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에서 가장 매력 있는 캐릭터는 ‘바다마녀’ 울슐라(멀리사 맥카시)입니다. 베테랑 배우 맥카시는 외양부터 원작의 울슐라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데, 연기와 노래 실력까지도 흠잡을 데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 원작과 다를 게 없는 점은 아쉽습니다. 인간 세상을 동경하던 에리얼은 난파 사고를 당한 에릭 왕자(조나 하우어 킹)를 구하다 그와 사랑에 빠집니다. 에릭을 만날 방법을 찾던 에리얼은 결국 마녀 울슐라를 찾아가고, 인간의 다리를 얻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울슐라에게 내어줍니다. 에릭과 사랑의 키스를 하지 못하면 울슐라의 노예가 된다는 불리한 ‘특약’에도 동의합니다. 에릭 왕자는 자신을 구해준 여성을 찾기 위해 온 왕국을 수색하게 하지만, 정작 눈앞에 나타난 에리얼을 알아보지는 못합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에리얼은 자신이 에릭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가운데, 울슐라의 방해공작으로 두 사람의 인연은 영원히 엇갈릴 위기에 놓입니다. 롭 마샬 감독이 연출한 ‘인어공주’는 결말까지도 원작 애니메이션과 일치합니다. 기존 디즈니 실사화 영화들처럼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고, 에리얼만 흑인으로 바꾼 수준인 겁니다. 아쉬움은 여기서 비롯됩니다. 원작의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답습한 리메이크 작품이 호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완벽한 추억 재현’에 성공하는 겁니다. 하지만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주인공 캐릭터를 완전히 바꾼 시점부터, 디즈니는 ‘추억 재현에 초점을 맞추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캐릭터를 21세기에 맞게 바꾸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면 스토리 역시 파격적인 변주를 줘야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베일리를 캐스팅한 것은 ‘쇼’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디즈니는 ‘원작의 틀을 깨겠다’고 공언하고 원작의 틀에 갇혀버렸습니다. 13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아쉬운 점은 더 있습니다. 인어공주의 컴퓨터 그래픽(CG)은 2023년 디즈니에서 내놓은 작품치고는 기대에 못 미칩니다. 쉽게 말해 ‘CG 티’가 많이 납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의 화면도 불만입니다. 물론 최근 개봉한 영화들의 화면이 어둡다는 것은 비단 디즈니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인어공주’ 마무리 단계에서 에리얼과 에릭이 힘을 합쳐 울슐라를 무찌르는 씬은 ‘캐리비안의 해적’을 연상케 할 정도입니다. 공교롭게도 롭 마샬 감독은 실제로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를 연출한 바 있습니다. 실사화 된 동물 캐릭터들은 호불호를 가를 요소입니다. 실사화한 ‘라이온킹’(2019)에서도 지적받은 것처럼, 실제 동물과 너무 닮은 영화 속 캐릭터들은 표정 변화가 크지 않아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인어공주’에서 에리얼의 단짝인 노란색 로열 엔젤피쉬 ‘플라운더’는 실사화를 거치면서 흰색 계열의 해포리고기로 변했는데, 일부 관객들 사이에선 ‘횟감 같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에 대해 롭 마샬 감독은 ‘할리우드 리포터’와 인터뷰에서 “물고기처럼 보이지 않는 가자미를 만들거나, 게처럼 보이지 않는 게를 만들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몰입을 해치는 작위적 설정도 이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해야 한다는 데에는 꽤 많은 사람이 동의합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하는 ‘길가메쉬’를 마동석이 연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기조 덕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피부색과 억양이 모두 다른 ‘인어공주’ 속 일곱 공주는 ‘인종 할당제’를 보는 것 같아 어색하기만 합니다. 일곱 공주의 인종이 모두 다르다는 건 트라이튼 왕이 여색에 빠져 7대양을 돌아다닌 호색한이라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다양성과 연대라는 메시지를 위해 개연성이라는 영화의 초석까지 무너뜨려선 안 됩니다. 정치적 올바름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바다마녀인 울슐라가 원작과 동일한 뚱뚱한 여성 캐릭터인 것은 비만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을 때 디즈니가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메시지 전달에만 집중해 본말이 전도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영화 ‘피아니스트’(2003)의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이 영화의 메시지가 뭐냐”고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메시지? 메시지는 우체국에나 가서 찾아라”라고 일갈했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데 집중하면 메시지는 자연스레 관객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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