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신공항, 2030부산월드엑스포,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비롯한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부울경에서는 귀가 따갑도록 듣고, 눈에 선할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로 다뤄지는 이슈들입니다. 오늘 브레드는 지겹도록 얘기하는 이 개별 사업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이슈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이 뿌리에 대해서도 우리 부울경 시민들은 몸으로 절박하게 느끼고, 만나기만 하면 맞장구를 쳐가며 이견 없이 이야기 나눕니다.
바로 지방 소멸입니다. 시나브로 스러져 가는 부울경을 살리기 위해 국가 프로젝트인 엑스포를 유치하고, 그 준비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간접자본을 갖춰보려는 겁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해당 기관이 담당하는 관련 산업까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분산시키려는 목적의 정책이지요. 부산의 경우 해양·금융·영화 3개 분야 1차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이전 기관 구성원의 부산 정착 만족도가 꽤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역 청년들에게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수도권의 구심력이 압도적인 우리나라에서 부울경은 계속 시들어가는 중입니다. 지난해 10월 BNK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동남권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6개 경제권역 중 부울경(동남권)이 최근 10년간 순유출 인구가 28만 8000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대구·경북권이 2위(19만 5000명)인데 1위와 2위 격차가 무려 9만 3000명에 이를 만큼 압도적입니다.
전기료 차등제 논의는 이렇게 말라가는 부울경에 조그만 물길이라도 내보자는 차원에서 제기된 문제였습니다. 올해 들어 핵발전소 내에 폐연료봉 건식저장시설을 짓겠다는 정부와 한수원 방침이 확고해지면서 핵발전소 주변 지역의 전기료는 할인하고, 필요한 전력량의 10분의 1도 생산하지 못하는 수도권에는 송배전 비용과 핵발전소 주변 지역민의 위험비용을 합친 비용을 얹어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한 겁니다. 시민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지만, 전기 사용이 많은 기업을 유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정부와 삼성은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엄청난 전기는 어디서 끌어다 쓸지 밝히지도 않은 채 말입니다. 만일 전기료 차등 요금제가 시행 중이었어도 저런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지, 적어도 일부는 핵발전소 주변으로 분산 배치하는 방법을 강구하진 않았을지 생각해볼 대목입니다.
국회 산자위 소위를 통과한 전기료 차등제 관련 법안이 신속히 산자위,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통과되기를 희망합니다. 제2, 제3의 용인 클러스터를 막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지방에 대한 정부와 수도권 기득권층의 인식을 드러내는 단면은 또 있습니다. 개관한 지 11년 된 국내 최초, 유일의 국립해양박물관이 영도에 있는데, 수장고가 잘게 나뉘어져 어선 같은 중·대형 유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답니다. 넓은 수장고의 별관 신축을 추진했지만 국비 확보는 기재부 문턱을 7년째 넘지 못했고, 결국 해수부는 내년 1월 준공할 인천국립해양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네요. 해양수도 부산이라고 국립박물관을 지어놓고 제 기능도 못하게 만든 정부의 안이한 인식이 드러난 겁니다.
요즘 시즌2가 나와 다시 글로벌 시청 1위를 기록하는 OTT드라마 '더 글로리'에서의 박연진-문동은이 저는 우리나라의 수도권-비수도권으로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정확히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차별과 배제의 피해 만큼은 맥락이 같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지방이 소멸하지 않으려면, 우리 아이들이 우리 삶터를 이어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려면 우리 세대가 문동은 만큼의 결기와 계획, 시간을 가지고 오랜 기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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