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한 뒤 유럽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소비에트연방에 대응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미국과 안보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도, 소련 해체 후 러시아로부터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유엔 제재로 더 이상 값싼 러시아 가스를 구매할 수 없게 돼 곤란한 입장에 빠진 겁니다. 러시아~유럽 천연가스관(노르드스트림)으로 들여오던 러시아 가스의 빈자리는 제재를 주도한 미국의 셰일가스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발생한 노르드스트림 폭발 사고도 당초 알려졌던 러시아의 짓이 아니라, 미국 정보기관과 우크라이나 지지 세력의 소행으로 굳어지는 양상입니다. 반대로 미국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유럽 대신 중국에 대한 천연가스와 석유 판매를 늘리면서 제재 충격을 그다지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국인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를 뒤에서 지원하는 미국이나 별다른 피해 없이, 오히려 과거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는 양상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만 죽어나는 형국입니다.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하게 만들면서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었다는 것도, 미국 내에서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이 생산되면서 미국에게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낮아진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과거로부터 국제정세를 좌우하는 밑바탕에는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국내 정치와 행정 측면에서는 어떨까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건설된 핵발전소는 주로 동해안(부산·울산, 경주, 울진)에 건설됐고, 1985년 서남해안권 전남 영광에도 지어졌습니다. 모두 바다를 낀 지방입니다. 핵발전소 전기를 수도권까지 보내느라 고전압 송전철탑이 전국 곳곳 산하를 그물망처럼 지납니다. 핵발전소 주변 시민들은 방사선 위험에 노출돼 있고, 암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소송도 부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송전비용도 필요 없는 핵발전소 주변 시민들은 위험을 떠안고 사는데도 수도권과 똑같은 전기료를 부담합니다.
수도권에 의한 지방 '수탈'이라는 표현이 과하다 할 수 있을까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발전소 주변 지역과 전력 자급률이 낮은 지역의 전기료에 차등을 둘 수 있게 하는 근거법률입니다. 50년 넘게 비합리적인 전기료를 묵묵히 부담한 지역민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방 소멸이 공공연한 시대, 값싼 전기료가 기업 유치에 작은 실마리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분산에너지법' 통과를 계기로 핵발전소 소재지 행정협의회가 국회와 산업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전달한 건의도 무게 있게 다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협의회는 원전 안전 정책 수립에 지자체가참여, 원자력안전교부세 도입, 고준위방사성폐기물특별법 제정 등이 건의 내용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 정책을 조율하는 '지방시대위원회'의 근거법인 '지역균형발전특별법도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니 연거푸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런 ‘굿뉴스’ 와중에 수도권에 종속된 지방 행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또 발생했습니다. 지방공기업인 부산교통공사 사장이 임기를 절반쯤 남겨두고 코레일 사장 공모에 지원하기 위해 중도 사임했다는 소식입니다. 전임 사장에 이어 부산교통공사 사장 자리를 다른 중앙정부 산하 공기업으로 옮기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최근 운행 정지 사태의 원인인 노후 객차 교체 등 산적한 현안을 언제까지 '뜨내기 사장'에게 맡겨야 하는지 시민들은 자존심도 상하고 기가 막힙니다. 인사권자인 부산시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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