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온전히 혼자만의 것일까.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9일 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주위에 역사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부추기는 이들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 것. 아닌 게 아니라 윤 대통령 주변에 뉴라이트 성향,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실제로 윤 대통령 집권 후 요직에 기용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그 지적이 그리 틀린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뉴라이트를 이끌던 핵심 인물들을 국가안보실장, 국정상황실장, 방송통신위원장,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에 앉혔고, 이런 경향은 역사·교육 관련 국책 기관의 수장 임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국가교육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이 죄다 편향된 역사 인식을 가진 뉴라이트 계열의 인물들이다. 이번 광복절에 파란을 일으킨 독립기념관장도, 본인 주장과는 무관하게, 뉴라이트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반국가세력 vs 일진회 같은 인사들
윤 대통령이 지금껏 보인 역사 인식이 윤 대통령 개인을 넘어 그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집단의 인식에 연유한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있지도 않은 건국절 계획” “억지 주장” 운운하고 심지어 “엄정 대응할 생각”이라고 을러대도, 윤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 인물 배경이 바뀌지 않는 한 건국절 논란은 사그라질 수 없는다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국절 논란이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지난 13일 알려졌다. “국민 민생과는 동떨어진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라는 취지”라고 대통령실은 해명했지만, 뉘앙스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 때문이다.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윤 대통령은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왜 필요한지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혹 “건국절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국민은 먹고사는 데나 신경 써라”는 뜻은 아니었는지….
‘두 쪽 난 광복절’ 사태에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철회하지 않는 것을 보면, 윤 대통령은 자신 주위에 포진한 뉴라이트계 인사를 내칠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하다. 아니, 이전보다 더 강고한 태도를 보인다.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강조한 게 그렇다. 이날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을 계기로 열린 국무회의였다고는 하지만, 가슴 한편에 섬찟함이 가시지 않는다. 반국가세력은 누구를 지칭하며, 항전 의지는 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뜻인가.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0일 “대통령 주변 옛날 일진회 같은 인사들을 말끔히 청산하라”고 요구했다. 일진회는 구한말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 정책에 적극 호응한 대표적인 친일단체다. 묻게 된다. 윤 대통령이 말한 반국가세력이 문제인가, 이 회장이 언급한 일진회 같은 인사들이 문제인가. 어느 쪽이 실체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