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서울역 고가교를 철거하지 않고 공원(서울로7017)으로 만들어 개장할 때 서울역 앞까지 신발 3만 켤레가 널부러져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 쓰레기를 갖다 버린 게 아니라, 황지혜 작가가 설치한 '슈즈 트리'라는 공공미술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황지혜 작가는 “서울역 고가가 서울로7017로 재탄생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이에 어울리는 구조물을 구상했다”며 “우리가 버린 신발, 폐차 부품 같은 것이 새로운 가치를 얻어 예술품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로7017 개장을 기념해 단 9일간 이뤄진 전시는 관람객 각자의 과거를 소환하는 매개역할을 하기도 했고, 어떤 이에게는 볼썽사나운 쓰레기처럼 비쳤습니다.
2021년 5월 초량천 예술정원 사업으로 부산역 앞 대로변에 설치된 최정화 작가의 ‘초량 살립숲’도 같은 맥락이었지요. 주민들이 부엌과 마당에서 실제 사용하던 단지와 소쿠리 등 ‘사용감’ 넘치는 물품들이 탑을 이뤄 쌓였습니다. 이 작품의 최 작가도 초량 출신이었고, 산복도로를 비롯한 부산 곳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출향인들은 부산역에 왔다가 모처럼 옛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예술작품을 봤다고 반가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량 주변 주민들은 낡은 생활용품이 탑을 이룬 모습이 낯설었고, 지역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살림숲’은 수많은 행인과 마주하며 햇빛과 비를 온전히 받던 거리에서 쫓겨나게 됐습니다. 4월부터는 을숙도에 있는 부산현대미술관 중정으로 옮겨집니다.
부산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개항부터 식민지 수탈과 해외 교류, 한국전쟁 기간 임시수도, 부마항쟁과 4·19, 산업화의 심장이던 남동임해공업단지의 중추,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등 영화 몇 편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구비구비를 지나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주름들이 부산 곳곳에 아직 남아 있고, ‘첨단·스마트·국제 관광도시’ 부산의 현대적 모습과 기막힌 조화를 이룹니다. 부산항 1부두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 중인 사업입니다. 2030년 엑스포 관람객에게 보여줄 부산의 진면목 역시 현재와 미래의 부산뿐 아니라, 지금의 부산을 만든 150년 이상 응축된 근대화의 파노라마일 것입니다.
글로벌 항구도시 부산은 개방성과 포용력이 경쟁력입니다. 역사의 주름을 부끄러워 하지 않을 자존감, 예술과 문화는 관람자의 굳어 있는 가슴과 머리에 균열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포용력이 분명 우리 가슴 속에 내재해 있다고 믿습니다. 2030부산월드엑스포 실사단을 맞이하려는 지금, 시민들의 이런 잠재력을 끌어내는 소통과 배려의 문화 행정 역시 더 없이 중요할 것입니다.
한편 그동안 브레드에서 지속적으로 다뤘던 지역별 전기료 차등제 관련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법사위와 본회의도 무사히 속히 통과하기를 기대합니다. 또 지난 15일 정부가 전국의 국가첨단산업단지 후보지 15곳을 선정 발표할 때 부울경에서는 창원 1곳만 선정됐던 데 대해 윤 대통령이 부산이 추가로 신청하면 적극 뒷받침하도록 지시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어제 23일이 ‘세계 강아지의 날’이었다는데, 요즘 집안에서 강아지의 지위를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칼럼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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