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든 조직이든 더 나아가 지자체든 국가든 한 대상의 족적을 평가하기 위해선 그 대상이 딛고 서 있는 토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불공평의 대명사처럼 자주 언급되는 ‘기울어진 운동장’ 따위가 토대에 깔리면 그 족적을 결과 그대로 평가할 수 없다. 제대로 디디고 서있기조차 힘든 토대에서 왜 도약의 족적을 남기지 못 했느냐고 비판하는 것은 비판하는 당사자가 더 비판받아야 할 행동이다. 기자는 현재 상태 폭삭 망한 듯한 부산의 족적이 기울어진 토대 위에 쌓아올린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기울어진 토대가 만들어진 시점이 부산이 망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며 그 시점은 특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이 망하기 시작한 날은 1972년 1월 1일이다. 그날은 법인 등록세법이 개정되면서 대도시에 법인을 설립하거나 공장, 분점 등을 설립할 경우 타지역 취등록세의 5배를 중과세하기 시작한 날이다. 오타가 아니다. 2배나 3배가 아니라 자그마치 5배다. 그럼 저 법에서 대도시는 어디를 뜻하는가. 당시엔 서울특별시와 부산직할시 두 곳만이 대도시에 해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부산을 서울과 같은 반열에 놓고 규제를 한 것이다. 인구와 경제력의 도시 집중을 막고 국토 균형발전을 꾀한다는 게 이유였다. 1945년에 28만 명에 불과하던 부산 인구가 25년 만에 2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부산이 압축적인 성장을 거듭하자 당시 중앙집권 정부가 생각해 낸 게 바로 부산 억제책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과 달리 중추관리기능이 약한 부산에 내려진 이 극약처방은 곧바로 부산의 발목을 옥죄는 족쇄가 됐다. 족쇄는 10년 뒤 무게를 더해 하나가 더 달린다. 정부가 제2차 국토계획을 추진하면서 부산을 서울과 함께 성장억제 및 관리 도시로 지정한 것이다. 그 전에 1977년엔 공업배치법에 따라 부산 일대를 제한정비지역으로 지정해 공장의 신설 또는 증설을 법적으로 제한하기까지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