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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부산에서 유니콘이 탄생하려면
2025년은 부산의 창업생태계에서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부산지역 창업 활성화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 닻을 올리고 본격적인 항해에 나섰기 때문이다. 부산창투원은 최근 출범식을 갖고 ‘글로벌 창업 허브 도시 부산’의 깃발을 올렸다. ‘2025 부산창업패키지 지원사업’ 대상 120개 기업도 공개했다. 부산창투원은 기업 성장을 4단계로 나누고, 자금뿐만 아니라 각 단계에 필요한 창업 교육, 투자 유치, 기업 진단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기업 선정부터 교육과 투자 전 과정을 투자자들이 주도하게 했다고 하니 제대로 된 스타트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창투원은 전국 최초로 설립된 지자체 산하 창업 행정 전담기구로 아시아 10대 창업 도시를 향한 부산시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박형준 시장의 핵심 공약이기도 하다. 시는 그동안 창업하기 좋은 도시 부산을 위한 빌드 업을 차곡차곡 진행해 왔다. 2022년 아시아 창업엑스포 ‘플라이 아시아’(FLY ASIA) 첫 행사를 시작한 후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2023년부터는 핀란드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스타트업 행사 슬러시의 스핀오프 형태인 부산 슬러시드(SLUSH‘D)를 개최하고 있다. 부산역 유라시아 플랫폼에서는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도 운영 중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 중인 북항 1부두에는 ‘글로벌 창업 허브’ 조성을 위한 국제건축설계 공모가 진행 중이다. 멋진 공간은 그 자체로 창업 아이디어를 불러모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시의 이 같은 노력에도 창업 도시 부산의 갈 길은 먼 게 현실이다. 부산의 창업생태계가 빈곤하니 발버둥이라도 치는 것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는 창업조차 수도권이 아니면 안 된다. 청년들이 기를 쓰고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술창업기업의 60%가 수도권에 있고, 벤처 투자 중 수도권 비중이 80%를 차지한다. 2023년 국내 유니콘 기업 24개 중 23개 사가 수도권 소재다.
미국 스타트업 연구기관 스타트업 블링크가 발표한 ‘2024년 세계 스타트업 도시 순위’에서 세계 1000개 도시 중 한국에서는 서울만 21위로, 100위권에 들었다. 부산은 366위, 대전 429위, 인천 458위에 그쳤다. 창업의 본질이 혁신이라고 한다면 수도권에 모든 걸 몰빵해서는 국가적으로도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리 만무하다. 또 다른 평가기관 스타트업 지놈 순위를 보면 미국은 1위 실리콘밸리는 물론이고 뉴욕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등이 10위권 내고 덴버 오스틴 솔트레이크 애틀랜타 마이애미가 40위권 내에 포진해 있다. 미국이 지난해 2.8%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도 스타트업 창업 열기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부산이 창투원을 중심으로 창업생태계를 만들어 간다고 해도 결국 지역 혁신 역량 한계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창업 기업을 발굴해 액셀러레이터하고 스케일업하려 해도 창업하려는 젊은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역 혁신 허브로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글로컬대학, 라이즈, 국가연구소 등 정책 수단을 총결집해 역량을 키워야 한다. 대학 간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 부산대와 부경대의 부산형 KAIST 추진 같은 게 바람직한 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과학기술의 빠른 변화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지역 문화와 수용성이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다. 크록스가 세계적 신발 브랜드로 유명해졌지만 미국 콜로라도주의 볼더라는 작은 도시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도시의 고향 친구 3명이 서핑을 즐기다 보트 슈즈에 대한 아이디어로 창업하게 된 게 크록스다. 이들을 키운 건 창업자들의 자유로운 네트워크 형성과 협력 분위기를 조성한 볼더의 ‘우리가 먼저 베푼다’(We Give First)는 문화였다. 부산이 전통적 신발 도시인데 이런 신발 관련 유니콘이 탄생하지 못했다는 것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부산서 두 번째 예비 유니콘이 된 슬래시비슬래시라는 기업이 크록스와 손잡고 크록스의 독창적 감성이 담긴 스마트폰 케이스를 출시한다는 사실이 공교롭다. 슬래시비슬래시는 근거리무선통신 기반으로 MZ세대 겨냥 맞춤형 휴대폰 액세서리를 생산하는 회사다. 2020년 부산서 설립해 매출이 급증하며 예비 유니콘이 됐다. 글로벌 유니콘이 되기 위해 해양을 향하고 있는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는 대표의 포부가 당차다. 부산창투원 출범을 계기로 글로벌 스타트업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가 부산에 몰려들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부산 유니콘 기업 탄생도 머지않은 미래가 될 것이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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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미국 자갈치
부산 중구 남포동 해변에 자리한 자갈치시장은 부산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부산을 찾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리는 관광 코스이기도 하다. 자갈치시장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어섰다. 1922년 현재 자갈치 자리에 부산어업협동조합 위탁 판매장이 들어서면서 시장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0년 자갈치시장이란 이름으로 정식 개장, 국내 최대의 수산물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자갈치라는 이름의 유래는 까맣고 작은 자갈인 몽돌이 많은 해수욕장 인근에 시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시장 주변이 매립되면서 지금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해변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최근 부산의 자랑인 자갈치시장을 오마주한 대형마트가 미국에 문을 열었다. 농심그룹 메가마트는 지난달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델리시티의 대형 쇼핑몰 세라몬테 센터에 2100평 규모의 프리미엄 매장 ‘자갈치(Jagalchi)’를 개점했다. 메가마트가 네 번째 미국 매장에 ‘자갈치’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자갈치시장의 상징성과 가치를 미국에 선보이겠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K푸드’ 열풍에 빠진 미국 소비자들이 연일 장사진을 이룬다고 한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구호로 유명한 부산 자갈치의 저력이 미국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농심과 메가마트는 부산과 깊은 인연을 가진 기업이다. 메가마트의 역사는 농심이 1975년 당시 부산 생필품 유통체인 기업인 동양체인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95년 부산 최초의 창고형 대형 할인마트인 메가마트 동래점이 문을 열었다. 이마트 서울 창동점에 이어 국내 두 번째 대형 할인마트이기도 한 동래점은 오는 8월이면 개점 30주년을 맞는다. 동래점은 현재까지도 좋은 농수축산 먹거리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차별화된 노하우로 부산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과 농심, 메가마트의 인연은 이번 미국 ‘자갈치’ 개점으로 한층 더 끈끈해진 느낌이다. 더욱이 농심은 1987년 이미 ‘자갈치’라는 상표를 특허청에 등록했다. 이후 자갈치라는 이름을 단 스낵을 출시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시키기도 했다. 농심이 38년 동안 자갈치라는 상표를 등록 관리한 데 이어 이번에 메가마트가 미국에 자갈치를 출점시킨 것은 이 기업의 한결같은 부산 사랑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 ‘자갈치’가 자갈치시장을 세계에 알리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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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어설픈 ‘상호관세’ 돌멩이에 지구촌 피멍
지난 1월 취임 직후부터 미국의 무역 상대국을 상대로 날선 반응으로 일관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3월부터 철강·알루미늄에, 4월부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3일 트럼프 대통령은 5일부터 모든 수입품에 10%의 소위 ‘보편 관세’를, 그리고 9일부터 57개 주요 무역상대국에 소위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3일 발표된 ‘상호관세’에서 중국 34%, EU 20%, 일본 24%를 필두로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는 한국도 25%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그리고 9일 상호관세 부과가 시작된 지 13시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은 이후 관세 인상 치킨 게임을 벌여서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245%, 중국은 미국산 수입품에 1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의 절반 수준만큼 미국이 관세를 매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백악관이 공개한 산출 방식에 모두가 경악 내지는 폭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산출 방식은 미국이 해당 무역상대국에 받는 무역적자를 해당국의 대미 총 수입으로 나눈 것을 상대국의 보호무역 장벽이라는 어떤 경제학 이론도 설명하지 못하는 정말 기괴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미국이 관대하기에 이들 무역장벽의 절반 수준만 ‘상호관세’로 받겠다고 한 것이다.
경제학 이론 뒤엎는 트럼프식 관세
미국이 만들어온 질서 스스로 파괴
대만은 LNG 투자에도 관세 덤터기
한국, 무너진 질서 속 대응책 '숙제'
현재 WTO에 기반한 다자주의적 무역질서의 성립 배경은 1929년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과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미국을 필두로 각국이 채택한 보호무역주의가 정치적인 극단화를 낳았고 결국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데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자주의적 무역질서의 탄생을 주도한 건 미국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만든 다자간 무역질서를 미국의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파괴하려 하고 있다.
일본의 이시바 총리는 2월 7일 트럼프 대통령과 개별 정상회담을 통해서 최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을 맞추려고 노력을 했지만, 결국 미국이 부과하는 24%의 상호관세를 피하지 못했다. EU는 트럼프 집권 초기 미국의 관세 압박에 미국 빅테크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것을 포함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가,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 90일 유예를 결정하자 미국과 현재 양자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관세압박 상황과 차이점은 미국과 중국의 관세 갈등이 관세 치킨게임으로 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 치킨게임을 진행하다가 현재 대미 수출관세는 245%까지 인상된 상황에 직면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7가지 희토류 광물의 수출 제한을 발표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알래스카 LNG투자 문제로 한국, 일본,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 알래스카 LNG사업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추진했다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야생동물 보호지역 환경파괴 문제로 중단시켰던 사업이어서 리스크가 크다. 대만은 트럼프의 알래스카 LNG개발 참여 압박에 굴복해 알래스카 LNG 구매·투자 의향서(LOI)를 체결했지만 32% 상호관세를 피하지 못했고, 이후 미국과 상호관세를 낮추는 협상을 진행할 때 알래스카 LNG를 더 이상 레버리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수를 하였다. 미국의 LNG 투자 참여 요구와 방위비 인상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만의 선택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아시아-태평양 공급망 질서 구축을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가 2022년 5월 23일 출범했다. 그리고 미국, 한국,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 브루나이,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이 회원국으로 참여하여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공급망 질서 재편 전략에 동참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공급망 질서 구축에 협력해 온 IPEF 참여국가에도 가혹한 ‘상호관세’를 부과했고, 미국 스스로 ASEAN 지역에서 구축해온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섣부른 조치로 발생한 미국과 ASEAN 국가들 간에 균열을 활용해 중국 시진핑 주석은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잇따라 방문했다. 중국의 영향력이 큰 캄보디아 이외에도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은 시진핑 주석의 방문을 적극 환영했다.
미국에 실망한 ASEAN 국가와 중국 간 협력이 확대될 경우, ASEAN 국가와 협력 강화에 노력을 기울여 온 한국의 입지가 보다 좋아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무너뜨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기존 국제질서 변화에 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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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현재는 이렇게 지나간다
미래야
부르자
과거가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왔다
앉아
기다려
훈련을 시켰다
미래에게 줄 간식들을
과거에게 다 써버리면서
훈련 시킨 과거를 데리고
미래를 찾으려 나섰다
평생 쫓겨 다녀서
달리기를 참 잘하는
미래는
사실은 도망치지 않았고
문밖에서 내내 기다렸다고 했다
내가 언제 나오는 건지
나는 어색하게
과거의 손을 잡고
미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천천히 걸어서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집 〈미래의 손〉 (2024) 중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다시 읽어 봅니다. 시간은 무엇일까요. 질서와 순서가 있는 것일까요. 어떤 곳에서는 천천이 흐르고, 어떤 곳에서는 빨리 흐른다는 시간. 나는 나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람이고, 벌써 도착한 사람인데 이런 나를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세 토막 내어 말할 수 있겠는지요. 시간은 단지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 간의 움직임이라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도 애완 혹은 반려로 훈련 시킬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시인이 남긴 시간은 과거일까요 미래일까요 현재일까요. 삶이 고통이라면 시간도 고통이겠지요.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과거와 미래 때문에 현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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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눈] 대형 싱크홀 발생, 근본 대책 절실해
부산 도시철도 사상~하단 구간 공사 현장에서 지난 13일 새벽 5시께 또다시 대형 싱크홀(땅 꺼짐 현상)이 발생했다. 최근 1~2년새 사상~하단 도시철도 공사 구간에서 발생한 싱크홀이 무려 11곳이나 된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동서고가도로 교각과 가까워 싱크홀이 조금만 더 컸거나 위치가 달랐어도 또다른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더구나 당시 지반침하 의심 신고를 접수해 현장 안전조치가 시행되던 중 싱크홀이 발생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부산시가 지난 2월 특별조사를 통해 폭우와 부실한 물막이 작업, 차수 공법 부실을 원인으로 밝혔는데, 불과 두 달 만에 비슷한 장소에서 또 사고가 발생했으니, 이제 구조적인 문제를 의심해야 할 지경이다. 공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원점 재점검이 필요하다. 도시철도 공사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하면서도 정확한 원인을 못 찾으니 언제든지 비슷한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대도시에서는 미관을 고려해 지상으로 고가도로를 올리거나 도시철도를 다니게 하지 않는 추세다. 그만큼 지하에 도로나 철로를 뚫는 게 일상화되고 있다. 실제로 경부선 부산 구간은 지하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내년 1월 개통을 앞둔 만덕~센텀, 해운대~사상 구간도 대심도 공사, 가덕신공항과 도심을 연결할 BuTX(차세대 부산형 급행철도)도 지하로 다니게 계획돼 있다.
조만간 공사에 착수할 도시철도 하단~녹산 구간에 대해서도 연약 지반, 하천수 유입 우려를 고려해 이번 사고 원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부산시와 부산교통공사는 다시 한번 총체적으로 점검해 재발 방지책을 내놓길 바란다. 이래서는 시민들이 불안해서 못 산다. 우향화·부산 사하구 사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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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가덕신공항 2029년 개항 흔들려선 안 된다
가덕신공항 개항이 예기치 않은 난관에 부딪혔다. 최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기본설계안에서 공사 기간을 기존 84개월에서 108개월로, 2년 더 연장할 것을 요구하면서 애초 목표였던 2029년 말 개항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2029년 개항을 여러 차례 공언했던 정부와 부산시는 갑작스러운 공기 연장 요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지역 개발 사업이 아니다. 이는 국가적 약속이자 동남권 주민의 오랜 염원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국토균형발전과 지역 경제 도약의 핵심축으로 추진되어 온 가덕신공항의 2029년 개항이 민간사업자의 입장 변화로 흔들려서는 절대 안 된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수의계약을 통해 선정된 사업자다. 입찰 당시 2029년 12월 개항을 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이후 지원시설과 장기 주차장 등 잔여 공사를 2031년까지 마무리한다는 전제 아래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후 공기와 예산을 상향 조정하려는 시도는 공정성과 책임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특히 정부가 제시한 공사비 10조 5000억 원보다 1조 원 이상 많은 예산을 요구하고 있어 시민들은 계약 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는 명백히 ‘수의계약 배짱’이라 할 만하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중요한 국가사업이 민간사업자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다행히 정치권에서도 대선 후보들이 이 문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2029년 ‘적기 개항’을 촉구하고 있다. 각 당 대선 후보 캠프는 물론, 부산 지역 정치권 역시 한목소리로 적기 개항을 강조하고 있다. 가덕신공항은 2029년 개항을 전제로 사업이 추진되어 온 만큼 부산 시민들의 염원이 조금이라도 미뤄져서는 안 된다.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선 후보들이 이 사안을 분명한 공약으로 내세우고 책임 있는 해결 방안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정부와 부산시도 더 이상 당황하거나 책임을 미뤄 둘 시간이 없다. 과거의 공언을 지키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지금 바로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
가덕신공항 2029년 개항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국가균형발전과 정부 공약의 신뢰를 상징하는 중요한 과제다. 개항이 지연될 경우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연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정치적 혼란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와 부산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정치권과의 협력을 통해 2029년 개항을 위한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기술적 문제는 없다’는 말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명확한 실행 방안과 일정을 마련해 가덕신공항이 차질 없이 개항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9년 개항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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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 SKT 유심 대혼란 강력하게 대응해야
지난 19일 SK텔레콤(이하 SKT)의 고객 서버 해킹으로 인해 가입자 유심 정보가 대량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후 SKT 측이 22일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공지하자 가입자들의 불안이 증폭됐다. 중국 해킹 그룹의 해킹 수법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로선 정확한 정보 유출 경로조차 불투명해 향후 어떻게 개인정보가 악용될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다. 불안한 가입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발을 구르는 이번 사고를 놓고 SKT 측은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일관해 분노를 자초했다. SKT는 가입자가 24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이동통신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라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더욱 충격적이다.
SKT 가입자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SKT 측이 사고 발생 사흘이 지나서야 사고 사실을 공지했다는 부분이다. 유심 정보는 복제할 경우 아예 복제폰이 생성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복제폰은 당사자 몰래 거액의 대출을 받거나 대포폰으로 활용하는 등 범죄에 악용할 수 있다. 기존 정보 유출과는 차원이 다른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SKT 측은 고객들에게 제때 피해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다. 삼성그룹을 비롯해 재계 주요 그룹들이 사내 SKT 이용자들에게 즉시 유심을 교체하라고 공지하고 나선 것만 봐도 SKT의 안일한 대처는 비판을 넘어 비난의 대상이 되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SKT는 그제서야 뒤늦게 전 고객들을 대상으로 무상 유심 교체를 실시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SKT가 대처에 미적거리는 사이 부산에서는 유심 정보 유출을 의심케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SKT 가입자의 휴대전화가 먹통이 됐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명의로 알뜰폰이 개통돼 은행 계좌에서 5000만 원이 인출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만에 하나 경찰 수사로 이번 해킹 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혼란은 더욱 커질 터이다. 게다가 수천만 개에 달하는 유심 교체라는 전무후무한 조치를 놓고서도 특정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식의 미확인 소문까지 나돈다. 이 모든 혼란은 늑장 대처로 불안을 키운 SKT 탓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당장 SKT는 가입자 대량 이탈이나 불매운동 같은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다. SKT로서는 무료 유심 교체 서비스까지 공언한 마당에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는 그동안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서 누려 온 혜택의 그늘이라 해석해야 마땅하다. SKT가 통절한 반성을 통해 거듭나지 않는다면 시장은 지배적 사업자마저 갈아치울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줄 수도 있다.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은 건 당연지사다. 아울러 정부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민간에만 맡겨 놓은 정보통신 기반시설에 대해 전면 검토를 실시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강력한 조치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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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재명의 '우클릭' 믿을 수 있나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이재명 후보가 확정됐다. 그는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후보들과의 지지율 맞대결에서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 있다. 이대로만 가면 차기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국민들은 대선 때마다 차기 대통령이 안정적인 경제정책을 펴 좀 더 잘 살게 해주기를 기대해왔다. 문재인 정부 때는 부동산 징벌세제나 최저임금 급등 등 과도한 분배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높아진 세율에 따른 종부세를 포함한 보유세 부과에 일부에선 빚 내서 세금을 납부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당시 “두 번 다시 민주당을 찍지 않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에서 5년간 최저임금을 42% 올리는 바람에 사회 전반적으로 물가가 올랐다. 식당,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은 인건비 감당이 어려워 폐업하거나 직원을 줄이고 가족경영으로 돌아서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뿐만아니라 실업률의 경우 문재인 정부 임기 4년 차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3.7%, 2018년 3.8%, 2019년 3.8%, 2020년 3.9%로 매년 증가했다.
당시 각종 분배 정책에도 소득 격차는 심화됐고, 저소득층인 1분위 소득은 감소한 반면 고소득층인 5분위 소득은 증가했다. 또한 지속적으로 추경을 남발해 국가부채가 300조 원 이상 증가했고 이는 윤석열 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윤 정부는 집권 이후 친기업 정책을 펴는 등 이전 문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고 기업인들도 대환영이었다. 기업들의 법인세를 낮춰주고 각종 조세 감면에 기업집단 규제도 일부 완화하는 성과도 냈다. 하지만 상속세 완화 반대, 기업 발목 잡는 상법개정안 등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발목을 잡았고, 민주당 주도로 20여 차례 탄핵이 이어지면서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랬던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대선 국면에서 입장을 바꿨다. 문재인 정부의 분배 일변도 경제 정책을 취했다가는 대선에서 어렵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이 후보는 현재 민주당 정권의 주요 기조인 기존의 ‘정의’나 ‘복지’가 아닌 ‘성장과 통합’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실용주의 노선을 바탕으로 ‘먹사니즘’(먹고 사는 문제 최우선)과 ‘잘사니즘’(행복을 지향하는 가치적 삶)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경제 성장 중심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서도 수도권 4기 신도시 조성, 서울 도심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등 공급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지난 2월 부동산 시장 개입 최소화에서 입장을 선회한 셈이다. 세제 정책에서도 감세 기조를 보이고 있다. 상속세·근로소득세 완화에 종합부동산세 완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내용만 보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공약같다.
일각에선 중도와 보수층 표를 겨냥한 ‘경제 우클릭’에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정치평론가는 “자기 이해관계에 맞춰 시류와 국민 여론에 좀 맞춰서 가려는 성향이 좀 강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 후보는 지난 2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경제를 살리는데 진보·보수 구분이 무슨 소용인가. 유용한 정책이라면 모두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마치 마오쩌뚱 전 주석이 사망한 뒤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이 “먹고 사는 게 급하지, 공산주의 사상이 중요해? 고양이 색이 검든, 하얗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거 아니냐”는 ‘흑묘백묘론’을 들고나온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집권 여당이나 재계 안팎에선 이재명 후보가 대선 성공 후 기존 민주당 노선으로 컴백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선 공약은 득표 전략이고 국정 전략은 별개라는 얘기다. 이 후보가 그간 이런저런 이유로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번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대선 때 내세웠던 기본소득 공약 연기,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번복, 전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 주장 포기,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오락가락 행보 등이 대표적이다.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은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비난을 듣다가 포기했고, 불체포특권 포기는 자신의 사건을 놓고 번복했다는 점에서 여론이 좋지 않다.
과거 대선 후보나 대통령들도 공약 번복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후보처럼 저렇게 잦지는 않았다. 한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의 정치인들에 좌우되지만 그 ‘옥석’을 가려내는 건 국민이다. 결국 국민이 실권자인 셈이다. 제대로 된 한 표가 그래서 중요하다.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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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독립운동가 서영해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유럽을 무대로 외교관, 언론인, 작가로 맹활약할 만큼 다재다능했다. 그는 1902년 1월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한의사 서석주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총명했던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했다. 1920년 임정의 외교 활동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홀로 건너가 유학했다. 1929년 파리의 신문학교를 졸업하고, 임정 외무부의 지시를 받아 파리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했다. 임정의 외교특파원으로 유럽 전체를 담당하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과 한국의 참모습을 알렸다.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이 벌어진 뒤 상하이에 살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일경에게 체포됐다. 이때 서영해는 유럽에서 맹렬한 석방 교섭에 나섰는데, 프랑스 정부를 움직여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국제여론을 조성했다. 비록 안창호 선생이 석방되지는 못했지만, 서영해라는 이름과 고려통신사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1926년 김구를 국무령으로 선출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1934년 4월 국무위원회에서 새로 외무행서 규정을 만들어 주미 외무행서에 이승만, 주불 외무행서에 서영해를 임명했다. 이로 인해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서영해는 임정 대유럽 외교의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27년 동안 유럽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잊힌 존재가 됐다. 해방 후 이승만이 아닌 김구의 노선을 추종한 데다, 정부 수립 후 상하이로 건너간 뒤 소식이 끊겼기 때문이다. 상하이 조선인민 인성학교 1955년 졸업 사진에 교사로 재직했던 사실만 확인된 뒤 종적이 묘연하다.
국가유산청이 지난 17일 ‘독립운동가 서영해 관련 자료’ 323건 686점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등록 대상 자료는 고려통신사의 독립 선전 활동을 보여주는 문서들,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과 주고받은 서신과 통신문, 서영해가 쓴 소설과 수필, 기사와 같은 저술 자료, 유품인 타자기 등이다. 현재 부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오는 5월 16일까지 해당 자료에 대해 의견을 수렴해 검토한 뒤 심의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서영해의 삶을 제대로 복원하고 재해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직 대중에게 낯선 인물일 수 있지만, 독립운동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순 없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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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세계 STO 시장 뜨지만 법조차 못 만든 한국
부동산이나 채권 같은 자산을 블록체인 기술로 조각 내어 거래할 수 있다면 어떨까?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증권형 토큰 발행(STO)’이다. 기존에는 수십억짜리 빌딩이나 기관 전용 채권 같은 자산에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STO는 그런 자산을 토큰으로 잘게 나눠 누구나 투자할 수 있게 만든다. 거래는 블록체인 위에서 이뤄져 더 투명하고 빠르다. 고금리와 부동산 불안정이 겹치는 시대에, 소액으로 안정적인 자산에 분산 투자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개인 투자자도 거대 자산가만 누리던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전 세계는 STO 시장을 빠르게 키워나가고 있다. 28일 글로벌 통계 플랫폼 RWA.xyz에 따르면 전 세계 온체인 실물연계자산(RWA) 시장 규모는 약 216억 달러(약 31조 원)에 달한다. 참여 투자자는 약 9만 8439명, 자산 발행 기업은 189곳이다. 미국 국채, 사모 대출, 원자재 등이 주요 자산으로 거래되고 있다.
한국은 그 흐름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 법, 제도를 정비해 기관투자자까지 적극 유입되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추세다. 규제 정비가 투자 유입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 마련의 속도가 시장 선점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일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은 2020년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으로 토큰증권을 ‘유가증권’으로 인정하고, 전통 금융과 유사한 규제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부동산, 회사채 등 다양한 분야로 STO를 확장했으며, 누적 발행금액도 1600억 엔(1조 6000억 원)을 넘겼다. 일본은 자본시장 활성화와 국민 자산 형성, 지방경제 부흥을 목표로 규제 친화적 시스템을 정착시켜 실질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시장 선점 시도가 이어진다. 부동산은 물론 음원, 미술품, 심지어 한우를 조각 내어 투자 상품으로 만든 플랫폼도 등장했다. 부산에서는 지난해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BDAN·비단)가 출범, 디지털 실물자산 유통 중심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제도적 기반 부재가 걸림돌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금융당국 허가를 일일이 받아야 하는 구조 때문에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이 어렵다”거나, “정식 인허가가 없어 대출을 활용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조차 못 한다”고 토로했다. 한 지역 기반 기업은 “특구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중앙 제도권과 괴리가 크다”며 “특정 지역에 국한된 사업자 취급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기업들이 잘못한 게 아니다. 법이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다. 국회에는 이미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국회는 입법 기능을 사실상 방기했다. 그 피해는 시장을 준비해온 스타트업들과 투자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시간은 돈이고,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행히 최근 여야를 가리지 않고 STO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이 흐름이 단지 6월 3일 조기 대선을 앞둔 ‘보여주기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법안 통과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국회는 서랍 속에 잠든 STO 법안을 꺼내 바로 처리하라는 것이 민생의 열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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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황령산 소월길에 올라
한반도 대표 시인이라면서 문학관 하나 없는 현실이 답답하여 국제 소월협회를 출범한 게 2022년 12월 26일이다. 그 이후 매월 세 번째 수요일 오전에 수영구의 (사)유라시아 교육원에서 ‘소월시 정기 감상회’를 열고 있고, 지난 11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소월 선양기관’으로 선정되어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 대상의 제1회 국제 소월 시 낭송대회’를 부산역 유라시아플랫폼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첫 대회인데도 19개국에서 104명이 참가하였다. 세계적으로 부는 한국어 열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에 소월의 시나 또 다른 고급 콘텐츠를 보탤 수 있다면, 한류에 새로운 돌파구도 열리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황령산 생태숲에 2.3km에 걸쳐 ‘김소월 시와 함께하는 길’이 조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월협회 회원들과 같이 단숨에 올라갔다. 부산시의회 정태숙 의원이 발의하고 부산시, 남구청, 산림청이 협조하여 지난해 10월부터 연말까지 3억 원의 예산을 들였단다. 소월 시비는 문현동 쪽의 황령산 유원지 야외놀이터 입구에서부터 임도를 따라 쭉 10기가 세워져 있었다. 각 시비 아래에는 진달래, 꽃무릇, 수선화로 수를 놓은 작은 화단도 꾸며져 있다. 맨 먼저 우리를 반긴 건 국민 시 ‘진달래꽃’이었고,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부모’ ‘산유화’ ‘못 잊어’가 그 뒤를 이었다. ‘바람고개’ 정상엔 ‘초혼’이 우뚝하다. ‘먼 후일’ ‘옛이야기’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는 정상에서 오른쪽 아래로 조성된 편백나무 숲길에서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생태숲 2.3km 시비 10기 건립
민족 대표 시인 기리는 명소 기대
백일장·시낭송회·음악회도 열리길
부산에 소월 국제문학관 들어서면
한국 문화 교육센터 등 두루 활용
K문학 새 수도 발돋움 기회 될지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비와 시비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고, 소월의 바다 시가 몽땅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소월은 집에서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평안북도 곽산 땅에서 자랐고, 바다를 유난히 사랑하였다. 시인에게 바다는 늘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었다. 외로움과 그리움의 표상이고 상징이었다. “저 오늘도 그리운 바다, 건너다보자니 눈물겨워라…!” 소월은 ‘여수’(旅愁) ‘어인’(漁人) ‘고독’ ‘바다’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 된다고’ ‘고향’ ‘삭주 구성’ ‘붉은 조수’ ‘바닷가의 밤’ 등 20여 편의 바다 관련 시를 남겼다. 바다 자체를 혹은 바다를 제재로 노래한 시가 전체 시 가운데 10%쯤 된다. 앞으로 황령산에 소월의 시비가 더 들어선다면 그런 점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어쨌거나, 서울 남산에는 한국일보사가 1968년에 세운 ‘산유화’ 1기뿐인데 우리의 황령산엔 소월 시가 무려 10기나 되니 반갑고 축하할 일이다. 서울에도 소월 문학관은 없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산유화’를 명분으로 중구의 숭례문 오거리에서 용산구의 한남동까지 3.7km를 ‘소월로’로 지정하고 걷기대회, 문화의 거리 조성, 시의 날 행사 등 다양하게 문화판을 벌이고 있다.
이젠 우리 부산이 서울을 대신할 차례다. 나라마다 대표 시인이 있지만, 꼭 그 나라 수도나 출생지에서만 국민 시인을 기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인 푸시킨은 전국의 18개 도시에 문학관이 서 있고, 칠레의 네루다도 전국 네 군데에 그의 문학 기념관이 있다. 필리핀도 국민시인 리잘을 마닐라와 세부에서 공원과 도서관으로 기린다. 평생 고향의 언어인 벵골어로만 시를 쓰고 한국을 사랑했던 타고르도 인도와 방글라데시 각지에 모두 여덟 개의 문학관이 있다. 1930년에 소련을 찾았다는 이유로 러시아 모스크바에도 타고르 문학관이 있을 정도다. 우리의 소월도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1923년 초에 도쿄상대로 유학을 가고 그해 가을에 관동대지진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우리는 연고지 타령만 하고 생각의 틀이 너무 좁아 보인다. 이는 국민대표 시인에 대한 합당한 처우가 아닐 것이다. 이제, 황령산에 소월 시비도 대거 조성되었으니, 우선 이 생태숲에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 소월 백일장도 열고 소월 사생 대회도 개최했으면 좋겠다. 소월 음악회, 시낭송회, 소월 바다 문학 예술제 등도 열렸으면 좋겠다. 소월은 남북통일의 상징이기도 하다. 통일 열차가 출발하는 부산에 언젠가 소월 국제문학관이나 번역 문학관이 들어서서, 부산으로 유학 오는 각국 학생들의 글쓰기센터나 한국 문화 교육센터로 두루 활용되고, 부산을 찾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정신과 얼을 다양한 언어로 전달하는 새 명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부산이 도시의 새 비전으로 정한 ‘글로벌 허브도시’, 그 글로벌 허브의 꿈은 물류, 금융,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로만 이루어질 순 없을 것이다. 문화는 도시의 품격이고, 늘 새로운 창발성을 요구한다. 글로컬 시대를 맞아 세계에 내놓을만한 부산발 문화브랜드가 무엇이라도 있어야 할 판이다. 이럴 때 소월 문학의 보편성과 국제성, 소월의 바다 문학을 우리 부산이 잘 살리고 가공하여 ‘K문학의 새 수도, 부산’의 이미지를 세계인 사이에 굳혀 나가자고 주장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도전적이고 발칙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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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2029년 개항 어렵다는 현대건설, 국토부는 어쩔 셈인가
올 것이 왔다. 가덕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기본설계안을 마련하면서 공사 기간을 108개월로 제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건설 측이 제안한 공사 기간은 당초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84개월보다 무려 2년이나 늘어난 것이다. 이에 당초 목표였던 2029년 개항은 사실상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동안 국토부는 가덕신공항 건설을 2029년 말 개항을 목표로 발표하며 여러 차례 사업 일정을 공언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국토부의 약속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토부 측은 “기본설계안 제출에서 공기는 조정 대상이 아니다. 만약 최종적으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108개월을 제시하면 자격 조건 미비로 수의계약 절차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하고 있다. 국토부는 현대건설이 제시한 108개월의 공사 기간을 계약법 위반으로 보고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공사 기간에 대한 비판 이전에, 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철저히 되짚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토부는 가덕신공항 개항을 2029년 말로 설정하고, 이에 맞춰 사업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그간 여러 차례 입찰 유찰과 사업 지연, 공사 기간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가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 정녕 국토부는 어쩔 셈인가?
공사 기간 연장을 두고 만약 경쟁 입찰이었다면 상황이 달랐을 텐데,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한 상황에서 공기 연장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기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국책사업인데도 입찰조건까지 어겨가며 ‘배 째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공사업의 일정과 조건은 국가의 정책 목표와 맞아야 한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일정 변경을 제안하며 국가계약법을 무시했다. 이는 국민의 세금을 다루는 공공사업에서 기본적인 책임감을 저버린 처사로, 가덕신공항 프로젝트 일정에 다시 불확실성을 가져왔다. 현대건설 컨소시엄도 이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만약 중앙건설심의위원회가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기본설계안을 검토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입찰과 관련된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 이 경우 최소 6개월에서 1년 가까운 시간이 더 소요되며, 현대건설 컨소시엄 외에 다른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자칫 가덕신공항 건설이 또 다시 ‘공허한 약속’이 될 수 있단 얘기다. 가덕신공항 프로젝트는 국가의 중요한 사업인 만큼, 국토부와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이제라도 현대건설은 기본설계안을 재검토하고, 현실적인 공사 기간을 설정해 국토부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국토부 역시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가덕신공항이 성공적으로 완공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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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국 대비 더 많이 떨어진 부산 체감 경기 대책은 없나
부산 지역 소비 심리가 다섯 달째 꽁꽁 얼어붙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부산본부의 ‘4월 부산 지역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지역 소비자심리지수는 96.5로 전월 대비 1.1포인트(P) 하락했다. 부산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2월 계엄 여파로 12.9P 떨어진 93.0까지 급락했다. 심리지수가 100 미만이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12월에 100 아래로 떨어진 심리지수는 5개월째 100 이상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달 들어 전월보다 더 떨어진 것은 부산 시민들이 느끼는 경기 불안감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미라서 매우 우려스럽다.
더욱이 이번 조사는 현재 우리나라가 장기 불황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유독 부산의 소비자심리가 더 악화됐다는 것을 입증했다. 4월 전국 평균 소비자심리지수는 93.8로 전월보다 0.4P 오른 반면 부산은 1.1P나 떨어진 것이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부산 소비자심리의 불안감은 무척 심각한 수준이다. 향후 부산의 경기를 어떻게 전망하느냐는 부문에서도 부산은 0.2P 하락했다. 반면 전국 평균은 0.4P 상승했다. 현재생활형편과 생활형편전망, 가계수입전망 등에서도 부산은 0.2~0.5P 떨어진 반면 전국 평균은 변동이 없었다. 부산 소비자심리가 전국 평균에 비해 악화된 것은 그만큼 경제 상황이 다른 도시에 비해 나쁘다는 방증이라서 대책이 시급하다.
굳이 한국은행의 조사 결과가 아니더라도 부산 시민의 대다수는 불황의 골이 너무 깊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도심 번화가에도 임대를 기다리는 빈 점포들이 속출한다. 역세권도 예외가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식당 등 점포 운영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우성이다. 더욱이 소비 경제를 뒷받침하는 부산의 아파트 가격 등도 2022년 6월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등할 기미조차 없다. 일부 고가 아파트를 제외하면 아예 거래조차 실종됐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까지 겹치면서 부산 시민들의 소비자심리는 끝없이 추락한 것이다. 소비 위축을 막을 수 있는 특단의 정책이 절실하다.
가장 큰 문제는 부산 지역 경제 불황과 소비자심리 위축이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부산은 경기에 민감한 제조업 기반 도시다. 현재도 미국 관세전쟁 등의 여파로 지역 제조업체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향후 관세와 환율 조정에 따라 지역 경제는 더 출렁일 것으로 우려된다. 더군다나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도 -0.2%로 집계됐다. 한국 경제가 역성장 수렁에 빠지면서 부산 지역 경제는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더 충격을 받고 있다. 이대로 가면 지역 자영업자 폐업 도미노와 중소기업 부도 대란이 현실화할까 걱정스럽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과 부산시가 합심해 지역 금융 지원 등 맞춤형 경기 부양책 마련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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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연휴를 잘 보내는 법
이번 주말부터 4일간의 연휴가 시작된다. 근로자의 날과 하루를 더 쉰다면 최장 6일간의 휴일을 보낼 수 있다.
연휴를 잘 보내는 법은 제각각일 것이다. 그럼 연휴를 최악으로 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외로 많은 이들이 꼽는 휴가를 망치는 법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이나 텔레비전 시청 같은 수동적 활동으로 휴일을 다 보내고 나면 쉬었다기보다는 허무함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후회가 든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4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은 하루 평균 3.7~5.7시간의 여가 시간을 갖는데, 여가 시간에는 텔레비전이나 동영상 시청, 인터넷 등 수동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여가 활동에 참여한 종류가 많을수록 여가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연간 5개 이상의 여가 활동에 참여한 이들은 여가생활 만족도(7점 척도 기준) 평균이 5.4점에 달했다. 반면, 1~2개 활동에 그친 이들의 만족도는 평균 4.8점에 머물렀다.
휴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하던 일을 멈추는 것을 넘어, 자신의 만족감을 높이는 의도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결국 잘 쉬려면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즐거운지 자기 이해가 먼저이다.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자신의 즐거움을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짖궃게 한 번씩 들려주는 섬뜩한 비유가 있다. ‘결혼은 연필깎기’라는 말이다. 연필깎기는 연필을 연필답게 만들지만, 깎이다 보면 연필은 몽당연필이 되었다가 결국 사라진다(!). 결혼뿐일까? 사회생활도 비슷할 것이다.
부모, 직장인 등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책임에만 익숙해져, 자신을 제대로 돌보기 어렵다. 역할만 있고,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직장 맞춤형 인간으로 수십 년을 살아오다 퇴직 후 무한정 주어진 시간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필이 아닌 만년필이 되려면 자기를 잘 돌보고, 필요할 때 잘 쉬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쉼을 추구하는지 아는 것은 자신을 잘 돌본다는 것이고,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다. WHO는 자기 돌봄을 ‘개인이 자신의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며, 질병에 대처하고, 장애를 관리하기 위해 취하는 능동적인 행동’으로 정의한다.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과 같은 신체적 돌봄부터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정신적 자극과 휴식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도 자기 돌봄의 영역에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식사만 하더라도 건강한 식사를 하려면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식사량이나 식사의 종류가 달라진다. 평균은 참고 사항이지 모범 답안이 아니기에 자신의 몸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내 몸이나 정서 상태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과 소통하려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호흡에 집중하는 호흡 명상을 한 번이라도 해보면, 단 몇 초만이라도 잡생각 없이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조용히 관찰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맛을 음미하는 것, 몸을 움직일 때 근육의 긴장도를 느끼는 것 등도 말처럼 쉽지 않다.
회사와 가정에서 맡은 역할에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해 자신을 돌보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초고령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자신에게 집중해 스스로를 돌보는 인프라가 더욱 필요하다. 한국의 기대수명은 2022년 기준 82.7세인데 건강수명은 65.8세에 불과하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는 약 17년. 수많은 이들이 삶의 후반부를 질병이나 불편과 싸우며 살아간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의사 등 전문가들을 이 간극을 줄이는 방법으로 자기 돌봄을 꼽는다.
이 때문에 최근 유튜브 등 자기 돌봄에 관한 콘텐츠가 크게 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자기 돌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부산일보도 여행과 음식, 건강, 문화생활 등의 콘텐츠를 더 강화할 예정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여가를 즐기고, 자신을 잘 돌보는 방법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는다. 헬스장 운동 영상을 누워서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을 돌보는 행위를 직접하는 이들이 늘었으면 한다.
이번 연휴,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자기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내 몸과 마음은 어떤지, 그리고 나를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탐색하는 여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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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부산 문화 전성시대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제작됐다가 유실된 영화 ‘낙동강’(1952)이 발굴, 복원된 덕분에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7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건 문화사적 사건이었다. 전란 중에 어떻게 부산에서 영화 제작이 가능했던 것일까. 1000일의 임시수도 부산이 문화 수도였기 때문이다. 피란길에 오른 문학과 미술, 음악 등 문화계 인사들이 부산에 모여들었고 이들은 광복동 다방 거리 등에서 예술의 혼을 이어갔다.
영화 ‘낙동강’은 1950년 8~9월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를 소재로 한 점뿐만 아니라 당시 부산에서 학교 음악교사로 있던 윤이상이 제작에 참여한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독일 유학 이후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선 작곡가의 초기 작품이 묻힐 뻔했다가 재조명된 것이다. 주제곡 ‘낙동강’은 노산 이은상의 동명 시에 곡을 붙였고, 제법 인기도 얻었다고 전해진다. 피란 시절 윤이상의 다른 작품에도 국난의 황망함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박목월의 시 ‘달무리’ ‘나그네’에 선율을 붙인 동명의 가곡에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다는 평가다.
난리통에 부산에서 어울린 시인과 작곡가의 의기투합은 자연스러웠다. 자갈치시장 대폿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시인 박화목과 작곡가 윤용하는 동시대인의 역경을 노래로 승화하자고 다짐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옛 생각이 외로워…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박화목이 써 온 ‘옛 생각’을 윤용하가 ‘보리밭’으로 제목을 바꿔 노래로 만들었다. 한국적 서정이 담긴 선율 덕분에 오늘날까지 애창되는 한국의 대표 가곡으로 자리잡았다. 자갈치시장 친수공간에는 ‘보리밭’ 탄생 일화와 악보가 새겨진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전쟁통에도 예술가들은 창작을 멈추지 않았고, 피란민들을 위로했다. 그 시대의 기억을 소환하는 음악회가 열려 주목된다. 29일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열리는 ‘부산 전성시대’에는 피란 시절 부산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의 가곡 12곡이 무대에 오른다. 동진숙 임시수도기념관장은 김동리, 유치환, 이중섭 등 문인과 화가, 작곡가의 당시 사진과 영상으로 해설을 덧붙인다. 전란 중 문화예술의 꽃을 피운 예술인들이 75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이는 셈이다. 공연 기획사 ‘부산문화’는 설립 30주년을 기념해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 고난의 시대에도 찬란했던 과거를 되새기며 부산 문화의 전성시대를 이어가겠다는 취지다.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을 견인하는 노력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