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지난 8일 공개한 ‘좀비버스’는 출연진이 어느 날 좀비 세상으로 변한 한국에서 생존하는 게임 예능입니다. 배우 이시영, 방송인 노홍철, 코미디언 박나래, 가수 딘딘, 그룹 빌리의 츠키, 전 야구선수 유희관, 조나단·파트리샤 남매, 의사 꽈추형(홍성우), 해군 특수전전단(UDT) 출신 유튜버 덱스가 출연합니다. 이들은 곳곳에서 달려드는 좀비 떼 사이에서 끝까지 생존하고, 최종적으론 월미도에서 탈출선을 타야 합니다. 좀비에게 물어뜯긴 출연진은 물린 정도에 따라 즉사해 좀비가 될 수도 있고, 의식이 있는 채로 서서히 좀비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 좀비가 될지 모를 ‘반좀비’들과의 동행 여부는 동료 출연진이 선택해야 합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박진경 책임피디(CP)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문상돈 PD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좀비버스’는 1시간 내외 분량의 에피소드 8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영화 못지않은 액션과 리얼한 연출로 시작하는 1화는 일단 흥미를 끌기에 충분합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서울 모처 연애 프로그램 녹화현장에 노홍철, 박나래, 이시영, 딘딘, 츠키 등 연예인 출연진이 모였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안색이 좋지 않던 일반인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의 목을 물어뜯고,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남은 생존자들은 좀비 세상에서 순간의 판단과 선택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대본 없이 상황에 던져진 출연자들은 좀비가 자신들에게 달려들자 혼비백산해 달아납니다. 겁에 질린 출연진들의 표정과 몸동작은 연기가 아닙니다. 간신히 촬영장에서 빠져나온 출연진은 생존을 위해 여러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주유소에서 좀비를 피해 주유하기, 좀비가 가득한 대형 마트에서 생존 물품 구하기, 놀이공원 안에서 생존자 구하기 등 다양한 미션이 각 에피소드마다 펼쳐집니다. 좀비버스는 15세 관람가인 만큼 지나치게 공포스럽거나 잔인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연출은 대체로 스토리 게임 인터페이스를 연상시키며, 나레이션과 자막은 웃음에 욕심을 뒀습니다. 덕분에 그로테스크한 ‘고어물’을 보지 못하는 기자도 큰 거부감 없이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정교한 특수분장과 몸을 사리지 않는 스턴트 연기로 무장한 좀비들은 아주 현실적입니다. 제작진은 눈앞에서 움직이던 좀비 스턴트맨이 차에 치이게 하는 등 사실적이고 화려한 액션을 구현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좀비들이 사실은 분장한 연기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출연진은 물론 시청자 입장에서도 화들짝 놀라게 되는 포인트입니다. 반대로 좀비 연기자들이 사람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해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 기법의 활용도 적절합니다. 극단적 상황에서 각 출연자의 특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노홍철은 MBC예능 ‘무한도전’에서 보여줬던 ‘무한 이기주의’ 컨셉에 충실해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합니다. 잔뼈 굵은 예능인들도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습니다. 반면 이시영, 덱스 등은 위험한 상황에서 희생정신과 용기를 발휘해 카리스마를 뽐냅니다. 위험한 미션을 누가 수행할 것인지를 놓고 벌이는 말다툼은 출연진의 ‘과몰입’을 부르기도 합니다. 기존 예능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출연자 간 케미도 다양합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좀비에 물리는 출연자가 생기고, 이들과 동료들이 갈등을 빚는 모습에서 자연스레 긴장감이 연출됩니다. 아쉬운 점들도 있긴 합니다. 초반엔 좀비들이 애써 출연진을 붙잡지 않고 억지로 미션을 깨도록 하는 것 같은 인상이 들어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일부 단역과 엑스트라의 연기가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2화의 경우 위기를 자초하는 비현실적인 상황 설정으로 몰입감이 확 떨어졌습니다. 또 출연진들이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서도 좀비 연기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거나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좀비물인데 좀비를 공격할 수 없으니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실제 좀비영화를 방불케 하는 스릴 넘치고 현실적인 서바이벌 예능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나름의 반전도 있는데, 일부는 다소 작위적인 느낌입니다. 일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좀비버스가 적당한 긴장감과 유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신선한 장르의 예능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겠습니다. 후반부에는 기존의 B급 좀비영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황당한 유머 코드를 잘 살려 웃음을 유발합니다. 의외의 인물이 보여 주는 감동포인트를 잡아내는 연출 방식도 기억에 남습니다. ‘좀비버스’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공동체가 ‘낙오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남기기도 합니다. 다수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쓸모가 덜한 소수의 낙오자는 배제해도 되는가 하는 고민 말입니다. 소수자를 포용하는 대신 배제하는 쪽을 택하는 모습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닮아있습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나 조현병 환자가 사건사고를 일으켰다는 기사엔 어김없이 혐오표현이 포함된 댓글이 이어집니다. 이들이 모두 ‘아프다’는 것은 물론,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잊은 듯 거친 표현이 쏟아집니다. 물론 발달 장애인과 정신질환자 등의 돌발행동으로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서도 안 될 일입니다. 다수가 소수를 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이제는 정부의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