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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인구 절벽에서 살아남기
“제 주변 20대 친구들 대부분 부산에서 살고 싶어해요. 문제는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거죠. 공무원, 교사, 공기업 직원 아니면 괜찮다 할 직장이 없으니 다 떠날 수밖에요. 그나마 요즘은 원격근무가 가능해진 IT 업계 친구들이나 자영업자 정도만 지역에 남아있어요.”
“공공기관 지역 이전이나 균형 발전을 이야기하면 서울, 수도권의 것을 빼앗겠다는 걸로 보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수도권만으로 국가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까요? 수도권과 지역, 양 날개로 날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경제성장의 새 동력, 한 축으로 동남권을 바라봐 주면 좋겠습니다.”
최근 만난 부산의 20대, 30대 직장인의 토로다. 요즘은 어떤 모임에 가도 지방 소멸, 인구 유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인구 수에서도 인천에 밀려 ‘제2도시’ 위상을 뺏기게 생긴 부산의 위기감 때문일 거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2년 국내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인천(1.0%)은 세종(2.7%)에 이어 두 번째로 순유입률이 높은 지역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산(-0.4%)은 울산(-0.9%), 경남(-0.6%) 등과 함께 순유출률이 높은 지역 5곳에 포함됐다.
날이 갈수록 수도권 집중 현상은 완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서울, 경기에 이어 충청권까지 수도권에 편입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 국내인구이동통계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확인된다. 수도권과 중부권으로 인구가 순유입되는 동안 영남권은 전 연령층에서 순유출이 발생했다. 수도권으로 3만 7000명이 순유입된 반면, 영남권에서는 6만 1000명이 순유출됐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지역을 떠나는 청년층의 이동도 수치로 드러난다. 부산대와 부산외대, 부산가톨릭대, 대동대학 등 캠퍼스가 밀집한 부산 금정구는 전국에서 순유출률이 높은 시·군·구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학교가 많은 부산은 20~24세 인구의 유입이 많은 반면, 졸업후 일자리가 없어 25세 이상 청년이 꾸준히 유출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부산의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부산의 인구 이동 패턴과 관련해 “지난 20년 간 바뀐 게 하나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균형 발전 필요성에 대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정부가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수십 년째 방치하고 있는데 변화가 있을 수 있겠냐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지역의 인구 유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 부산에서 나가는 길과 다리를 몽땅 끊는 수밖에….”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보탰다.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지역을 떠나야만 하는 청년들. 그렇다면 수도권에 사는 청년들은 과연 행복할까? 이들은 인구 과밀로 인한 높은 집값, 장거리 출퇴근 등 치열한 생존 경쟁에 시달린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에 그친다. 같은 분기 역대 최저를 기록한 우리나라 전체 합계출산율(0.79명)은 물론, 부산의 합계출산율(0.73명)보다 낮아 전국 꼴찌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획기적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한다. 수도권 과밀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는 건 국가 전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도권 집중을 부른 1960년대식 성장 거점 개발로는 저출생, 인구 절벽 시대를 건널 수 없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사는 기형적인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도권 집중화 사례로 꼽히는 일본만 해도 전체 인구의 30% 정도만 수도권에 거주한다.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인구 분산 정책으로 2019년부터 지방 이주지원금 제도를 운영 중이다. 올 4월부터는 지원금을 3배로 늘려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이사하는 가족에게 18세 미만 자녀 1인당 약 1000만 원(100만 엔)의 현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다만, 이런 현금 지원 방식은 실효성 논란이 있다.
보다 효과적인 대안으로 좋은 일자리가 지역에 골고루 분산될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나라도 지역 이전 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는 ‘법인세 차등화’ 같은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세계 최대 원전 밀집도로 고통 받고 있는 동남권 주민을 생각하면 ‘전기요금 차등화’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까지 보내기 위해 발생하는 송전 비용과 송전탑 인근 지역 주민의 피해까지 고려한다면 수도권이 더 높은 전기 요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요금, 법인세 인하와 같은 직접적인 세제 혜택으로 기업 이전을 끌어낸다면 일자리 부족, 인구 감소와 같은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가 만난 한 지역 청년의 말처럼, 수도권이라는 하나의 날개로는 우리 경제도 더 이상 비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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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말 광] <996>금도가 너무 크다
이 글 제목 때문에 미리 말하지만, ‘금도’는 지켜야 할 선, 뭐 그런 게 아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금도(襟度):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병사들은 장군의 장수다운 배포와 금도에 감격하였다.)
바꿔 말하면 포용력이나 도량이라는 뜻. 그러면, 대체 누가 이 글 제목처럼 금도가 너무 크냐고. 바로 국립국어원이다.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미싱(mishin): 바느질을 하는 기계. =재봉틀.
괄호 안에, 원어가 마치 영어인 것처럼 ‘mishin’이라고 달아 놓았지만, 사실은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다. 일본에선 ‘sewing machine(재봉틀)’에서 machine만을 가져와 미싱(ミシン)이라고 부른다.
어쨌거나, 재봉틀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저렇게 일본말을 사전에 올려야 했나, 싶다. 금도도 정도가 있는 법.
*나이롱환자(←nylon患者): 환자가 아니면서 환자인 척하는 사람을 익살스럽게 이르는 말.
표준사전 올림말(표제어)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 여기 나온 ‘나이롱(ナイロン)’ 역시 ‘나일론’의 일본말. ‘가짜환자, 엉터리환자’가 ‘나이롱환자’에 밀릴 만큼 이상한 말인가. 국립국어원과 표준사전은 일본어식 외래어에 왜 이렇게나 관대할까.
*파마(←permanent): 머리를 전열기나 화학 약품을 이용하여 구불구불하게 하거나 곧게 펴 그런 모양으로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만드는 일. 또는 그렇게 한 머리.
이 말 역시 영어 ‘permanent wave’에서 permanent만 가져와 파마(パ-マ)로 쓰는 일본식 표기를 그대로 인정한 것.(놀랍게도, ‘퍼머’로 쓰면 틀린다.)
아래 말 역시 일본말 영향을 받았다.
*샤쓰(←shirt): 서양식 윗옷. 양복저고리 안에 받쳐 입거나 겉옷으로 입기도 한다. =셔츠.
이러니 당연히 와이셔츠 외에 ‘와이샤쓰’도 표준사전에 올라 있는 것. 자, 여기까지만 해도 ‘이래도 되나’ 싶은데, 표준사전에는 이런 말까지 올라 있다.
*고데(kote[만]): 불에 달구어 머리 모양을 다듬는, 집게처럼 생긴 기구. 또는 그 기구로 머리를 다듬는 일.(고데로 머리를 손질하다….)
이래 놓고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온라인가나다’에는 또 아래처럼 답변을 달아 놓았으니,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알고 계신 것처럼 ‘고데기’의 ‘고데’는 일본어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일본어 투 순화 용어 자료집에 따르면 ‘불고데’는 ‘(머리)인두’로 순화된 바 있으니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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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자기부금영수증으로 불이익 없는 연말정산을
매년 12월이 되면 ‘13월의 월급’, ‘연말정산 절세 꿀팁’ 등의 연말정산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진다.
평소 국세청과 거리가 멀던 직장인들도 매년 1월 15일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 개통을 기다리며 다사다망(多事多忙)했던 한 해의 보상같은 연말정산 환급금을 기대하게 되나, 모든 근로자가 환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연말정산이란 근로자(일용근로자 제외)가 올해 납부한 근로소득세를 정산하는 절차로서, 원천징수의무자(회사)가 근로자에게 매월 급여를 지급하는 때에 급여수준 및 공제대상 가족수별로 계산한 근로소득세를 징수하였다가 다음 연도 2월분의 급여를 지급하는 때에 이미 원천징수한 세액이 세법에 따라 정확하게 계산한 연간 근로소득세액보다 많은 경우 많이 낸 세금은 돌려주고, 적게 낸 경우에는 추가납부하게 된다. 연말정산 후 환급세액 또는 추가납부세액이 발생하는 것은 연말정산시 근로자가 제출한 서류 등에 의해 부양가족과 소득·세액공제 금액이 정확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연말정산을 돕기 위해 홈택스를 통해 연말정산 증명서류를 인쇄 및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간소화자료 중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등 대부분의 자료들이 전산화되었으나, 기부금 영수증은 회사에 종이로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도 돈을 주고 허위 기부금영수증을 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세청은 매년 12월 불성실기부금수령단체 명단을 공개하는데, 거짓기부금영수증(5회 또는 5000만원 이상) 발급을 사유로 2022년에 명단공개한 단체는 24곳(부산지방국세청 관할 4곳)이었다.
거짓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한 단체는 기부금영수증불성실가산세를 부과받고, 거짓기부금영수증으로 세액공제를 받은 자(기부금 공제자)는 공제세액의 40%를 가산세로 추가 부담하게 된다. 더욱이 직장으로 거짓기부금영수증 공제에 대한 통보가 가게되니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기부금 부당공제를 방지하기 위해 국세청은 기부금 세액공제를 받은 근로자를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하는 등 거짓기부금영수증 수수 관행 근절에 힘쓰고 있다. 당장 적발이 되지 않더라도 5년 이내 부당공제 통보가 가능하고 뒤늦게 적발될수록 가산세 부담이 더 늘어나는 만큼 눈 앞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거짓기부금영수증 수수는 위법행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 종교단체 명의를 위조하여 거짓기부금영수증을 판매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2021년 7월 1일 전자기부금영수증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는 타인이 기부금단체 명의로 거짓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더라도 이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자기부금영수증 제도를 이용할 경우, 기부자와 기부금 단체는 홈택스 전자기부금영수증 발급 시스템을 통해 전자기부금 영수증 발급현황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다. 그리고 기부금단체가 전자기부금영수증 발급을 누락한 경우에 기부자가 홈택스에서 발급을 요청하면 기부금단체가 기부내역을 확인하여 전자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다.
전자기부금영수증 제도는 기부금단체와 기부자가 기부금영수증을 쉽고 편리하게 발급·관리하고, 세법상 기부금영수증 발급권한이 없는 단체의 발급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이 제도를 이용하여 기부금단체가 기부내역을 홈택스에 입력하면 전자 영수증 형태로 등록되고, 기부자는 홈택스에서 기부내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별도로 영수증이 필요하면 홈택스에서 출력하면 된다. 또한, 적격 기부금단체만 전자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으므로 기부자는 해당 단체가 비적격 단체인지 여부를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전자기부금영수증 제도를 근간으로 건전한 기부문화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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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구멍 난 양말
양말은 고대인이 거친 자연환경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주로 마찰 완화를 위해, 추운 지역에서는 하체 보온을 위한 필수 품목이었다. BC200~100년 청동기 시대부터 인류의 의복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겪었고, 발에 밀착되는 니트 형태로 발전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고대 이집트 안티노폴리스 무덤에서 발견된 AD300~500년경에 제작된 매듭 없는 샌들용 짧은 양말이다. 양말은 중세 이후에는 옷과 함께 인간의 패션 욕구를 표현하는 형태로 기능이 점차 확대됐다.
우리나라에 니트 양말이 전해진 것은 조선 후기 고종 7~8년경이다. 선교사들이 양말 짜는 기술을 도입한 데서 비롯됐다. 일제 강점기에 양장 차림이 선호되면서, 버선에 비해 간편하고 실용적인 양말이 급속히 대중화됐다. 1919년에는 미국 감리교선교회가 운영하던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실습실에 미국제 최첨단 자동 양말기계 16대가 설치돼 수공업에서 기계 산업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양말은 소설이나 시, 영화에서 신분의 상징으로도 활용된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는 고아 흙수저 출신 미혼모 여직공 팡틴의 처량함을 ‘헝겊모자와 무명으로 기운 코르셋, 뒤꿈치가 구멍 난 양말을 착용한 모습’으로 묘사됐다. 한국에서도 힘든 시절, 양말 구멍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던 기억, 전구에 끼워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일상적이었다.
구멍 난 양말이 한국 정치판에 뜬금없이 소환됐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토크 콘서트에서 해진 양말을 보여 준 데 대해 김기현 의원이 “구멍 난 양말을 신어야 할 만큼 가난한지 모르겠다. 저와 아내는 흙수저이지만, 구멍 난 양말을 신을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고 공격하면서부터다.
집권 여당 대표 후보가 걱정할 숭숭 구멍 뚫린 것이 양말뿐일까. 난방비와 고물가 등 민생 위기와 지방 소멸, 안보 위협 등 심상찮은 국내외 상황에서 다양한 정책 경쟁이 사라진 정당 민주주의의 구멍부터 메꿀 걱정은 급하지 않을까. ‘제때의 한 땀이 나중의 아홉 땀을 덜어 준다’는 속담이 있다. 양말에 난 구멍이 너무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고쳐야 수월하다는 교훈이다. 세상 물정을 아는 정당과 정치인이라면 살림살이가 나아진 요즘에는 구멍 난 양말은 쉽게 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듯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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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유령은 죽지 않는다
마돈나처럼 완벽한 여자가 되어 짝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 앞에 서는 게 꿈인 고1 소년 동구의 이야기를 그린 ‘천하장사 마돈나’. 참신한 소재에 매력적인 인물을 내세운 이 영화 한 편으로 이해영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졌다. 이후 그는 소녀들의 신비로운 얼굴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로 독특한 미스터리물을 완성했고, 2018년엔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이 돋보였던 ‘독전’을 통해 감독의 이름을 대중에 각인시킨다.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이전 작품과는 다른 결을 선보여 왔던 이해영 감독이 ‘유령’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는 것 같다는 평가처럼 독보적인 미장센을 담아낸 이번 영화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스파이 액션물이다. 물론 대부분의 스파이물이 그렇듯 어디서 본 듯한 액션 장면도 분명 있지만, 이 또한 감독 특유의 분위기와 만나 새롭게 창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1933년, 이제 조선이란 단어가 희미해져 갈 무렵의 경성. 누군가는 조선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며 적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희생도 기꺼이 감내한다. 거기 있지만 없는 존재, 자신이 누구인지 존재를 노출해선 안 되는 항일조직인 흑색단. 그들을 일컬어 ‘유령’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유령을 모조리 색출해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뿌리 뽑겠다는 일본. 이 충돌이 바로 영화 ‘유령’의 시작이다.
신임 총독의 경호대장인 ‘카이코’의 임무는 유령의 존재를 밝혀내 조직의 일원들을 처단하는 것이다. 총독부 통신과에서 암호문 기록을 담당하는 ‘차경’, 정무총감 비서 ‘유리코’, 감독관 ‘무라야마 쥰지’,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과 말단 직원 ‘백호’가 유령으로 의심받는 인물들이다. 영화 전반부는 유령으로 의심받는 5명이 외딴 호텔에 감금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유령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심리 추리극의 형식을 띤다. 이후 영화는 유령의 존재가 발각되면서 장르가 전환되어 한 편의 첩보극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영화는 추리나 액션 외에도 영화 속 주요 공간과 소품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령이 암호 전달을 위해 드나드는 아지트인 극장 황금관과 경성 주변 거리는 비밀스러움과 스산함이 묻어난다. 5명이 감금된 호텔의 경우 고풍스럽고 우아함이 넘쳐나며 영화 속에서 긴장감을 부여하는 소품인 성냥갑, 영화 티켓이나 포스터까지도 상당히 공을 들여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캐릭터의 개성을 살려주는 스타일로 시각적인 즐거움도 만족시킨다.
사실 지금까지 항일 독립투사가 등장하는 영화들의 경우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이고 여성들은 주변부 인물로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항일투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남성 캐릭터가 부각됐던 ‘독전’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겐 낯설 수도 있을 텐데, 감독 초창기 작품들의 결을 상기한다면 이번 영화 속 여성 연대는 감독이 이전부터 보여 왔던 작품들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영화 속 여성들이 함께하는 총격신과 액션은 단순히 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닌, 유연하고 아름다운 몸짓 그리고 결연함까지 더하고 있어 기존에 볼 수 없던 장면들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유령’을 논하면서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을 수 없다. 강렬한 액션신과 더불어 점차 서로를 신뢰하며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을 흡입력 있게 그려내는 이하늬, 박소담과 애묘인으로 등장하는 서현우 배우의 연기는 기묘하면서 귀엽다. 이 영화가 어중간한 추리물이나 첩보물이 되지 않은 데에는 배우들의 힘이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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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04) 자본주의 변화 속 성찰 없는 혼란, 펑 첸지에 ‘중국 25호’
펑 첸지에(펑정지에·1968~)는 중국 출신의 작가다. 근대미술과는 거리가 먼 사천성에서 태어나 사천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과 유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8년 싱가포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을 비롯하여 미국·독일·프랑스·스위스·일본·한국 등에서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펑 첸지에는 중국, 싱가포르, 태국뿐만 아니라 제주 저지예술인마을에도 스튜디오를 두고 세계적으로 그의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펑 첸지에는 1980년대 청년 시절을 보내며 천안문사태 등 중국의 격동기를 고스란히 경험했다. 1990년대 중국은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유입되며 대중문화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퍼져나가는 시기였다. 기존 중국 미술이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전통 수묵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자본주의 도입 이후로는 중국인들이 겪은 문화적 충격을 표현한 작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펑 첸지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사천은 이미 현대 대중문화의 도상과 영상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펑 첸지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도입 이후의 중국 현대사회를 예리한 비판의 시선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펑 첸지에의 작품은 광고판에서 영향을 받은 듯 스케일이 큰 화면을 주로 보여준다. 별다른 배경 없이 여성의 인물이 꽉 들어차 있고 붉은색과 분홍색, 짙은 초록색과 청록색을 주조색으로 한다. 이렇게 강렬한 색은 중국 전통 회화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작품 속 여성은 마치 인형처럼 매끄럽고 새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을 가졌다. 또 아주 진한 화장을 한 듯하다. 광고 속 모델 같은 여성은 눈 전체의 크기에 비해 눈동자가 너무나 작은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작은 눈동자는 눈의 바깥쪽으로 향하는 외사시(外斜視)로 그려져 화려한 외모와 다른 ‘어색함’을 강조한다.
‘중국 25호’(2003)는 화폭을 가득 채우는 여성의 얼굴, 붉은색과 청록색의 강렬한 보색 대비를 통해 즉각적으로 펑 첸지에의 작품임을 인지하게 한다. 단정하게 묶어 올린 머리와 길게 뻗은 목, 매끄러운 피부와 화장이 돋보이는 젊은 여성은 역시나 초점 없는 눈동자를 가졌다.
화려함과 공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펑 첸지에의 작품에서는 ‘변화하는 중국 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드러난다. 영혼이 사라진 것 같은 여성은 풍요로운 사회 속 성찰 없이 혼란을 겪고 있는 중국과 현대 중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우영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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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MZ를 배우는 MZ
“요즘 MZ세대들은 이런 말 쓴다며?” 최근 이런 얘기 들을 기회가 많았다. 처음 몇 번은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꽤 변죽 좋게 “아유, 그럼요” 하며 받아친다. 적극적인 동조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극적인 방어다. 나는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는 회색지대 MZ이기 때문이다. ‘제 생각은 좀 달라요’ 하며 MZ세대와 스스로를 분리하는 ‘요즘 애들’이 있는가 하면, ‘저는 MZ세대처럼 말하고 행동해요’라며 트렌드세터(유행 선구자)를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침묵함으로써 ‘MZ세대’ 이미지에 조용히 편승하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인터넷으로 MZ를 배우는 MZ가 되어 가고 있다.
자기 주관과 개성이 뚜렷한 세대. 아마도 요즘 온라인 세상에서 그리고 있는 MZ세대의 모습인 듯하다.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되는 코미디 프로그램 ‘SNL’은 20대 사원들을 현실감 있게 그려 내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노래를 들으며 일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되려 상사를 눈치 보게 만들고, 의례적으로 막내들이 해 온 행동들(수저 놓기, 물 떠오기, 자진해서 심부름하기)을 하지 않는다. 물론 과장이고, 속으로야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상황이다. 대놓고 과장된 캐릭터들이 등장해 불편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그게 웃기다. 불편하면서도 짜릿하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요즘 애들’에 편승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문제의식은 있는데 용기는 없는 마음을 콘텐츠가 대변해 준다.
사실 현실에서 미디어 속 MZ세대처럼 할 말 다하고, 남들 신경 안 쓰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을 실제로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어쩌면 남을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더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요즘 애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 속 MZ세대는 사실 실체가 없다. 어디를 가나 회자되는 MZ 밈(유행 콘텐츠)도, 사실 온라인 세상에 존재하는 모방 콘텐츠의 산물일 뿐이다. MZ세대의 이미지는 왜곡된 채로 일반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MZ 문화가 트렌드를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 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일종의 이익이 따라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 “MZ세대로서의 이미지가 먹힐 때 휴가를 쓰자”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 있다. 나에게 주어진 정당한 휴가인데도 상사 눈치를 보고 쓸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왕이면 MZ세대 문화가 유행처럼 퍼져 있을 때 휴가를 쓰자는, 웃기지만 다소 슬픈 이야기다. 노동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눈치 보기’가 팽배한 경직된 사회 속에서 ‘눈치 없는 척’ 휴가를 쓰는 건 누군가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 노동자에게 새로운 문화는 ‘요즘 애들처럼 한 번 해 보자’ 하는 용기를 줄 수 있다. 조직도 중요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도하게 눈치를 보며 쉬지 못하는 상황은 피하자는 것이다.
<불안>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유머는 불만을 제기하는 데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겉으로는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화가들은 우리가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어색한 측면들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이 지점이야말로, 현대인들이 MZ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기는 이유가 아닐까. 꼰대 같은 상사를, 책임감 없는 누군가를, 배려 없는 타인을 대신 일갈하고 자신의 행동도 돌아보게 만드는 것. 이것이 유머 콘텐츠의 순기능이다.
사실 MZ세대 문화는 전 세대가 즐기고 향유할 만한 문화다. 우리는 모두 답답한 일상에서 ‘사이다’ 같은 일침을, 비상식적인 규칙에 대한 반기를,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당당한 태도를 꿈꾼다. 지금의 MZ와 멀어 보이는 기성세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언젠가는 청년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본 X세대는 지금의 MZ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이끌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그 당시 새로웠던 문화가 지금의 기성문화가 된 것뿐이다.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와 충돌하고 화합하면서 변화를 도모할 수밖에 없다. MZ도 MZ 문화를 배우는 이 상황에, 다른 세대라고 배우지 못할 건 없다.
결국 중요한 건 ‘MZ세대의 문화’가 아니라 ‘변화하는 자세’다. 청년으로서 지금은 MZ 문화가 편하고 즐겁지만, 앞으로 나이가 들었을 때 새로운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새로운 문화가 내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세대를 비판한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것들은 계속 등장하고 세대는 변한다. 비록 실체 없는 세대론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세대의 출현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 변화에 민감한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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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하이브리드 가덕신공항, 조기 착공 서둘러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2030월드엑스포 부산 현장 실사와 TK신공항 특별법 추진을 계기로 가덕신공항의 공법 결정과 조기 착공을 더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지지부진한 건설공법 채택인데, 이와 관련해 1일 박형준 부산시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다. 박 시장은 이날 기존 국토부의 방안인 가덕도 육상에 터미널과 지원 시설을 배치하는 내용을 가미해 새 수정안을 제시했다. 해상 매립·부유식 공법을 혼합한 시의 하이브리드 방식에다 국토부안을 절충한 것이다. 건설공법을 놓고 언제까지 시간을 끌 수 없는 만큼 시의 제안이 공법 논쟁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하겠다.
가덕신공항의 건설공법은 개항 시기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특히 월드엑스포 유치에 전력을 쏟고 있는 부산으로선 무슨 일이 있어도 2030년 이전 개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시가 안전성을 감안하면서도 엑스포 이전 개항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공법을 고집하는 이유다. 반면, 국토부는 가덕도 육상에 여러 공항시설을 검토하고 있는데, 2030년 이전 개항이 힘들다는 게 결정적인 단점이다. 시가 안전성을 고려하면서 2030년 이전 개항이 가능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수정안을 내놓은 것은 그래서 더 주목된다. 남은 것은 국토부와의 협의인데, 안전과 조기 개항의 이점을 충분히 설득해야 할 것이다.
공법 결정을 두고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데에는 오는 4월 초 부산에 오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에게 명확한 공항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강력한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엑스포를 위해 기존 국제공항 옆에 또 활주로 6개를 갖춘 초대형 공항 건설 계획을 밝혔다. 이런 판에 입·출국도 인천공항을 통해 부산에 온 BIE 실사단에게 2030년 이전 개항은 고사하고 아직 건설공법조차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는 정말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토부는 3월 초엔 공법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하는데, 공법만이 아니라 전체 개항 로드맵까지 확정해 밝힐 필요가 있다.
엑스포 유치 등 여러 국내외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가덕신공항은 내년 연말 이전에는 반드시 첫 삽을 떠야만 한다. 그래야 최소한 2030월드엑스포 행사 개최 시기에 맞춰 개항할 수가 있다. 물론 가덕신공항이 엑스포 유치만을 위한 부수 시설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현재 가덕신공항의 조기 개항과 성공은 부산월드엑스포 유치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이 박 시장에게 요구한 “2024년 조기 착공에 시장직을 걸라”라는 압박이 아니더라도 이 시점에서 시장직을 거는 결연한 자세가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그런 절박함과 결연함이 가덕신공항의 착공을 하루라도 당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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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방대 통한 지역 혁신, 정책 연착륙 기대한다
교육부가 대학 지원사업 예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대학 예산 집행 권한을 2025년부터 모두 지방자치단체로 넘긴다고 한다. 앞으로는 지자체가 직접 지역대학을 선택해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대학 재정지원 사업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이 같은 내용의 교육부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구축 계획은 1일 경북 구미 금오공과대에서 열린 인재양성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중앙정부가 지역대학 지원사업 예산 집행권을 지자체에 넘겨 대학과 지역을 함께 지원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은 너무 늦어서 아쉽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 닫는다’는 비수도권 대학의 위기는 이미 현실화되었다. 2023년도 대학입시 정시모집에서 부산 지역대학 몇몇 학과에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시모집 경쟁률이 3대 1에 못 미쳐 사실상 미달인 전국의 대학 68개 가운데 59곳이 비수도권이었다. 그동안에는 교육부를 비롯한 중앙부처에 1000개 이상의 대학 지원사업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대학이 각 사업에 개별적으로 신청해 선정될 경우 지원을 받는 방식으로는 대학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대학이 지역 일자리 창출, 지역 산업 발전 등 지자체와 손잡고 지역 사회 난제에 해결책을 제시할 경우 지자체에서 한 번에 큰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어 대학사회의 움직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교육부가 올해 10개 내외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비수도권 모든 지역에 총 30개 내외의 글로컬 대학을 선정해 지원한다는 계획도 눈길을 끈다. 글로컬 대학은 지역 발전을 선도하고 지역 내 다른 대학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특화 분야를 지닌 대학을 의미한다. 글로컬 대학은 지역의 교육여건을 한 단계 높여 해당 지역에 계속 거주하는 주민을 늘리는 등 국가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당장 올해부터 시작되는 ‘라이즈’ 시범사업 대상은 전국에 5개 대학뿐이어서 치열한 선정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대학을 통한 지역 혁신만으로는 지금의 ‘지방 소멸’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별도로 ‘지방인재 양성과 정주 체계 구축을 통한 국가균형발전 실현방안’을 제안했다고 한다. 심각한 지방 소멸 위기를 해결하려면 지역 교육력 제고와 정주 여건 개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지역대학의 문제는 대학의 문제이자 곧 지역의 문제이다. 지역대학을 통한 지역 혁신 정책의 연착륙을 기대한다. 경쟁력을 잃은 지역대학이 존폐 위기에 놓이고, 이 때문에 더 좋은 교육여건과 직장을 찾아 다시 지역을 떠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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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온기 나눔
한국인은 불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용하는 민족이었다. 온돌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초의 기록이 중국 고대 역사서 〈구당서(舊唐書)〉에 나온다. ‘고구려인들은 겨울에 긴 구들(長坑) 아래 불을 지펴 방을 덥힌다.’ 지금도 경남 하동 칠불사에 가면 온돌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한 번 불을 때면 49일 동안 따뜻하고 90일간 온기가 남았다고 전해지는 아자방(亞字房)이 거기 있다. 온돌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이상적인 온방 시스템이다. 세계적인 옥스퍼드 사전에 ‘ONDOL’이 한글 이름 그대로 올라 있다.
서구화 물결 속에서도 온돌은 살아남았다. 뜨끈한 구들의 전통은 사라졌지만 최신식 아파트조차도 온돌 난방 시설은 필수다. 바닥에 불을 피우는 대신 별도의 가정용 보일러를 이용해 난방수 온도를 조절하는 간접 난방 방식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전통 구들과 연탄이 혼합된 방식에서 현재 주류를 이루는 가스보일러 난방까지, 연료의 특성에 따라 구조와 형식은 다양하다. 온돌의 미래는 적은 연료로 열효율을 얼마나 극대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파가 몰아칠수록 온돌의 기술적 진화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치솟는 가스값 때문에 난방비가 밥상머리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도시가스 요금은 액화천연가스 수입 가격과 연동되는데 이 가격의 급등 탓이 크다.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겨울나기 노하우에 몸부림친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근래 일본에서는 ‘웜 셰어(warm-share)’ 운동이 펼쳐져 눈길을 끈다. 집안에서는 한정된 공간에 모여 난방비를 아끼고, 밖에서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서 따뜻한 시간을 보내자는 캠페인이다. 사람들은 온기와 휴식 장소를 얻고 쇼핑센터 등은 소비자를 모을 수 있어서 서로 윈-윈이다. 영국은 아예 무료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나라 곳곳에 마련했다. 시민을 위한 ‘웜 뱅크’, 그러니까 ‘온기 은행’쯤으로 불리는데 도서관, 교회, 커뮤니티 센터 등에 3000여 곳이 있다.
이런 모습에서 온기를 골고루, 오랫동안 나누는 ‘온돌의 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는 온돌의 종주국이다. 추위에 취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온기를 함께 누리려는 공동체 의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어쨌거나 코로나가 물러간 자리에 보이는 것은 정반대의 풍경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다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세상은 새삼,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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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부산 사람
찜찜하고 불쾌했다. 부산 이전을 추진 중인 산업은행(산은)의 임직원들을 달래기 위해 부산시가 준비하고 있는 여러 지원 방안을 접하고서 그랬다.
산은의 새 건물 지을 땅을 제공한단다. 부산 오는 임직원에 대해선 각종 지방세도 감면해 주고, 아이들이 다닐 학교도 원하는 곳에 배정할 방침이다. 행여나 아플까 종합검진 서비스도 제공하고, 뮤지컬 등 문화공연 관람료나 체육시설 사용료도 깎아 주겠다고 한다. 살기 좋은 입지에 아파트를 지어 산은 임직원들에게만 특별히 공급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그 정도로는 어렵사리 부산에 오는 그들에겐 오히려 부족하며, 그래서 더한 보상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다. 지난해 10월 ‘산은 부산 이전 지원단’을 꾸린 부산시는 최근 산은을 직접 찾아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고 한다.
부산시의 고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지금 부산 형편에 산은 이전은 그 얼마나 감지덕지할 일인가. 그러나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들을 극진히 대하는 건 좋으나, 숱한 차별과 곤경에도 지금껏 부산을 지켜 온 부산 사람들의 자존감은 어쩔 것이며 그들이 갖게 될 박탈감은 또 어떻게 메울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지방 사는 설움을 새삼 깨닫게 되니 그 마음이 좋을 리 없다.
무엇보다, 그런 배려가 산은 임직원들에게 통할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된다. 지금 돌아가는 사정이 부산시의 기대와는 명백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산은은 최근 정기 인사를 통해 50여 명에게 부산으로 전보 명령을 내렸다. 산은 노조가 거세게 반발한다. 이번 인사는 무리한 결정이며,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이달 초 법원에 내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노조는 이미 강석훈 산은 회장의 부산 이전 추진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12일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노조는 향후 추이를 봐 가며 파업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산은 임직원들은 그 어떤 유인책에도 부산으로 올 생각이 조금도 없음을 이 지점에서 확실히 깨닫게 된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과 관련해 부산을 비롯한 지방의 사람들은 오래전에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른바 ‘특공 먹튀’ 논란이 그런 상처의 하나다. 한 국회의원이 2010~2021년 사이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종사자를 조사했다. 그런데 이전한 지방의 혁신도시 아파트를 특별 공급받은 임직원 3명 가운데 1명 꼴로 실제 거주지나 근무지가 다른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에서는 ‘특공’ 아파트를 받은 뒤 불과 10일 만에 퇴사한 이가 있었고, 한 기관에선 ‘특공’ 아파트를 받은 64명 중 무려 40명이 전매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사례도 있었다. 지방에 오래 살라며 특별히 각종 혜택을 부여하며 아파트를 공급했는데, 혜택만 챙기고 지역을 떠나버리는, 얌체 짓을 벌였던 것이다. 지방이라고 해서 제집 마련이 수월한 건 아닌데, 이런 행위가 지역민에게 얼마나 불공정하고 괘씸하게 여겨졌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서울에서 잠깐 살다 부산으로 와서 수십 년을 살아도 자신은 언제나 서울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을 종종 본다. 이들은 지방민으로 있기를 거부한다. 기회만 되면 언제든 서울로 돌아가려 한다.
이런 형편에선 산은 같은 공공기관을 부산에 유치해도 진정으로 지역에 보탬이 되긴 어렵다. 한국거래소가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한 게 2005년 1월이다. 그 외에도 여러 기관이 현재 부산으로 이전한 상태다. 이들은 이전 후 지역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내세우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세밀히 따져 볼 일이다.
이들 덕분에 부산이 나아진 게 무엇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부산은 여전히 일자리에 허덕이고 청년이 떠나고 도시 소멸의 징후는 점점 심해질 뿐이다. 공공기관 이전은 실패작이라고까지는 말 못한다 해도,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민과의 상생” 운운하는 건 역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산은 임직원을 위해 부산시가 준비하고 있는 지원책들은 포인트를 잘못짚고 있는 게 아닌가 묻게 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요, 이쪽만의 짝사랑에 그칠 공산이 크다.
상상해 본다. 안 오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오게 해서 쓰는 것보다 차라리 이전하는 산은에 부산 인재를 데려다 쓰는 것을. 부산에도 산은 업무 따위 감당할 능력 갖춘 인재는 얼마든지 있다. 본사가 부산에 있는데 굳이 서울 사람 데려다 쓸 이유가 없다. 그냥 부산 사람을 쓰면 된다. 황당한 객기요 발칙한 상상이라고? 그리 말해도 어쩔 수 없다. 쓸데없는 넋두리라고 해도 좋다. 여하튼 서울 사람들이 부산에서 상전 노릇 하는 꼴을 더는 보기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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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심야 택시 / 이영옥(1960~)
구겨진 불빛이 굴러다니는
시간에 우리는 택시를 탔어요
한번 진입한 바닥을 빠져나갈 수 없다 해도
이 깊은 밤에 할증료를 물고라도 여길 지나치고 싶었어요
알 수 없는 운명에 걸려든 걸 알았지만
누구의 꿈을 지나가는지
창문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덜컹거렸어요
도로는 텅 비어 있었고
우리는 허공에 전속력으로 멈춰 있는 사람이 되었지요
거침없는 밤을 믿으며
모든 심야택시는 오늘도 계속 달리고 있어요
- 시집 〈하루는 죽고 하루는 깨어난다〉(2022) 중에서
심야택시를 타고 시 경계를 넘나들던 때가 있었다. ‘구겨진 불빛이 굴러다니는 시간’들이었다. 꿈이었는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쫓아다니던 때였다. ‘우리는 허공에 전속력으로 멈춰 있는 사람’이란 구절에서 그때가 떠올랐다. 젊은 시절 누구나 그런 시절을 건너가지 않았던가. ‘거침없는 밤’을 믿으며 거침없는 밤을 달려 나가는 시민들의 도시에서 우리는 또 ‘누구의 꿈을 지나가는지’ 모를 길을 달린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이 텅 빈 도로처럼 다시 막막한 땅일지라도 인간의 영혼은 충만해지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밀도가 생길 것이다. 인생이 다 그렇지, 라는 말은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안고 있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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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눈] 비상구 폐쇄 행위 이제 그만!
화기의 사용이 많아지는 겨울철은 화재 발생이 가장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이런 계절일수록 대형화재시 피난을 위한 비상구 확인은 필수이다.
비상구란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경우 대피할수 있도록 마련된 출입구로, 평소에 출입하는 출입문 외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피난통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된 별도의 출입구를 말한다.
비상구의 중요성은 여러 매체를 통해 수없이 강조돼 왔지만, 비상구에 대한 안전의식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비상구 폐쇄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러한 실태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부산시에서는 ‘부산광역시 소방시설 등에 대한 불법행위 신고포상제 운영 조례’에 의거, 소방시설 등 불법행위에 신고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비상구 잠금, 비상구 주변 적재물 등 신고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불법행위를 발견한다면 관할 소방서에 방문·우편·인터넷 메일 등의 방법으로 신고하면 된다.
비상구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화재 발생이 많은 겨울철 비상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위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남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그 대가는 너무나 참혹하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작은 관심으로 비상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확인하여 모두에게 안전한 부산이 되었으면 한다.
이시현·항만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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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엑스포 유치전, 가덕신공항 경쟁력에 달렸다
올 11월 결정되는 2030월드엑스포(국제박람회) 유치는 부산의 사활이 걸린 핵심 현안이다. 월드엑스포 개최 도시를 확정할 국제박람회기구(BIE)의 부산 실사가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BIE 실사단의 부산 방문은 4월 3~7일 예정돼 있다. BIE 실사는 부산엑스포 유치사업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실사 결과 보고서가 BIE 171개 회원국 전체에 공개돼 개최지 결정투표를 위한 기본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막대한 오일 머니를 앞세운 최대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유치전에서 앞서가려면 BIE 실사에서 부산이 개최지로서 매력적이란 인상을 심고 좋은 평가를 받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부산엑스포 준비 상황을 부각시키고 국민의 유치 열기를 전달하는 등 BIE 실사에 잘 대비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와 함께 유치 경쟁국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상황에 따라 신속하고 긴밀하게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부산엑스포 유치나 개최에 필수 인프라인 가덕신공항의 2030년 이전 개항에 미온적이어서 과연 유치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BIE 부산 실사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가덕신공항 조기 조성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건설공법을 둘러싼 논란을 빚고 있다. 이런 걸 보면 부산엑스포 유치가 국가사업으로 진행되는 정책이 맞는지도 의아하다.
안일한 자세로 한가롭게 있을 때가 아니다. 강력한 경쟁 도시인 사우디의 리야드가 2개 활주로가 있는 기존 킹칼리드국제공항 옆에 활주로 6개를 갖추고 연간 1억 2000만 명을 소화할 수 있는 초대형의 킹살만국제공항을 2030년까지 건설하기로 확정해서다. 건설 주체가 국가 실세로 엄청난 자본력을 가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국부펀드여서 BIE 실사단의 입·출국조차 인천공항에 맡겨야 하는 부산으로선 초비상이 걸린 셈이다. 사우디의 계획과 가덕신공항 조기 건설의 불투명한 전망이 자칫 실사단과 BIE 회원국들에게 부산의 공항 경쟁력이 미약하며 준비작업과 유치 의지도 미흡하다고 인식되는 원인이 될까 봐 걱정이다.
국토교통부의 가덕신공항 자문회의 위원 상당수는 정부의 조기 개항 의지가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반면 대구·경북 정치권이 추진하는 TK신공항에 대해 정부와 여당 지도부가 적극적 지원 움직임을 보여 대조적이다. 부산의 여당 국회의원 대부분은 이 같은 양상에 개입은커녕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답답하다. 더 이상 이래선 부산엑스포 유치에 도움이 안 된다. BIE 부산 실사와 불과 9개월 남은 유치사업의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은 공항 경쟁력이다. 가덕신공항이 남부권 관문 역할을 하는 중추공항 지위를 갖고 2030년 이전 개항이 가능하도록 범국가적으로 나서 속도를 낼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명운을 건 엑스포 유치를 공언한 만큼 리야드 신공항 추진에 맞서 기민한 대책 마련과 실행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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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난방비 폭탄’에 쥐꼬리 지원책 내놓은 부산시
부산 지역 곳곳에 정부가 국민에게 난방비 부담을 과도하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하는 현수막이 붙었다. ‘가스비 폭탄! 서민만 죽어난다. 정부는 난방비 지원금 지급하라’라는 내용으로, 진보당 부산시당이 부산 시내 50여 곳에 내건 것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연초부터 날아 온 ‘난방비 폭탄’ 고지서에 모두가 화들짝 놀란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최강 한파가 지속된 1월의 난방비가 날아드는 2월 고지서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올 상반기부터 가스·전기요금을 비롯해 기타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주택용 도시가스료는 네 차례나 인상돼 연초 대비 38.5% 올랐다. 겨울철 난방 수요가 높아지면서 지난해 큰 폭으로 오른 도시가스와 전기요금을 시민들이 본격 체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난방비 폭탄’의 원인을 두고 정치권이 ‘전 정부 탓’과 ‘현 정부 무능 탓’으로 나뉘어 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꼴불견이다. 가장 큰 원인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난방용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128%나 뛰었다. 문재인 정부는 20대 대선, 윤석열 정부는 8회 지방선거를 의식해 가스 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해 오늘날의 사태를 초래해 놓고 서로 누구 탓을 하는 것인가.
정부 대책과 별도로 전국 광역자치단체가 서둘러 지원책을 마련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 부산시도 차상위계층 6700가구에 긴급 난방비 10만 원 지원책을 내놨다. 시는 이달 중으로 6억 7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대상자들에게 난방비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부산에서 에너지바우처를 받지 못하는 기초생활수급자 5만 가구의 13%가량에 불과한 수준이다. 지역별 특별 난방비 지원 예산을 비교해 보니 서울 346억, 광주 341억, 경기 200억, 경북 145억, 인천 122억, 전남 111억 원 등의 순이었다. 전국에서 10억 원이 안 되는 광역지자체는 부산밖에 없어 규모 면에서 비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올겨울 들어 비교적 따뜻한 부산에서도 유례없는 한파가 이어져 취약계층의 건강이 염려된다. 당정은 취약계층뿐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에까지 난방비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난방비의 가파른 상승으로 인해 어려운 이웃들이 더 추운 겨울을 보내지 않도록 부산시가 더욱 세심하게 살피고 살뜰하게 지원을 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민들은 부산시가 취약계층 지원에 너무 인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부와 함께 부산시도 국민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추가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