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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러브버그’ 공습, 부산은 안전하나?
최근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여름 불청객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집단 출몰하면서 시민 불편이 커지는 상황이다. 러브버그는 도심과 주택가, 산림을 가리지 않고 무리 지어 나타나 차량과 사람에 달라붙거나 시야를 가리면서 불쾌감을 주고 야외 활동에 지장을 준다. 러브버그를 두고 “유해 곤충이니 당장 퇴치해야 한다”는 의견과 “생태계에 유익한 익충이라 어쩔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수도권과는 달리 부산에서는 러브버그의 대량 출몰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 수도권은 ‘러브버그’와의 전쟁
러브버그는 그동안 은평·서대문·마포구 등 서울 서북부 지역에서 주로 목격됐다. 그러나 최근엔 서울 전역에서 출몰하고 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매년 증가했다. 2022년 4418건이던 신고 건수는 2023년 5600건, 지난해 9296건에 달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이미 4695건이 접수됐다. 러브버그 급증 현상은 시민 생활 전반에 걸쳐 불편과 위협이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브버그는 두 마리가 붙어 떼로 몰려다니며 인간에게 달라붙어 혐오·불쾌감을 유발한다. 자동차 유리에 붙어 안전 문제를 불러오기도 하고, 사체가 쌓이면 산성을 띤 내장이 건축물과 자동차 등을 부식시킨다. 식당, 카페, 편의점 등 업장에 피해를 주어 매출 감소 같은 경제적인 피해로 이어진다. 최근 인천 계양산 일대에서는 벌레 사체가 등산로에 10cm 이상 쌓인 모습을 포착한 사진과 영상이 잇따라 SNS를 중심으로 올라온다.
■ ‘러브버그’ 부산은 괜찮은가?
러브버그가 수도권을 뒤덮은 데 비해 부산 지역 16개 구·군에는 아직 관련 신고나 민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원인을 단정할 순 없으나, 이동 범위가 좁은 러브버그 습성과 수도권에 비해 불리한 성장 환경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러브버그 성체는 일주일 안팎 활동하는데, 러브버그의 비행은 이동이 아닌 짝짓기에 목적이 있다. 번식 장소에서 다시 번식하기에 다른 장소로 확산하는 확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공주대 생명과학과 도윤호 교수는 “2015년 처음 인천에서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수도권 주위로만 출몰하고 있다”며 “자동차에 붙어서 이동하는 ‘인위적 이주’ 등을 제외하면 수도권에 주로 출몰하는 러브버그가 부산권역까지 갑작스레 확산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또 러브버그 유충은 낙엽이 많이 쌓여 있고, 토양 유기물이 풍부한 곳에서 성장한다. 이에 수도권처럼 활엽수림이 많이 분포한 지역에서 성장하기 유리하다고 한다. 반면 부산은 소나무 같은 침엽수림의 비중이 비교적 높아 성장이 불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한 시민이 부산에 러브버그 20마리를 채집통에 담아 숲에 풀었다는 소식이 온라인에 확산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를 통해 러브버그가 부산에 확산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박현철 부산대 생명환경화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능성이 작다고 전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외래종이 확산하기 위해서는 교미해서 알을 낳을 수 있는 적절한 번식 환경이 필요한데 이를 찾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유기물이 많은 장소에 갖다 놓지 않는 이상, 그냥 풀어놓고 날린다고 해서 확산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반면 김현우 낙동강에코센터 전시기획팀 곤충 모니터링 담당자는 “기후변화로 어떤 곤충이 국내에 대량 출몰할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곤충의 종류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상황의 변화가 발생했을 때 시의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서 부산항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외래종 해충인 유리알락하늘소가 몇 년 전 부산 삼락생태공원 등 낙동강 수변 지역에서 번식해 버드나무 서식지를 파괴하기도 했다”며 “물류 이동이 많은 부산항의 특성을 고려할 때 외래 곤충 유입 가능성에 대해 더욱 각별하게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연구원은 ‘서울시 유행성 도시해충 대응을 위한 통합관리 방안’ 정책리포트에서 현재와 같은 추세로 기온 상승이 지속될 경우 2070년에는 한반도 전역에 러브버그의 확산이 예측된다고 분석했다.
■ 러브버그는 어떤 곤충
러브버그는 중앙아메리카와 미국 남동부 해안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약 1㎝ 크기 파리과 곤충이다. 공식 명칭은 ‘붉은등우단털파리’(학명 플리시아 니악티카)다. 짝짓기를 하거나 날아다닐 때도 암수가 쌍으로 다녀 ‘러브버그’로 불린다. 이 곤충은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익충’이다. 토양 환경을 정화하고 꽃의 수분을 도우며, 어류·새·곤충의 주요 먹이가 된다. 이슬이나 꽃의 꿀을 먹고 사는데, 독성이 없고 사람을 물진 않는다. 밝은 불빛을 좋아해 도심에 특히 많이 발생한다.
러브버그는 초여름인 6~7월에 개체 수가 급증한다. 수컷은 3~4일 만에 죽고, 암컷은 약 1주일 동안 살면서 습한 땅에 수백 개의 알을 낳고 죽는다. 그동안 대규모로 나타난 뒤 2주가량이 지나면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한다. 전문가들은 7월 중순쯤엔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 국내 유입은 언제 됐나
외래종인 러브버그는 2015년 인천에서 처음으로 알이 발견됐다. 이후 2022년 서울시 은평구, 경기 고양시 등 서북부 지역에서 대량 발생하다가 지금은 서울시 25개 모든 자치구와 인근 경기 지역에서 보고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래 중국 동남부·대만·일본 류큐 제도 등 북위 33도 이남 아열대 지역에 분포했는데, 기후변화와 함께 북상하다가 한반도까지 넘어왔다. 국립생물자연관이 중국과 대만, 일본 등지에 있는 러브버그 표본을 확보해 유전자 분석한 결과, 국내에서 발생하는 러브버그는 중국 산둥반도의 칭다오 지역에서 물류 교역 과정을 통해 인천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와 산악 지역 주변의 도시 개발 등으로 이 벌레가 북쪽으로 확장한 것으로 본다. 러브버그는 LED 불빛을 좋아하며, 도심 열섬 효과에 강하다고 한다. 서울대 연구팀이 국내에서 채집된 러브버그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도시에 살기 적합한 살충제 저항성과 열 스트레스 적응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러브버그는 대개 민가와 가까운 공원이나 아파트 주변 등에서 많이 나타난다. 유충은 유기물이 많은 토양에서 잘 자란다. 도심의 정원, 가로수 아래, 쓰레기나 퇴비 등이 좋은 서식지가 된다.
■ 천적이 없는 이유
러브버그는 특별한 천적이 없다. 새, 개구리, 두꺼비 같은 대표적인 포식자들도 이 곤충을 잘 먹지 않는다. 신맛이 나고 끈적한 체액을 지녀 대부분의 새가 먹이로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껍질도 단단해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들도 먹기를 꺼린다. 이런 천국 같은 서식 환경이 대발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원래 해외에서 새로운 생물이 유입되면 기존 생물들이 이들을 먹이로 인식하고 잡아먹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엔 천적이 없어서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조절되는 경우가 많다. 까치, 참새 같은 새들과 거미류, 사마귀와 같은 생물들이 러브버그를 잡아먹는 광경이 종종 목격된다고 한다.
■ 대처 요령과 방역 가능성은
전문가들은 러브버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밝은색 옷을 피하고 어두운색 옷을 입을 것을 권한다. 러브버그가 밝은 색을 꽃으로 착각해 달려들기 때문이다. 야외 활동 시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창문이나 출입구 방충망의 틈새를 꼼꼼히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러브버그는 오래 비행하지 못하고 날개가 약하고 물을 싫어한다. 유리창이나 차에 붙은 러브버그는 물을 뿌려서 제거하면 된다. 또 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대발생 기간에는 생활 조명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실내에 러브버그가 들어왔을 땐 분무기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휴지로 치우면 된다고 한다.
러브버그는 유충 시기 유기물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익충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법적으로 병해충 방제 대상이 아니다. 현재 국내 법령상 직접적인 방역·관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은 질병 매개 곤충에 대한 관리만 규정하고 있다. 자치구 차원 방역도 모기·바퀴벌레 등 위생 해충에 집중돼 있다. 살충제를 이용한 전면적 방제도 쉽지 않다. 러브버그가 전통적 해충이 아니며, 무분별한 화학 방역은 생태계 균형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러브버그가 질병을 매개하지 않더라도 개체 수가 급증해 시민의 일상에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유해성 도시 해충’으로 지정해 관리 대상의 폭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구온난화와 도시열섬 현상으로 제2, 제3의 러브버그 출현 가능성이 높아 보다 적극적인 방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당분간 러브버그 관리 방안에 대한 갑론을박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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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도권 일극주의 타파해야 대한민국 지속 가능한 발전
대한민국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장해 왔다. 농촌을 희생해 도시를 키웠고, 지방 대신 수도권에 국가 자원이 집중되는 식이었다. 또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먼저였고, 특정 지역과 계층, 산업을 우대했다. 불균형 발전이 누적된 결과, 수도권은 과포화되어 성장력이 한계에 부딪힌 반면 지방은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붕괴, 생활 인프라 악화로 소멸 위기에 놓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취임 3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지방과 중앙의 과도한 불균형이 우리나라 지속적 성장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한 지적은 국가의 구조적 위기를 정확히 진단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추세를 반전시킬 국가 발전 전략과 실행력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방 시대’ 등의 구호가 되풀이됐지만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구도가 되레 심화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실적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고, 지역 주민은 번번이 ‘희망 고문’을 견뎌야 했다. 대통령의 국토균형발전의 의지가 구두선에 그치지 않고 국가 발전 전략으로 채택되고 실행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정책이나 예산 배분에 지방 배려를 넘어서, 우선 정책을 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추세 반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인구 소멸 지역에 ‘소비쿠폰’이 추가 지급되는 사례를 들면서, 지역별 가중치를 적용해 지방교부세 등을 더 받는 법제화 추진을 언급한 것도 주목된다.
“지역 소멸을 막겠다”고 강조하면서 부산의 현안을 콕 찍어 설명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에 대전과 충남이 반발하는 것과 관련해 “부산이 해수부가 있기에 적정하다”며 이전 방침을 재차 확인했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면 멀수록 심각’해지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사정, 특히 “부산 상황이 사실 매우 심각하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위급성을 설명하며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한 대목은 국정 최고 책임자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평가된다. 해사법원의 부산 설치 역시 인천과 경쟁하는 구도인데, 앞으로 정부는 불균형한 발전의 피해를 입은 비수도권 지역을 우선 지원하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취임 30일 만에 대통령이 수도권 일극주의를 성장의 걸림돌로 규정하고 균형을 강조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 지방의 시선에서 볼 때 ‘목마르다고 소금물 마시는 격’이라고 비유한 대목은 발상의 전환으로 읽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의지보다 실행력이다. 대통령의 공약조차 수도권 기득권의 벽에 가로막히거나, 정치권과 관료의 저항에다 지역 간 갈등이 겹쳐 흐지부지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5극3특’(5대 초광역권·3대 특별자치도) 공약을 재차 다짐했다. 수도권 일극주의가 타파되지 않으면 국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통령의 실행력을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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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남겨진 아이들 잇단 참변 돌봄 사각지대 꼼꼼히 살펴야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집에 남겨진 자매가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부산에서 또 일어났다. 지난 2일 오후 11시께 기장군 기장읍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8살 6살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24일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로 10살 7살 자매가 숨진 지 8일 만에 유사한 인명 화재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두 사고 모두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부터 노후화한 아파트에서 초기 화재 진압 설비가 없었다는 점까지 닮은 꼴이라는 지적이다. 어린 생명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화재 사고가 단기간에 잇따라 발생하자 이 같은 사고를 막을 대책 마련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화재가 발생한 기장군 아파트는 2007년, 부산진구 아파트는 1994년 준공된 비교적 노후화한 아파트들이다. 전문가들은 옛 기준에 따라 지어진 이들 아파트의 경우 전력 소모가 많은 전자제품이 늘어나는 요즘 추세를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반면 2018년에서야 6층 이상 건축물 전체로 의무 설치가 확대된 스프링클러 등 초기 화재 진압 설비는 설치가 돼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비용을 들여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여력이 없다면 화재 무방비 상태에 놓이기 쉬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아동만 집에 남겨질 때 등을 대비해 보호자에게 신속히 알람이 전송되는 알림형 화재감지기라도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소방 설비 확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부모 없이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에도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부산시는 기존의 돌봄 제도가 이 같은 아이들을 돌보는 데까지 촘촘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고 긴급 돌봄 제도 점검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사후약방문일 수도 있지만 향후 어린 아이들만 놔두고 일을 나가야 하는 부모들에게 그렇게라도 안전망을 깔아줄 수 있어야 하는 게 우리 어른들의 도리다. 부산교육청이 아이들이 혼자 있을 때 화재에 대응하는 요령을 담은 매뉴얼을 긴급 제작하고 모든 교육기관에 배포하기로 한 것도 그런 도리의 연장선에 속한다고 본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선다는 게 우리 사회의 전통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 키우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사는 이웃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문제였다. 열흘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반복된 화재 사고로 아이들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이 같은 태도를 근본적으로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생명들을 앗아간 이번 화재 사고들은 혹시라도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은 없었는지 더 관심을 가지라고 우리를 일깨운다. 건물 노후화나 초기 화재 진압 설비 미설치, 돌봄 제도 허점 등의 문제점 파악은 그런 관심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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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해수부 부산 이전 의의와 필요조건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그래서인지 이 대통령은 지난달 5일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해수부 부산 이전을 신속히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같은 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선 연내에 부산 이전이 이뤄지도록 하라고 재차 강조했다. 느슨한 추진이나 무산을 우려한 속도전 주문을 통해 대통령의 확고한 해수부 이전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국정기획위원회도 지난달 29일 해수부 부산 이전을 ‘국민체감 신속 추진과제’로 선정해 대통령 요구에 발을 맞췄다.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시 실행해 국민이 변화를 빠르게 체감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서 고무적이다. 더욱이 해수부 장관 후보로 교수 등 민간이나 관료 출신이 아닌 3선 중진이자 부산과 해양업계 사정을 잘 아는 전재수(부산 북구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명돼 이전 추진에 정치적 힘이 실리고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부산 지역구 국회의원 18명 중 민주당이 1명뿐인 만큼 여권이 부산 핵심 공약을 제대로 이행해 지역 민심을 얻으려는 건 당연할 테다.
필자는 2022년 3월 23일 자 이 난의 칼럼에서 “해수부, 해양도시 부산에 있으면 안 되나”라고 피력한 바 있다. 따라서 오는 12월까지 완료될 해수부 부산 이전에 누구보다 감회가 새롭다. 눈앞에 다가온 해수부의 부산시대가 지역 발전의 계기가 되고 우리나라를 해양 초강국으로 이끌 것으로 마냥 기대되기 때문이다.
‘해양·수산 1번지’ 부산이 중심이 된 해양 강대국 실현은 부산시민과 해양·수산 종사자 다수의 숙원이기도 하다. 2000년 부산은 도시가 나아갈 방향으로 ‘해양수도’를 선언한 뒤 명실상부한 해양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폐지된 해수부가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부활하는 데 크게 기여한 부산이 이때부터 수시로 해수부를 부산에 둘 것을 촉구해 온 것도 이 같은 목적에서다. 해양수도 선포 25주년을 맞아 해양·수산과 해양과학기술 분야 기관단체가 집적화하고 관련 업체가 밀집한 부산으로 해수부를 옮기는 의미는 자못 크다. 내년은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허브항만인 부산항이 개항한 지 150주년이 돼 해수부 부산 설치의 의의를 더한다.
실효적이고 성공적인 해수부 부산 이전을 위해선 해수부의 위상 강화와 실질적인 기능 확대를 함께 도모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부산 이전의 시너지 효과 극대화에 요구되는 전제조건이다. 해수부가 정부부처 서열이 최하위권이라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며 인력과 예산도 적은 미니 부처인 현 상태로 이전한다면 글로벌 해양강국이 되기 위한 미래지향적이고 통합된 해양정책 구현이 힘든 까닭이다. 이 경우 언젠가 해수부는 이전 효과가 미미하단 지적에 직면하거나 존폐 기로에 설지 모른다.
이 대통령이 선거 험지의 민심 챙기기를 넘어 진정 부산경제 발전과 해양산업 육성, 해양부국 성장에 뜻이 있다면 해수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해 힘 있는 부산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규제와 직결된 조선 및 해양플랜트(산업통상자원부 소관), 해운업이 주류인 국제물류(국토교통부), 또 다른 대통령 핵심 공약인 북극항로 선점과 관련된 해양기후(환경부 기상청) 등의 기능을 시급히 해수부로 이관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일이다. 이 밖에 문화체육관광부의 해양관광·레저를 비롯, 각 부처에 흩어져 갈수록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는 모든 해양 업무를 통할하고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조직인 국가해양위원회(가칭)를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산하에 신설한다면 금상첨화겠다.
이 대통령은 국내 1위, 세계 8위 선사인 HMM의 부산 이전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부산의 해양수도화가 진전되도록 차질 없이 추진할 사안이다. 서울에 본사를 둔 해운회사들의 부산 이전을 활성화하는 것도 해수부 이전 효과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기간산업인 해운업계에 세금을 감면하는 특혜인 톤세 제도를 지방 이전 기업에 한해 적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현재 세계 1~6위, 9위 선사는 본사를 비수도권 도시나 항만도시에 두고 있다.
온갖 희망고문 프로젝트에 실망하며 침체의 길을 걸은 부산은 이제 해수부 이전을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마땅하다. 여기에 여야나 진보·보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해수부 직원들이 부산에 정을 붙이고 열심히 일하며 생활에 만족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정부·여당도 다른 부처와 협업의 어려움, 수도권 출장 증가, 민원인 불편 등 해수부 내부에서 제기된 걱정거리를 조기에 해소해 해수부 직원의 부산 근무 의욕을 고취해야 한다. 해수부와 부산의 모험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거친 바다를 상대로 한 진취적인 기상, 즉 해양정신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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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다 팔아야 서울 한채
시골 동네 무성리에 사는 청년이 서울에서 살기 위해 상경했다. 그는 알고 있던 선배 형을 만났다.
형은 동생에게 “수락아, 서울에는 왜 왔니?”하고 물었다. 청년은 “형님, 저도 서울에 집을 사서 번듯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는 “동생아, 서울은 네가 생각하는 곳과 다르다”며 “어서 무성리 내려가라. 네가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네가 살던 무성리를 다 팔아야 한다.”
“네에에~?” 개그 프로그램 ‘서울의 달’에 나오는 한 콩트다.
서울의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를 말해주는 콩트지만 현실을 그다지 과장한 것 같지도 않다.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 전용 84㎡는 6월에 60억 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방 3개짜리 32평 아파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인 2019년. 한창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때였다. 김 장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집값 좀 잡을 수 있는 대책이 없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도 매우 답답해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부동산 대책을 발표해도 집값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금리가 너무 낮아서…”하고 말했다. 당시 초저금리 시대였다. 그러자 김 장관은 “금리는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규제와 공급 대책을 함께 써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 마지막에야 공급의 중요성을 알고 대규모 공급 대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는 금방 공급되지 않는다. 공급 대책 발표 8~10년 후에야 입주가 가능하다.
2025년 초여름,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6월 넷째주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송파구 0.88%, 강남구 0.84%, 서초구 0.77%, 강동구 0.74% 등이다. 1주일 만에 이렇게 오른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은 저금리에 대한 기대감, 수도권 초집중화, 강남불패 신화, 저조한 신규 주택 공급, 세제 완화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방 거점도시를 키우지 않고 수도권에만 ‘올인’한 정부 정책 때문이다. 정부가 수도권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으니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고, 또 사람이 몰린다고 그 대책으로 GTX와 광역교통망, 신도시 등 인프라를 또 만들면서 수도권 초집중의 고리가 반복되고 있다. 지방을 ‘촌’이라고 부르고, 지방에 인프라를 건설한다고 하면 ‘헛돈 쓴다’고 생각하는 정부와 수도권 언론이 기어코 이렇게 만든 것이다.
김덕준 세종취재부장 casiop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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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덧없음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의미
해운대 해변 너머로 여름 해가 저물고, 황금빛 노을이 파도 위로 부서지는 순간, 부산의 여름 휴가객들은 묘한 기쁨에 휩싸입니다. 쌓아 올린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가고, 밤하늘을 수놓던 불꽃이 이내 사라지듯, 이 찰나의 순간들은 일본의 미의식인 ‘모노 노 아와레’(物の哀れ)를 떠올리게 합니다. ‘덧없음 속의 애절한 아름다움’을 뜻하는 모노 노 아와레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유한성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삶의 유한함이 오히려 삶의 의미를 형성한다는 하이데거의 사상은 부산의 여름 풍경과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전달합니다.
모노 노 아와레는 18세기 일본 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에 의해 널리 알려진 개념입니다. 만개한 벚꽃이 이내 떨어지고, 화려한 축제가 며칠 만에 막을 내리듯,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 덧없음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는 깨달음이죠. 부산의 여름 역시 이러한 미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해변의 모래성은 파도에 녹아내리고, 거리 공연은 인파 속으로 사라지며, 자갈치 시장의 싱싱한 해산물 만찬은 오직 기억 속에만 남습니다. 이 모든 덧없는 경험은 우리에게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영원하지 않은 것들 속에서도 진정한 여유를 찾으라는 모노 노 아와레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이데거의 유한성 철학은 서구 실존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는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 유한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며, 늘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우리는 삶의 끝을 인지하며 불안을 느끼지만, 동시에 이 유한함의 자각이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촉매제가 됩니다. 축제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바닷가에서 맛있는 음식을 음미할 때, 이 모든 순간이 언젠가 끝날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더욱 그 순간을 붙잡으려 노력합니다. ‘오늘을 붙잡아라’라는 라틴어 구절은 ‘카르페 디엠’입니다. 이는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작품 오데스의 한 구절, ‘오늘을 붙잡고, 미래는 되도록이면 믿지 마라’라는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구절은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며 현재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의미입니다. 모노 노 아와레가 덧없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가깝다면, 하이데거의 유한성은 덧없는 삶 속에서 우리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라는 절박한 부름인 셈입니다.
부산의 여름은 이러한 두 철학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장입니다. 5월 말부터 시작되는 해운대 모래 축제는 거대하고 정교한 모래 조각들이 며칠 만에 부서지기에 존재의 무상함을 은유합니다. 동시에 모래 작품들은 삶이 짧다는 것을 인지하고 진실하게 인생에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하이데거의 유한성을 반영하죠. 매주 다른 패턴으로 밤하늘을 수놓는 광안리 M 드론 라이트 쇼는 순간순간 사라지는 빛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는 덧없음을 보여줍니다. 6월 말, 부산 콘서트홀 개관 축제는 시민 공원을 클래식 음악으로 가득 채우고, 잠시 울리던 음표는 이내 침묵 속으로 사라집니다. 부산 푸드 필름 페스타(6월 13~15일) 또한 팝업 푸드 트럭과 야외 영화 상영으로 주말과 함께 사라지는 감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며 무상함을 포착합니다.
이러한 부산의 예술은 한국적 미의식인 한(恨)이나 불교의 무상(無常) 개념과도 깊이 공명합니다. 한은 덧없는 아름다움이 사라질 때 느끼는 슬픔과 아쉬움의 정서로 발현되며, 불교의 무상(無常)은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소멸하는 본질을 깨닫는 가르침입니다. 범어사의 고요한 여름 풍경 속에서도 우리는 덧없음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산의 예술가들은 덧없는 순간들을 기념하며, 사라지는 것에서 기쁨을 찾으며 유한한 삶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도록 이끌어줍니다.
2025년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여름 축제에 와 있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당신은 라이브 밴드의 연주가 펼쳐지는 가운데, 음악과 바닷바람에 온전히 푹 빠져 관중들과 함께 춤을 추며 그 순간을 만끽합니다. 곧 행사가 끝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이후 팝업 푸드 트럭에서 신선한 회 한 접시를 맛보며 광안대교의 불빛을 감상합니다. 축제가 끝나고 푸드 트럭이 떠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당신은 그 덧없는 순간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이는 모노 노 아와레의 애절한 기쁨에 공감하며, 유한성이 우리에게 촉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이번 여름, 부산에서 덧없는 삶이 선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철학적 추억을 새겨보세요. 당신의 기억 속에 영원히 빛날 순간들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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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프리츠커상 건축가 8명을 만나는 노바티스 캠퍼스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호수와 산, 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스위스지만, 늘 볼품없는 도시는 바젤이었다. 하지만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반전이 있다. 해마다 6월이면 아트 바젤이 열리고, 도시 구석구석 근사한 현대미술관들이 있으며 문화유산은 적지만, 1459년에 설립된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바젤대학이 있다. 아트바젤이 바젤시에 현대미술이라는 컨텐츠를 안겨주었다면 바젤대학은 생물학을 바탕으로 하는 의학과 약학 연구자들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다. 노바티스(Novartis), 로슈(Roche)와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본사가 바젤에 존재하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이들 제약회사의 본사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2022년 준공된 로슈의 쌍둥이 빌딩은 바젤에서 활동하는 헤어초크 드 뫼롱이 디자인했다. 더욱 흥미로운 건 노바티스 바젤 본사 캠퍼스 프로젝트의 경우 프랑크 게리, 알바루 시자, 마키 후미히코, 안도 다다오, 라파엘 모네오, 헤어초크 드 뫼롱, 세지마 카즈오와 니시자와 류에 유닛인 SANNA(사나), 그리고 데이비드 치퍼필드까지 무려 8회의 프리츠커 수상 건축가들이 노바티스 캠퍼스에 작업을 마쳤다.
한 부지에 이렇게 많은 스타 건축가들이 작업을 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인근 도시 독일 바일 암 라인에 위치한 비트라 캠퍼스와 남프랑스 액상 프로방스 근교 와이너리인 사토 라코스테가 견줄만한데 각각 7명과 6명의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들이 참여했다.
오래동안 노바티스 캠퍼스는 연간 두 번 밖에 건축 투어를 하지 않았기에 1년 전에도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투어 프로그램을 열어서 노바티스 캠퍼스 내부를 대중에 공개한다. 필자는 유럽 일정 중 하루 노바티스 캠퍼스를 방문할 목적으로 투어 일정에 맞추어 바젤을 찾았다. 제약회사의 본사와 연구단지이다보니 건물들이 건축가의 개성보다는 기능적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건축물 내부를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캠퍼스 그린이라는 조경 공간과 연계된 노바티스 캠퍼스의 대표적인 교류 공간인 프랑크 게리의 파브릭 스트라세 15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내부에는 오디토리움과 리딩 홀, 러닝 팩토리가 있으며, 1층에는 식당, 카페가 배치되어 있다.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단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식당과 카페라는 원칙 때문이다. 유일하게 유니크 한 외형을 지닌 이 건물은 개방성과 함께 ‘Spaces Flowing Together, 흐르는 공간’을 컨셉으로 디자인했다. 캠퍼스와 도시가 만나는 면접부에 위치하면서 노바티스라는 기업 이미지를 결정하는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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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역 정치권, 해수부 이전 놓고 정쟁 벌일 때 아니다
이재명 정부 집권 초창기 최대 지역 이슈로 부각하고 있는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비교적 순풍을 받으며 진행중이다.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연내 부산 이전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림에 따라 후속조치가 발빠르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당사자인 해수부가 부산 이전 준비를 위해 이전 추진기획단을 확대 개편하자 이전 대상지인 부산도 해수부의 부산 연착륙을 위한 주변 여건 마련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는 동남권의 오랜 숙원이었던 해수부 부산 이전 문제를 놓고 마치 정쟁 대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상대를 비난하는 데에만 열중해 빈축을 사고 있다.
해수부는 이달 들어 기존 ‘해수부 부산 이전 준비 태스크포스’를 ‘해수부 부산 이전 추진기획단’으로 개편했다. 기획단은 부산 이전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청사 확보가 필요하다고 보고 임시청사 후보지 물색에 발빠르게 나섰다. 800명 수용 가능 규모와 보안 시설 완비 여부, 부산역 등 교통결절지와의 접근성 등을 놓고 부산 중·동구 일대와 서면 등지의 여러 빌딩 이름이 오르내렸다는 후문이다. 해수부의 속도전에 맞춰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해수부 직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해수부 이전 정주여건 개선 지원 조례 제정을 제안했다. 부산시도 해수부와 별도 소통 창구를 개설해 실질적인 행정 지원에 나서는 모양새다.
해수부의 부산 연착륙을 위해 이전 당사자와 이전 대상지가 안팎으로 힘을 모으는 줄탁동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지역 정치권 일각에선 해당 이슈를 정쟁화하는 구태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해운대구 구의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제안한 해수부 부산 조속 이전 촉구 결의안 채택이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전원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부산을 짓밟고 있다”며 공세를 퍼부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여론을 일찌감치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도드라지는 행태들이다. 해수부 부산 연착륙에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기 위한 협치를 도외시한 이 같은 행태들은 유권자들에게 날선 고함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단순히 정부 부처 하나가 청사를 옮긴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일이다. 30년이 다 되도록 입으로만 외쳐온 ‘해양수도 부산’을 현실화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수부 부산 이전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정치권을 비롯한 부산지역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내세운 정치적 가치인 ‘협치’ 없이는 지역 역량의 결집은 어불성설이다. 해수부의 성공적 부산 안착 문제는 지역의 정치적 협치를 넘어 한국 정치 지평에서 협치의 가늠자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성공의 끝에 진정한 해양수도 부산과 해양강국 한국도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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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울경 광역철도 균형발전 차원 전향적 결정 필요하다
부산~양산~울산 광역철도 건설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발표가 임박했다. 여러 차례 연기되며 지역민의 속을 태운 예타 결과가 이르면 다음 주쯤 나올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단순한 교통망을 넘어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할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그만큼 부울경 정치권과 지자체는 수년째 이 사업에 사활을 걸며 긴장된 대기 상태를 이어왔다. 특히 이 사업은 ‘부울경 30분’ 생활권 실현의 관문이자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 축으로 예타 결과의 상징성과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예타 통과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이행돼야 할 국가적 책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단순한 교통망이 아니라 수도권 집중에 맞선 비수도권 균형발전의 결정판이다. 노포에서 KTX울산역까지 총연장 48.7km, 사업비 2조 4000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동남권 산업벨트를 잇는 대동맥이자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의 핵심 축이다. 부산·울산·경남 3개 시도는 물론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조속 추진을 한목소리로 촉구해 왔으며 여러 차례 정부 방문과 공동 건의, 특별법 발의까지 전방위적인 노력이 이어져 왔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 “광역교통망 없이는 부울경의 생활·경제 공동체도 없다”며 광역철도 조속 추진 지원을 약속했다. 대통령이 직접 내건 공약이라면 이제 실행으로 이를 증명할 때다.
그동안 사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21년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선도사업으로 선정된 뒤 2023년 예타에 착수했으나 이후 결과 발표는 수차례 지연됐다. 그때마다 지역 사회에서는 실망했다. 여기다 예타 제도 자체의 구조적 문제도 남아 있다. 기획재정부의 예타는 기본적으로 인구 밀도와 경제력 등 정량적 경제성을 중심으로 평가된다. 그 결과 인구와 산업이 밀집된 수도권 사업은 높은 경제성을 확보하기 쉽지만 비수도권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다. 결국 비수도권 광역철도 사업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평가 틀 속에서 출발선을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향적인 판단이다. 더는 제도 자체가 지역균형발전의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 핵심 키워드는 ‘5극 3특’, 즉 5대 초광역권의 동시 성장이다. 그중에서도 부울경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비수도권 경제권이며 대통령이 직접 ‘광역철도 조속 추진’을 공언했던 곳이다. 여기에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제 그 말에 행동이 따라야 한다. 부울경 30분 시대라는 상징적 약속이 예타 통과 실패로 무산된다면 이에 따른 정치적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균형발전을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답해야 할 때다.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타 통과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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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기업의 미래를 팔아 주가를 올릴 순 없다
상법이 시행된 1963년 이후 ‘역대급’이라고 불리는 상법 개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르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인데, 통과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일반 법안 중 국회 문턱을 넘는 1호 법안이 된다.
그만큼 이재명 대통령의 증시 부양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에 집이 없는 사람들을 ‘벼락 거지’로 만드는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을 가라앉힐 대안으로 주식시장 활성화를 꼽고 있다. 여당도 ‘코스피 5000 시대’로 가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상법 개정이라고 보고 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상법 개정안에 반대해 온 국민의힘도 1400만 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 여론과 코스피 3000 회복에 따른 증시 활성화 기대감을 의식한 듯 전향적인 검토 입장으로 돌아섰다.
내용을 보면, 사실상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안으로 돌아왔다. 민주당은 지난 3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냈으나 대통령 거부권 이후엔 감사 선출시 최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집중투표제도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을 추가했다. 개미투자자 입장에선 높은 배당금과 주가 상승을 이끌어 낸다는 데 반갑지 않은 이가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상법 개정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장하준 런던대 교수는 한국 주주 자본주의가 시동을 걸고 있는 것과 관련해 “기업의 미래를 팔아 지금의 주가를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인데, 주주 중심의 관점으로는 노동자나 소비자, 국가 경제는 중요하지 않고 기업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뽑아낼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경영진의 최우선 의무가 주주 이익이 된다면 다른 사회적 가치는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해고가 이윤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야 하고, 연구개발비보다 주주 배당이 우선 된다면 그에 따라야 한다. 외국 투기 자본이 이사회를 장악해 경영권 개입에 나서거나 규제 회피를 위해 해외로 이전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
미국도 생산설비 해외 이전으로 결국 제조업 불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조업 이외 산업들은 아무리 고부가가치라고 해도 광범위한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다. 지금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제조업을 다시 살리겠다며 관세를 무기로 ‘패악질’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지난 30여 년간 주주의 회사 지배로 주식시장 고유 기능이라 할 수 있는, 투자금을 회사로 공급하는 기능이 상실되다시피 했다. 오히려 회사가 순수익보다 많은 돈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면서 회사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금융과 회사의 본질〉의 저자 김종철 서강대 교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미국 상장사들은 1971년부터 1981년까지 이윤의 50% 정도를 주주에게 환원했다. 그러나 1982년부터 최근까지는 평균적으로 이윤의 123%를 주주에게 내놓고 있다.
물론 이번 상법 개정은 기업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태광산업이다. 태광산업은 자사주 전량(지분율 24.41%)을 바꿀 수 있는 3186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하려다 사외이사의 반대에 부딪히는가 하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정정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강행 입장을 밝혔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방침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꼼수를 썼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무려 3조 6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소액주주 반발을 샀다. 지난해엔 두산그룹이 연간 수천억 원의 흑자를 내는 두산밥캣을 만년 적자 회사인 두산 로보틱스와 합병하려다 주주 반발에 무산됐다.
“장기 투자하래서 우량주를 샀더니,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는 내 것이 아니었다”는 이 대통령의 말도 그동안 주주들이 당한 피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 증시는 지배주주 지배력이 강하다 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발목 잡혀 있고,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봐온 건 맞다. 하지만 머지 않아 기업 기능이 산업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가 아닌 ‘주가 상승’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물어야 할지 모른다. 주주가 회사 주인으로 자리매김 하는 순간, 경영진, 노동자, 하청업체, 지역사회, 국가는 ‘외부인’으로 전락한다. 3일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그 이후로는 주주 자본주의가 가져올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보완책들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 주주 이익만을 위한 마구잡이식 소송이 남발되지 않으려면 배임죄와 처벌 조항들에도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숙의도 더 필요하다. 한국 자본주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는 '큰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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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AI 시대 일과 인재
솔로프러너(Solopreneur). 1인(Solo) 기업가(Entrepreneur)라는 의미의 합성어다. 1인 자영업자 의미로 출발했다가 최근 생성형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1인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됐다. 예컨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려면 웹 개발자와 디자이너, 마케터, 콘텐츠 제작자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AI가 소스 코드, 디자인, 제품 설명에 마케팅 전략까지 만드는 세상이다. AI를 잘 다룰 줄 알면 한 사람이 이 모든 역할을 ‘지휘’할 수 있다.
‘커서(Cursor)’ AI를 이용하면 코딩 문외한도 근사한 홈페이지를 뚝딱 만든다. 한글 프롬프트를 이해하고, 무료 회원 제약이 없어 일반인 진입 장벽이 사라졌다. 예컨대 특정 주제의 홈페이지 제작을 명령하면 순식간에 스타일 정보(CSS)와 동적 기능(PHP)까지 갖춘 페이지를 생성한다. “테일윈드 CSS로 세련되게 바꿔.” “푸른색 바탕으로 교체해.” “유튜브 동영상을 넣어.” AI가 주제에 맞춘 이미지와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도 당연. 숙련된 조수 여럿의 몫을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이러니 한 초등생이 ‘커서’를 익혀 45분 만에 ‘해리포터 챗봇’ 페이지를 만들었을 정도다.
IT 업계에 미친 영향은 ‘커서’가 먹통이 되면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접속 불능, AI 기능 미작동 상태가 발생하자 국내는 물론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에는 “오늘 할 일이 없어졌다”며 난리였다. 특히 “‘유기농 코딩(수작업)’으로 돌아가자(Back to organic coding)”는 푸념도 많았다. 이미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은 코드의 25%를 AI가 만든다. IT 업계에 대량 해고가 잇따르는 이유다. 반복적이고 단순해서 표준화가 된 업무를 맡는 저연차 보조직이 사라지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IT 업체가 몰린 판교·강남에서 신규 채용 공고가 급감했다. AI로 대체 가능한 기존 인력은 희망 퇴직과 전환 교육 대상이다. ‘AI 구조조정’인 셈이다. 하지만 AI·클라우드·데이터 전문 인력, 기획·전략·관리·소프트 스킬 기반 직무는 수요가 급증해 ‘귀하신 몸’이다. AI 관련 전문성에 인간 고유 능력, 즉 창의성을 결합한 융합형 인재는 각광을 받는다. 코딩을 몰라도 창의성에서 뛰어난 인문계 전공자의 생산성이 더 높을 수 있는 세상이다. 챗GPT 충격파로부터 불과 2년 7개월 만에 일과 인재의 개념은 급변했다. AI 기능을 잘 다루는 ‘슈퍼 개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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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국민의힘, '차출 정치' 관행 끊어야
이재명 대통령의 시작은 제법 성공적인 걸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 여론은 64%(부정 평가 21%)를 기록했다. 대선 당시 득표율인 49.4%를 훌쩍 웃돈다. 부산·울산·경남에선 56%의 응답자가 “잘하고 있다”, 29%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의 거친 캐릭터에 반신반의하던 중도층 지지율도 높아졌다. 상법 개정,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등 민생·경제 이슈를 속도감 있게 밀어붙인 게 영향을 끼친 걸로 보인다. 인사에서 일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현재까지는 큰 잡음이 없는 편이다. 인사든 정책이든 기존에 예상됐던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까닭이다.
국민주권정부의 안정적 출발은 처음부터 좌충우돌했던 3년 전과 대비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대통령실 이전 문제를 놓고 혼선을 빚었다. 그는 원래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약속했었다. 현실적인 여건이 녹록지 않았다. 그러자 느닷없이 서울 용산에 있는 국방부 청사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윤 전 대통령의 고집에 국군은 졸지에 방을 빼야 하는 신세가 됐다. 어디 대통령실 이전만 그랬나. 초등학교 5세 입학, 수능 킬러문항 폐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등 그의 임기 3년은 예측할 수 없는 국정 운영으로 점철됐다. 비상계엄은 클라이맥스였다.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12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지금도 왜 계엄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정치에 몸담은 인물이었다면 이렇게 예측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입당한 지 4개월 만에 제1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고, 다시 4개월 지난 2022년 3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계에 데뷔하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불확실성을 초래한 셈이다.
보수 정당은 예전부터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식으로 인물을 충원해 왔다. 김영삼·이회창 등 당의 리더들은 이른바 ‘YS 키즈’, ‘이회창 키즈’를 영입, 이들을 당 쇄신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1990년대 후반 영입돼 오랫동안 당내 소장파로 활약한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 대표적이다. 외부 인재를 차출해 오는 건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새 피를 수혈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다. 위기를 맞을 때마다 바깥에서 답을 찾는다면 당 구성원들의 사기는 저하될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현실 정치에 적응하느라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한다. 인적 구성의 교체가 잦아지면 유산은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된다. 보수 정당이 선거 때마다 빅텐트를 외치고 뜨내기 리더를 옹립하는 건, 역설적으로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남아있는 인재풀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인재 시스템은 국민의힘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기본적으로 민주당 근처에는 ‘상비군’이 많다. 2000년대 초반, 86세대 운동권 인사들은 언제든 차출돼 정치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상비군들이었다. 이들에게서 더 이상 데려올 인물이 없어질 즈음엔 시민단체들이 그 역할을 대체했다. 같은 교수·변호사라 하더라도 오랜 세월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정치 근방에서 훈련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정치에 대한 이해도나 추진력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2016년 제20대 총선 이후 계속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성기는 비단 국민의힘 대통령들의 연이은 탄핵 때문만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탄핵이라는 결과 자체가 국민의힘의 취약한 인적 토대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1990년 3당 합당은 보수 정당의 압도적 우위 구도를 가져왔다. 신한국당·한나라당 때처럼 이들이 한국 정치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을 땐 굳이 사람을 키우지 않아도 됐었다. 보수 정당으로 인물과 자원이 쏠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보수 정당의 지역적 기반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지지층의 인구학적 특성 역시 갈수록 불리해지는 중이다. 다른 무엇보다 총선에서 연달아 3번을 깨지고 대통령이 두 번 연속 탄핵당한 정당이지 않은가. 명망가가 총선을 앞두고 정당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우선순위 앞에 놓이는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닌 더불어민주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수도권도 험지라며 기피하고 전통적 우호적인 부산·울산·경남 지역 지지율에서도 앞서지 못하는 정당에 누가 오려 하겠나. ‘차출 정치’의 관행을 끊고 내부에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이 겪고 있는 비상 상황은 언제든 다시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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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F1의 스피드와 브래드 피트라는 영화가 만날 때
3년 전 여름, 빠른 속도로 하늘을 누비던 톰 크루즈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면 이 영화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탑건: 매버릭’이 하늘 위에서의 전투를 그린다면, ‘F1 더 무비’는 땅 위에서 가장 빠른 속도 전쟁을 선보이며 몰입도를 높인다. 조셉 코신스키가 만든 두 편의 영화는 유사한 부분이 많다. 빠른 속도를 중심에 두고 있고, 이야기 전개 방식도 그렇다. 아마도 ‘탑건: 매버릭’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F1 더 무비’도 흥미롭게 보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1990년대 포뮬러원(F1)의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단 한 번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만 비운의 드라이버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소니는 미국 전역을 돌며 용병 드라이버로 활동하고 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달리는 소니 앞에 한때 동료였던 ‘루벤’(하비에르 바르뎀)이 나타나 자신의 팀 드라이버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F1 최하위 성적에 머물러 있는 APXGP팀은 이번 시즌 F1 대회에서 한 번이라도 승리하지 못하면 팀이 팔릴 위기에 처해 있다. 불안한 팀 분위기로 대다수 드라이버들이 꺼리는 팀이 되면서 노장 소니에게까지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F1에서 달리지 않았던 소니를 반기는 이는 없다. 특히 팀의 루키이자 파트너로 함께 달려야 할 20대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는 소니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팀을 위기에 빠뜨린다.
영화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과 성장, 최하위 팀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진행되는 언더독 서사를 바탕으로 한다. 거기에 더해 소니와 루벤의 우정, 레이싱카 개발 기술감독 ‘케이트’와 ‘소니’의 사랑까지 예상가능하기에 진부해 보인다. 하지만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하물며 F1이라는 단어를 난생처음 들었어도 영화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F1 더 무비’의 힘은 속도와 체험에서 나온다. 이제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보다는 집에서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한 시대다. 그런데 이 영화는 TV 화면이 아니라 대형 스크린에서 볼 때 재미가 극대화된다. 실버스톤에서 열리는 영국 그랑프리부터 일본 그랑프리의 스즈카 서킷 등 전 세계 F1 서킷의 현장을 그대로 옮겨오며 박진감 넘치는 현장을 재현한다. 배우들은 시속 300km의 속도를 전달하기 위해 진짜 레이싱을 즐기며, 차량과 서킷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고성능 카메라는 서킷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로 인해 서킷에서의 속도 경쟁과 아슬아슬한 추월 장면에서는 주인공은 지지 않을 거라는 뻔한 공식에도 불구하고 흥분하게 만든다. 제작자로 나선 제리 브룩하이머의 말처럼 “마치 관객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이때 영화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는 한스 치머의 영화음악도 한몫 거든다.
또한 영화는 레이싱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동시에 소니와 조슈아가 처한 상황과 그들의 충돌 과정도 차근차근 풀어간다. 소니의 절실함과 조슈아의 불안함이 균형감 있게 담기기에 엔딩 장면에 이르면 원팀이 된 두 사람을 만난다.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 나가니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영화는 소니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의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고독하고 자유분방한 브래드 피트를 그대로 답습하는가 싶다가도 ‘F1 더 무비’가 영화적인 순간이 될 때는 여지없이 ‘브래드 피트’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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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동양화는 왜 역사성을 되찾는 의무를 짊어지게 되었을까?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기온과 습기, 전에 겪지 못한 기상현상이 일어나는 한여름이다. 어디 잠시라도 피할 수 있다면 하는 심정으로 박노수의 ‘버드나무 아래에서’를 들여다본다. 시리도록 푸른 청색 잎을 늘어트린 버드나무 가지가 우리 눈 앞을 가리고 그 여백 사이에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 멀리 옅은 노랑을 띤 달을 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남정 박노수(1927~2013)는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1945년 청주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그림에 뜻을 두고 상경해 이상범에게 사사했다. 해방되고 서울대 미술학부가 생기자 첫 입학생으로 1946년 입학해 김용준, 노수현, 장우성에게 배운다. 1949년 제1회 국전에 입선을 시작으로, 2회 국무총리상, 3회 특선, 4회에 동양화로는 처음 대통령상을 받아 기성 화단에 진입하게 된다.
그의 독특한 이력 하나는 1회부터 1981년 30회로 국전이 끝날 때까지 참가한 것이다. 대통령상을 받은 이듬해 이화여대 교수가 되고 또 이듬해에 추천작가가 된 이유도 있겠지만, 그 말 많고 탈 많은 국전에 빠짐없이 참여했다는 것은 남들 눈과 평가보다는 자신의 예술을 담담히 실천하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해방 이후 일제 잔재를 벗어나 민족미술을 수립해야 한다는 당면한 구호나 유구하고 거창한 동양화론과 화법을 추종하려는 노력은 찾기 힘들다. 1950년대에 여성 인물상을 소재로 하거나, 1960년대 중반까지 옛 선인들 시를 화제로 쓰거나 혹은 산수를 해체해 시대적 변화에 따라 조형성을 강조한 정도가 형태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1960년대 중엽부터는 오롯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드는 데 힘을 쏟는다. 그 계기는 1965년 1년간 일본에 있으면서 일본 작가들이 석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알고부터이다. 돌가루 물감인 석채 사용이 당시에 일제 잔재로 터부시되던 시절임에도 과감히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이후부터 중심 소재는 한지 흰색으로 두고 그 외에는 화려한 색으로 채색해 소재를 도드라지게 했다. 또 근경을 최대한 크고 가깝게 그려 강조하면서 공간 깊이를 창조하는 형식도 이즈음에 등장한다.
검은 먹선이 동양화에서는 중요한 조형 요소이기에 깊이 연구해 색과 조화되도록 사용하려 노력했다. 이런 요소를 담은 그의 작품은 노쇠한 느낌이 아니라 시각적 참신함과 마음의 여운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해방 이후 동양화는 일제의 청산과 민족의 전통을 찾으려 노력했다. 동양화가 아니라 한국화로 바꾸려는 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은 동양화 아니 한국화의 세계는 어둡기만 하다. 현대미술 혹은 현대성 성격을 추구하지 못한 이유로 효력이 사라진 것일까?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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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와 서큘레이터, AC 모터와 BLDC 모터… 뭐가 다를까 [궁물받는다]
무더운 여름, 하루 종일 내리쬐는 햇볕에 더위를 느끼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은 역시 선풍기입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서큘레이터'라는 이름의 제품이 출시되면서 두 제품 중 어떤 것을 구매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데요. 날개도 최소 3개부터 7개로 개수가 다르고, AC 모터와 BLDC 모터, 헤드 크기까지…. 좋은 제품을 사려고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더 고민되기만 합니다. 평소 사용하는 환경에 맞게 구매하려면 어떤 제품을 골라야 할까요? 대형마트 가전 바이어에게 물어봤습니다.
- 선풍기와 서큘레이터의 차이는?
“두 제품은 구조적으로 목적이 다르게 설계된 상품이다. 선풍기는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바람을 쐬어 시원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며, 서큘레이터는 공기를 순환시켜 실내 전체 온도를 균일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서큘레이터 팬 또는 서큘레이터형 망을 차용한 선풍기 등이 많이 출시돼 선풍기와 서큘레이터의 경계가 흐려지는 추세다. 따라서 절대적인 사용 용도가 구분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사용자의 편의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 AC 모터와 BLDC 모터는 무엇이 다른가.
“상품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BLDC 모터는 AC 모터보다 에너지 효율이 약 30%에서 50%가량 높다. 소음이 적어 수면이나 조용한 공간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며, 최소 6~7단계에서 많게는 20단계 이상까지 세밀한 풍속 조절이 가능하다. 또 AC 모터보다 수명이 길어 비교적 고장이 적고 장기간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BLDC 모터가 사용된 제품이 AC 모터가 장착된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다.”
- 제품마다 날개 수(엽수)가 다양한데, 어떤 차이가 있나.
“일반적으로 날개의 수가 적을수록 바람이 강하고 거칠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엽수가 많을수록 바람이 쪼개져서 퍼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용자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바람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바람의 절대적인 세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날개의 수보다는 풍속의 단계, 모터의 영향이 크다. 소음의 경우 엽수가 적을수록 공기저항이 크므로 소음이 비교적 크고, 엽수가 많을수록 소음이 줄어든다.”
- 최근 헤드가 작은 제품도 많이 출시되고 있는데.
“팬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바람이 퍼지는 범위가 좁아져 가까운 곳에서 특정 면적에서만 사용하기에 효과적이다. 같은 이유로 넓은 공간에서 바람을 쐬는 데는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일 수 있다. 소음이나 소비전력의 경우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용 중 덜덜거리는 진동음이 날 때가 있는데, 자체 점검이 가능한가?
“스피너(날개와 본체 사이의 조임 너트 부분)가 제대로 조여지지 않았거나 평지에서 사용하지 않았을 때, 받침대 부분이 제대로 조립되지 않은 경우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스피너를 다시 한번 조이거나 조립을 점검하면 해결될 수 있다. 그럼에도 소음이 발생한다면 모터 자체의 불량일 확률이 높다. 이 경우 일반적인 소비자가 해결하기에 어려우므로 소음이 심하게 발생할 경우 제조사의 AS센터 방문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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