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는 291억 원을 들여 국제공모 우수디자인으로 선정된 가로등, 벤치 등 공공시설물을 부산의 관문 지역과 관광지 등에 설치해 품격 있는 거리 디자인 조성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품격 있는 거리라는 표현은 주관적이고 모호하며,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품격 있는 거리의 기준은 무엇이고, 또 누가 판단할 것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품격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를 의미한다. 이는 매우 상대적이다. 품격의 높고 낮음을 판가름할 기준은 개개인의 시선에 있다.
도시의 품격과 시민의 삶을 결정하는 척도는 화려함이 아니다. 거리의 디자인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안전과 편의성, 그리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고려해야 한다. 흔히 내로라하는 세계적 문화도시인 빈, 런던, 뉴욕, 파리의 공통점은 ‘걷기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걷기 좋은 도시, 서울’, ‘쉼이 있는 도시공간’을 모토로 산책로와 공원, 벤치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한 도시나 사회가 건강하려면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야 한다.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카페가 아니라, 공원과 벤치와 같은 공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많을수록 살기 좋은 도시다. 휴게 공간이 많은 도시가 곧 걷기 좋은 도시이자 살기 좋은 도시인 것이다. 흔히 도시 전문가들이 벤치의 디자인이나 그 속에 깃든 배려를 통해 그 도시가 지향하는 정신이나 철학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제공모 우수디자인 작품을 거리에 설치했다고 해서 그 거리가 품격 있는 거리가 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벤치는 작고, 사소한 것이지만 여기서부터 스토리가 담기고, 사람 중심의 도시디자인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도시는 살기 좋은 도시, 품격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품격은 우리 국민들이 만들어 가듯이, 품격 있는 도시 또한 그 안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예술성 높은 공공시설물 하나 더했다고 품격이 딸려오는 건 아니다. 도시의 품격은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삶을 떠나 논할 수 없다. 외국 디자이너의 예술성 높은 공공구조물 하나에 부산이란 도시의 품격이 좌우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