 있다.
송상현 기자 songs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