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서 5명이나 왔네” 통영 섬마을 학교 살리기 대작전

입력 : 2025-08-28 08:00:00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전교생 7명으로 쪼그라든 100년 학교
욕지초등 살리기 위해 주민 추진위 구성
주민들이 앞장 서서 집 마련해 수리까지
"자녀 동반 전입 땐 거주지·일자리 제공"
올해 초등생 3명, 유치원생 2명 유치 성공

통영시가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에 처한 욕지초·중학교를 위해 추진한 ‘욕지도 자녀동반 전입세대를 위한 빈집 리모델링 등 주거지원 사업’ 첫 수혜 가족이 지난 22일 정식 입주했다. 통영시 제공 통영시가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에 처한 욕지초·중학교를 위해 추진한 ‘욕지도 자녀동반 전입세대를 위한 빈집 리모델링 등 주거지원 사업’ 첫 수혜 가족이 지난 22일 정식 입주했다. 통영시 제공

경남의 한 섬마을 주민들이 뭉쳐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에 처한 100년 학교 지키기에 나섰다. 어린 자녀와 함께 마을에 정착하는 이들에게 새 보금자리와 일자리를 제공하며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학생 수 증가를 현실로 만들어 내고 있다. ‘환상의 섬’이란 애칭이 붙은 통영 욕지도 이야기다.

27일 통영시에 따르면 욕지초·중학교 살리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욕지도 자녀동반 전입세대를 위한 빈집 리모델링 등 주거지원 사업’ 첫 수혜 가구가 지난 22일 서촌마을 리모델링 하우스에 정식 입주했다.

주인공은 대구에서 이사 온 김수탁(가명) 씩 가족이다. 초등 2학년, 4학년 남매를 포함해 5명이 욕지도에 새 둥지를 텄다. 아이들은 내달 1일부터 욕지초등으로 등교한다. 덕분에 현재 7명이 전부인 욕지초등 학생 수는 9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욕지도는 김 씨 자녀 외할머니 고향이다. 올해 초 욕지도에 놀러 왔다가 ‘욕지 학교 살리기 추진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 하지만 대도시인 대구에서 성장한 이들이 외딴 섬마을 정착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았다. 설왕설래하던 김 씨 마음을 다잡은 건 추진위의 진심어린 조언와 통영시의 든든한 지원이었다.

추진위는 욕지초등 졸업생과 주민들이 동네 학교를 살리려 작년 9월 결성된 단체다. 욕지초등은 1924년 원량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해 100년 동안 75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1946년엔 욕지공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욕지중학교가 문 열었다.

하지만 여느 섬이 그렇듯 열악한 정주 환경과 접근성 탓에 인구 유출이 가속화하면서 한때 2만 명을 자랑하던 주민 수는 올해 3월 말 기준 1291세대, 1905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심지어 2022년 이후 욕지도에서 태어난 아기는 작년 1명이 전부다. 이 때문에 전교생이 15명인 욕지초·중학교 역시 폐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추진위는 올해 초 유튜브에 ‘작은 학교에서 시작되는 큰 꿈, 욕지초등학교, 욕지중학교로 오세요’란 영상을 게시했다. 영상에는 자녀와 함께 이주 시 제공되는 주거와 일자리 혜택 그리고 장학금, 공부방, 골프, 스노클링 등 사교육 걱정 없이 작은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담았다.

통영시 욕지도 주민들이 새로 전입하는 가족이 생활할 빈집을 손수 정비하고 있다. 통영시 제공 통영시 욕지도 주민들이 새로 전입하는 가족이 생활할 빈집을 손수 정비하고 있다. 통영시 제공

작은 희망을 품고 올린 영상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전국 각지에서 문의가 빗발쳤고, 추진위는 끈질긴 설득 끝에 3학년 학생 1명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학교 인근 빈 집을 전학생 가족을 위한 보금자리로 꾸몄다. 바로 ‘둥지 1호’다. 리모델링 비용은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했다. 전학생 아버지 일자리는 욕지수협에서 책임지기로 했다.

기대 이상의 호응에 통영시도 거들고 나섰다. 올해 제1회 추경에 빈집 정비 예산 8000만 원을 편성했다. 특히 전입 희망자가 원하는 빈집을 대상으로 실 소유자와 협의를 거쳐 리모델링하는 맞춤형 정비로 예산 낭비를 막고 만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이번에 김 씨 가족에게 제공된 ‘둥지 2호’가 이를 통해 탄생한 공간이다. 김 씨 가족은 이곳에서 3년간 무상으로 머물 수 있다. 통영시가 입주 가족 대신 집 주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월세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둥지 3호’도 준비 중이다. 3호는 경북 예천에서 유치원생 자녀 2명과 함께 전입하는 허태웅(가명) 씨 가족 몫이다. 허 씨 가족은 이미 임기 주거지로 이주를 마쳤다. 자녀들은 욕지초등 병설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추진위는 3호 입주가 마무리되면 이웃과 함께 조촐한 환영식을 열 예정이다.

욕지학교 살리기 추진위원회 김종대 위원장은 “주민이 직접 페인트통을 들고 입주할 집을 깨끗하게 도색하고 청소까지 했다”면서 “새 가족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뿌리내리도록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통영시는 관련 예산 늘려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천영기 통영시장은 “이번 사업성과를 바탕으로 9월 2회 추경에 추가 예산을 편성해 섬 지역 교육 정주여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부산온나배너
영상제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