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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개 식용 종식법’ 시행, 남은 개들은 어쩌나…
지난 1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30여 동물보호단체가 결성한 ‘개 식용 종식을 촉구하는 국민행동’ 주최로 ‘2024 초복 문화제’가 열렸다. 이들은 이른바 ‘보신탕 문화’의 빠른 근절을 촉구하는 동시에 정부가 개들을 살리기 위한 대안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그런 세간의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초복이었던 지난 15일 시중의 보신탕집을 찾는 발길이 예년보다 한산했다는 소식이다. 업주들은 ‘초복 특수’가 사라졌다고 울상이라는데, 사정은 지난 25일 중복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법은 시행되는데…
지난 2월 공포된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마침내 다음 달 7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보신탕 등으로 먹기 위한 개는 기르지도, 죽이지도, 팔지도 말라는 법이다. 이를 어기면 꽤 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처벌 조항은 공포 후 3년 간의 유예기간을 둬 2027년 2월부터 적용된다. 개 식용을 둘러싼 오랜 논란을 해소하고 동물 복지와 생명 보호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분명 진일보한 성과라고 하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개 농장 등 관련 업체가 특별법에 따라 전업 또는 폐업할 경우 정부가 어떻게 얼마나 보상·지원하느냐를 놓고 업체와 정부 사이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한육견협회 등은 이번 달까지 정부의 지원책이 확정되지 않으면 개 식용 종식을 전면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개 식용 사업은 그동안 불법으로 진행됐는데 왜 국민 혈세로 보상하고 지원해야 하냐”며 반발한다.
■50만 마리? 100만 마리?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식용으로 길러졌다가 특별법 시행 후, 특히 처벌 조항이 적용되는 2027년 이후에도 남아 있을 개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현재 국내 개 농장은 1500곳이 넘으며, 거기서 사육되는 식용 개는 50만 마리 이상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파악되지 않은 농장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실제로 동물보호단체들은 식용 개가 100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육견협회는 200만 마리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처벌이 유예되는 2027년까지 육견업자들이 보상을 노리고 집중 번식에 나서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한 식용 개들의 개체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뾰족한 수가 현재로선 없다. 육견업자들의 생업이 걸린 문제라 정부가 나서서 개체 수 제한을 강제하기도 어렵다.
■입양도 보호도 난감
향후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물론 육견업계와 동물단체도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식용으로 사육 중인 개들에 대한 보호 대책이 없는 셈이다. 육견업자가 개를 버려둔 채 농장 문을 닫거나 살처분하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육견업자들의 선택지는 세 가지뿐이다. 처벌 유예 기간 안에 개를 모두 출하하거나, 판매하거나, 입양시키는 것이다.
개를 출하한다는 건 보신탕집 등으로 유통시킨다는 뜻이다. 향후 2년여 동안 지금 있는 개들을 다 먹어 치운다? 실현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특별법 시행 취지에도 맞지 않는, 차마 못 할 짓이다. 판매와 관련해 육견업자들은 정부가 개들을 매입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수십만에서 수백만 마리에 이르는 개들을 예산을 들여 모두 매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육견업자들은 마리당 200만 원의 보상액을 제시했다는데, 식용 개의 개체수를 고려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다. 설사 정부가 무리해서 매입한다고 해도 이후 그 개들의 처리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지자체나 민간단체의 동물보호소가 있지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그 마저 이미 포화 상태라 식용 개들을 수용할 여력이 없다. 입양도 난감하다. 식용 개 대부분이 20kg 이상의 대형견이라 일반 가정에서는 입양을 꺼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개들을 그대로 유기할 수도 없는 일. 결국 안락사밖에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많은 개들을 모두 안락사시킨다? 그 자체로 참극이다.
■법으로 강제한 대가!
이런 현실에 그동안 개 식용 금지를 주창해 온 동물보호단체들은 곤혹스럽다. 최선을 다해 개들을 보호·관리하겠다지만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번식하지 않게 하고 남은 개들을 인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잘 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제언할 따름이다. 정부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동물보호단체와 비공개 회의를 가졌는데 별다른 대안을 찾지는 못하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말만 나왔다고 한다. 정부가 오는 9월까지 관련 기본계획을 수립한다지만 거기에 과연 획기적인 해법을 담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하튼 앞뒤 고민 없이 법으로 개 식용 금지를 밀어붙인 대가를 우리 사회가 톡톡히 치르게 됐다. 반려견 문화 확산으로 개고기 먹는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형편이라 가만히 놔둬도 자연스레 ‘보신탕 문화’는 사라질 터인데, 굳이 그렇게 했어야 옳았나 묻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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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태극전사 파리올림픽서 국민 즐겁게 할 선전 바란다
제33회 프랑스 파리올림픽이 현지 시간으로 26일 오후 7시 30분(한국 시간 27일 오전 2시 30분)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17일간의 열전에 들어간다. 21개 종목에 260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5개 이상, 종합 순위 15위 이내 입상을 목표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 대한 국내 열기는 예전만 같지 않다. 한국은 이미 알려진 대로, 여자핸드볼을 제외한 모든 구기 종목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번 올림픽은 국내외적으로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안으로는 우리 선수단의 선전을 통해 국민들이 즐거움을 얻을 기회이고, 밖으로는 역사상 최초의 ‘친환경 올림픽’으로서 국제사회의 기대가 쏠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파리올림픽은 경기장을 새로 짓지 않고 기존 시설을 이용하거나 혹은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로 가설 경기장을 만든 점이 주요 특징이다. 그동안 개최 도시가 대규모 건설 위주로 방향을 잡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경기장 대다수를 10km 이내에 위치시켜 이동량과 교통량을 최소화한 것도 주목된다. 이 모든 것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바로 기후위기에 대한 각성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와 프랑스가 올림픽을 친환경 전환의 장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의기투합했고 마침내 그 시험대 위에 선 것이다. 이미 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있는 나라로서, 그리고 세계 경제규모 10위권 국가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경기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올림픽에 대한 국내 관심은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게 사실이다. 먼저 한국팀이 예상 밖 초라한 성적을 거둔 지난 도쿄올림픽에서의 기억이 생생하다. 메달 집계 16위를 기록하며 1984년 수준으로 크게 후퇴했는데, 선수 육성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 세대교체 과제의 미흡, 정부 지원의 한계 등 여러 요인이 지적을 받았다. 선수단 규모가 1976년 이후 역대 최소인 이번 올림픽에서도 만족할 만한 성적은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11회 연속으로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여자핸드볼 말고는 구기 종목은 죄다 몰락했다. 한국 축구의 충격적 본선 탈락이 그 정점을 찍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이번 파리올림픽의 슬로건은 ‘와서, 함께 나누자’이다. 올림픽 정신을 공유하면서 기후위기 극복과 세계 평화를 발원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올림픽 정신은 갈고닦은 실력, 불굴의 투지, 정정당당한 승부 속에서 빛을 발한다. 한국 선수단 역시 이런 마음가짐으로 굵은 땀방울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이 결실을 거둔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지금은 우리 국민들의 지친 마음에 위로가 필요하다. 이상기후에 따른 폭우·폭염, 바람 잘 날 없는 정쟁, 우울한 경제 지표 앞에서 하루가 멀다고 어깨가 짓눌린다. 이럴 때 태극전사들의 승전보는 한 줄기 청량제가 되고도 남는다. 이번 올림픽이 국민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는 시간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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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저·장낙대교 건설 본궤도, 서부산 발전 주춧돌 되길
서부산권의 극심한 교통난을 해소할 낙동강 횡단 교량인 대저대교와 장낙대교의 건설 사업이 24일 마침내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받으면서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그동안 최대 쟁점이었던 낙동강 하구의 철새 서식지에 대해 부산시가 지속적인 환경보호 방안 등을 약속하면서 사업을 추진한 지 약 10년 만에 외부 기관의 허가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철새 서식지 환경보호와 서부산권 교통난 완화라는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수 없는 두 가치의 상충을 극복하고 차선책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우여곡절 끝에 양 대교 건설이 첫 삽을 뜨게 된 만큼 2029년 준공 목표에 차질이 없어야 하겠다.
대저·장낙대교 건설의 필요성은 서부산권 개발과 맞물려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대저대교는 2006년도에 이미 국토교통부의 제1차 교통혼잡도로 개선 사업에 선정됐고, 장낙대교는 2017년에 예비타당성조사가 완료될 정도로 그 필요성에는 충분한 공감대가 이뤄졌다. 그러나 교량 건설 장소와 철새 서식지인 낙동강 하구가 겹치면서 이곳의 환경보호 대책이 최대 논란거리가 됐다. 필수 요건인 낙동강환경유역청과 국가유산청의 환경영향평가나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시의 부실한 행정까지 더해져 대교 건설은 거의 10년간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사이 논란만 비등한 채 주민 고통은 갈수록 더해만 갔다.
이번 국가유산청의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는 철새 서식지 보호와 관련한 논란을 일단락 짓고 본격적인 교량 건설 사업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기로 꼽힌다. 주지하다시피 서부산권과 도심을 잇는 교량 건설이 계속 지연되면서 서부산권은 지금도 많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기존 교량은 벌써 포화 상태가 됐는데 국제물류도시와 에코델타시티 등 대규모 상업 시설과 주거 단지는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도 극심한 교통 혼잡이 갈수록 더 악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서부산권의 앞날을 고려하면 두 대교가 맡을 역할과 비중이 매우 크고 중할 수밖에 없다.
대저·장낙대교 건설의 걸림돌이 해소된 만큼 이제는 준공 목표에 맞춘 차질 없는 공사 추진이 매우 중요하다. 시는 대저대교의 경우 내달부터 보상 업무와 함께 공사를 시작하고, 장낙대교는 올 연말까지 실시설계 용역을 거쳐 내년 2월께 공사를 발주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동안 교량 건설을 기다려온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2029년 12월 준공에 더는 차질이 있어선 안 된다. 또 이 지역의 교통체계도 함께 개선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가유산청의 결정에 여전히 반발하고 있는 지역 환경단체의 제안이나 의견도 유연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개발과 환경 보호는 교량이 건설된 이후라도 계속 남을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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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워싱턴으로 간 코코넛
과일이나 음식은 인종차별에 사용되곤 한다. 유럽 축구장에서는 아시아계나 남미,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에게 바나나를 던지거나, 원숭이 소리를 내는 현상이 종종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김민재가 뛰었던 이탈리아 나폴리구단은 나이지리아 출신 공격수 빅터 오시멘을 코코넛에 빗대 “나는 코코넛이야”라는 틱톡 영상을 만들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야자수 열매인 코코넛(coconut)은 미국에서 주류 문화에 동화되려 애쓰는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계 사람을 비하하는 속어로 흔히 쓰인다. 껍질이 갈색인데 속은 새하얀 코코넛처럼 외모는 소수인종이지만, 내면은 백인과 같고 백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의미다. 동양인은 겉은 노랗고 속은 흰 크림인 ‘트윙키’, 미국 원주민들은 겉은 빨갛고 안은 하얀 ‘사과’, 흑인은 검은 쿠키 안에 흰 크림이 들어있는 ‘오레오 쿠키’ 등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인종차별 문제가 가장 극심한 국가가 미국이다. 흑인은 물론이고, 아시아, 중남미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지난 5월에는 미국 LA에서 한인 교포인 양용 씨가 LA 경찰이 쏜 총에 억울하게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한인들과 아시아계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내가 양용이다’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런 미국 사회에 난데없이 코코넛이 등장해 화제다. 자메이카 출신 흑인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대선 주자로 나서면서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해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내 어머니는 ‘너희 젊은이들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너희들은 그냥 코코넛 나무에서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니’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연설했다. 젊은 세대가 앞 세대와의 연결 속에 있으며 자신의 배경과 맥락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와 관련된 영상이 코코넛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SNS를 달구고 있다.
이로 인해 코코넛은 바이든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대선 후보 사퇴 이후 급부상한 해리스 부통령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SNS에는 코코넛, 야자수 사진이나 ‘방금 코코넛 나무에서 떨어진 것 같니’ 댓글, 해시태그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미국이 인종차별과 미국 우선주의라는 두꺼운 코코넛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을지, 아니면 컴컴한 코코넛 껍데기 안에 계속 쪼그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자신의 꿈을 찾으려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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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의 일필일침] 부산 특별건축구역, 도시 미래 될 수 있나 ?
도미니크 페로, 렘 콜하스, 리처드 마이어, 위니 마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다. 갑자기 이들을 호명한 이유는 부산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시범사업 후보지 설계를 맡아서다. 국내 건축 설계사와 컨소시엄 형태로 이루어진다. 최근 부산시는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시범사업 후보지 7곳을 선정했다. 최종 시범사업지는 10월쯤 4~5곳이 선정될 예정이다. 특별건축구역은 도시경관을 고려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건축물을 설계할 경우 건축법상의 건폐율, 건축물의 높이 등의 건축 규제를 완화해 주는 제도다. 부산시는 최종 시범사업지에 세계적인 건축가의 설계가 실현될 수 있도록 건축법 완화뿐만 아니라 기획설계비 일부 지원, 절차 간소화 등의 행정적 뒷받침도 할 방침이다. 앞서 부산시는 2020년 북항 1단계 재개발지역 등 4곳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특별건축구역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시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설계안을 특별건축구역에 적용하려는 이유를 “단순히 건축물의 형태와 기능을 넘어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도시 경쟁력의 중심에 건축 디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몇몇 도시는 건축 디자인을 통해 세계적 도시로 발전한 사례도 있기에 이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화 콘텐츠 강화나 생태도시 지향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시의 가치를 높인 사례도 많다.
부산시가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빙해 건축 디자인에 신경을 쓴 것은 이해할 만하다. 지역의 건축 공사 중 상당수가 공동주택으로, 삭막하고 획일적인 디자인이 도시 경관을 저해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부산시의 논리대로라면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를 초빙해 도시경관을 개선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외국의 유명 건축가와 굳이 컨소시엄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으로는 부족하다.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부산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외국 건축가에게 맡기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랄까. 특히 지역 건축가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실제로 지역의 한 건축가는 “왜 굳이 외국 건축가의 힘을 빌리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한다.
이번 기회에 지역 건축계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오랫동안 타성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건설사가 시장 논리에만 집착해 주거 다양성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도시 행정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인 도시 비전 없이 근시안적으로 대응해 온 것은 아닌지,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행정이 획일적인 아파트 설계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세계적인 건축가와의 컨소시엄은 분명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문제점도 수반된다. 지역 건축가의 역할 감소와 경쟁력 약화는 물론, 특별건축구역 인센티브가 자칫 오용될 경우 도시경관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도시 고층화가 문제인데, 왜 용적률을 20%나 더 주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고층화로 인한 경관훼손과 주변 조망과 일조간섭, 기존 사업지, 이후 개발지와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적어도 이게 해결되어야 부산의 특별건축구역이 도시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외국 유명 건축가와의 컨소시엄은 부산 도시 건축을 일깨우는 ‘일회성 죽비’이어야지, 연례 행사처럼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부산 도시 건축의 먼 미래를 고려할 때, 이는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외국 건축가와의 컨소시엄 같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장기적인 처방을 더 고민해야 한다.
부산시가 외국 건축가들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특별건축구역 사업지를 선정하는 것은 분명히 전략적 선택이다. 적어도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초빙한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참에 부산 도시 건축이 한 발짝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멋진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산의 정체성을 반영한 창의적인 디자인이면서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는 건축물을 조성하는 방안이 담겼으면 좋겠다. 소위 혼(魂), 창(創), 통(通) 말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와의 컨소시엄을 통한 부산 특별건축구역의 혜택은 도시의 미래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정교한 계획과 균형 잡힌 실행이 함께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부산의 도시환경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을 위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일에 부산시가 소홀하지 않기를 바란다.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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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랑의 골 때리는 기자] 잘 다치는 기술이 필요해
여성 풋살 열풍을 몰고 온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최근 한 장면이 화제가 됐다. 스포츠트레이너 출신 유튜버 심으뜸이 가수 유빈과 공을 두고 몸싸움을 하던 중, 무리하게 뒷쪽에서 유빈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장면이다. 심으뜸은 이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고 돌아섰고, 유빈은 “무리하게 다리 휘두르지 말자, 다칠까 봐 그런다”며 경고했다. 그제야 심으뜸은 “공만 봤다,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이를 두고 심으뜸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영상에 달리기도 했다.
심으뜸의 속내는 알 수 없으나, 고의로 이 같은 행동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여성 풋살 경기에서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특히 초급자의 비율이 많을수록 그렇다. 공을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여성들은 공을 뺏는 데 몰입한다. 그래서 무리한 태클이 경기에 지장을 주고 상대편을 다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다.
물론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상대방에게 사과만 한다면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부상을 입히거나 당했을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가해자일 경우는 미안함에 주눅이 든다. 피해자가 되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상대방의 거친 플레이에 감정이 상하고 행여 다툼이 벌어질까봐 두렵다. 보통 처음 풋살을 접해보는 여성들이 가해자가 되고 실력 있는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초급자랑은 공 못 차겠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몸싸움이 두렵다’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초보자들은 이러한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커 결국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공을 차게 되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다. '이 재밌는 공놀이를 남자들끼리만 했다니'를 외치며 풋살의 재미를 알아가던 여성들이 결국은 그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오래 공을 차기 위해선 ‘잘 다치고 잘 싸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 공을 뺏을 땐 다리 사이로 발을 넣는 게 아니라 몸으로 먼저 상대방을 막으면서 공을 지켜야 한다. 발로 무리하게 공을 뺏다간 상대방도 나도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순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실수를 하면 바로 사과해 풀면 된다. 누구나 이러한 노하우를 알기까지 친절한 동료들의 배려가 필요하다. 나 역시 처음 공을 차는 다른 여성들 때문에 다친 적도 많지만, 항상 내가 처음 풋살을 시작했을 때 여성 동료들로부터 받았던 배려를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결국 이런 경험과 교훈을 나눌 수 있는 것은 같은 취미를 가진 여성들뿐이다. 심으뜸 영상에 달린 날 선 댓글과는 다르게, 유빈은 다칠 수 있으니 그런 행동은 자제하자고 심으뜸에게 친절히 말을 건넨다. 여성 동료들이 경기장을 떠나지 않으려면 친절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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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7월의 화가, 프리다
7월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화가가 있다. 바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 그녀의 작품과 생애가 담고 있는 타오르는 열정은 꼭 여름을 닮았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태어나고 사망한 것은 모두 한여름인 7월이었다. 올해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특히 지난달 멕시코 프리다 칼로 미술관의 알바레스 관장은 한국을 찾아 국립현대미술관 특강, 한국화랑협회 회장 면담, 윤석남 화가 작업실 방문 등을 통해 한국의 현대미술과 여성 화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화제와 찬사, 관심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피카소가 극찬한 천재, 프랑스 루브르가 최초로 작품을 구입한 중남미 예술가, 1984년 멕시코 정부가 작품 전체를 국보로 지정해 국외 반출을 법으로 금지한 화가, 202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자화상이 412억 원에 낙찰되어 중남미 미술품 최고가 경신…. 바로 그 자화상은 올해 4월 이탈리아에서 개막한 2024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프리다 생전에는 멕시코 벽화 운동을 주도했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1886~1957)가 그녀보다 훨씬 더 유명한 화가였다. 프리다는 1939년 프랑스 파리 ‘멕시코전’을 통해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는데, 아마 시대를 앞선 화가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1940년대 그려진 프리다 작품의 가치는 1970년대 여성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새롭게 평가되기 시작했다.
독일계 사진사였던 아버지는 그녀를 특별히 아꼈고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프리다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47년간 그녀의 삶은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 6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의사의 꿈을 품고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끔찍한 교통사고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의사의 꿈을 접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평생 30여 차례 수술을 하고 모르핀에 의존해 살아가야 했던 그녀의 작품에는 고통, 상처와 함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진정성이 담겨 있다. 비평가들이 그녀 작품을 ‘초현실주의’라고 평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작품은 철저하게 ‘현실’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프리다 작품의 주제는 출산, 유산, 낙태, 월경 등 당시 서구 미술계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여성만의 고유한 경험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는 이후 여성주의 운동에서 매우 중요시된 것들이다. 초기 여성주의 운동은 여성들이 그동안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자기고백적, 자의식적 작품들이 많은데, 프리다 작품은 이런 초기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프리다 작품은 ‘초현실주의’나 ‘페미니즘’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대다수가 ‘자화상’이라는 특징으로 더 잘 설명된다. 사실 자화상만을 평생의 주제로 삼고 끈질기게 그린 화가는 흔치 않다. 영혼의 깊이를 드러내는 걸작 자화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렘브란트나 고흐도 주요 작품을 그리는 도중 간간이 자화상을 그렸던 것이지, 프리다와 같이 전적으로 자화상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프리다 필생의 예술적 주제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고 평생 자신을 그리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그녀는 인생의 고비가 올 때마다 자화상을 그려 자신을 돌아보면서 위로와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평생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얼마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냈는가를 느낄 수 있다.
프리다는 캔버스 작품으로 여성 자아를 표현하고 남편 디에고는 대규모 벽화로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품 양식이나 경향은 매우 다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멕시코 전통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예술 세계는 서로 맥이 닿아 있다. 디에고는 11살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해 20대에는 유럽 거장들의 화풍을 익혔다. 멕시코에도 수많은 벽화를 남겼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인기가 있어서 샌프란시스코 증권거래소 벽화를 주문받아 그리기도 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을 잘 이해시켜 줄 영화가 한 편 있다. 줄리 테이머 감독의 영화 ‘프리다’(2002년). 놀랍게도 이 영화의 기법은 프리다 작품의 특징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그녀 작품들 모두는 철저히 그녀의 삶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 영화는 작품 이미지를 화면 구성에 자주 사용한다. 그림이 화면에 등장하고 그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등장인물이 움직이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또, 역으로 움직이던 인물들과 배경들이 그대로 프리다의 그림으로 변한다. 뜨거운 여름, 절망적인 상황과 계속되는 시련 속에서도 빛나는 예술을 통해 삶의 고귀함을 보여준 프리다 칼로를 만나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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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위도가 가장 높은 공연장 '하르파'
북위 66도부터 북극권이라 부른다.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다. 아이슬란드는 이 지역에 면해 있고, 수도 레이캬비크는 북위 64도에 해당한다. 이곳에 ‘하르파(Harpa)’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도가 높은 극지방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필자는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면 공연장과 미술관과 같은 문화공간을 사전에 찾아보는 게 루틴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전체 인구가 30만 명, 수도 레이캬비크 인구는 12만 명에 불과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객석 수 1800석의 콘서트홀을 만난 것이다. 결국 일정을 조정해서 하르파에서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2011년 개관한 하르파는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역사가 길지 않음에도 건축과 콘서트, 콘퍼런스 센터로서 이미 많은 수상 경력이 있다. 2013년 ‘미스 판 데어 로에’ 현대 건축상을-EU 집행부와 미스 판 데어 로에 재단이 2년마다 유럽 최고 건축물에 부여한다-수상했으며, 1923년 창간한 클래식 전문 매거진 영국 그라모폰에서는 2000년대 이후 지어진 최고의 콘서트홀 중 하나로 선정했다.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업해 제작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필립 글래스의 현대음악 연주, 윈튼 마살리스와 같은 재즈 뮤지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같은 세계적인 단체도 이곳에서 연주한 이력이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건 하르파는 덴마크의 건축사무소 헤닝 라르센 아키텍츠와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이 합작해 설계했다는 점이다. 헤닝 라르센은 코펜하겐 오페라극장을 디자인한 전위적인 건축가 중 한 명이며, 올라퍼 엘리아슨은 자타공인 우리 시대 최고의 예술가이다. 이들이 협업해서 만든 파사드는 하르파를 가장 특징적으로 만들어 준다. 유리와 철제로 이루어진 하르파 전체 건물의 구조는 화산섬인 아이슬란드의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무암 절벽에서 착안했다. 현무암의 수많은 구멍 모양에서 나온 기하학적인 모듈 구조는 마치 아이슬란드 해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주상절리와도 같다. 북구의 자연을 건물에 가져온 것이다.
하르파의 한 면은 바다 쪽을 향하고, 다른 한 면은 레이캬비크 도시를 향해 있다. 이는 설계 단계부터 건물이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콘서트나 오페라 감상이 아니더라도 낮에도 언제든지 방문해서 도시 경관을 보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극지방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문화로 극복한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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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손님
몇 달간 집을 비운 사이에도 세월은 어김없이 집을 다녀갔습니다. 목단꽃 봉오리에는 꽃 대신 투박한 씨앗이 달렸고,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아 주기를 기대했던 능소화는, 그런 나의 바람 같은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 벌써 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화단의 꽃들은 그들 마음 내키는 대로, 그들의 시간에 맞추어 화단을 방문하는 손님들이었습니다.
능소화는 늙어 가는 사람처럼 조금씩 짓무르고 있었고, 어떤 송이는 벌써 땅에 떨어져 처연한 모습으로 썩고 있었습니다. 능소화는 7월의 불꽃 같은 햇살과 경쟁이라도 하듯, 주황색 화려한 옷을 입고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으므로, 매사에 자신이 없는 나는 그 오만스러운 몸짓조차 마음에 들었습니다. 능소화는 한여름의 짧은 일생을 살다 가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에 너무도 흡족하여, 그런 지극한 만족감으로 일생을 살아내는지, 질 때는 단 한 가닥 아쉬움도 남아 있지 않다는 듯, 정말 미련 같은 건 남아 있지 않다는 몸짓으로 그냥 “툭” 떨어집니다. 나도 저렇게 헌 옷 한 벌 벗어 던져 버리듯 떠날 수 있을까? 떠나는 날 붙잡을 한(恨) 같은 것은 없을까?
달빛 아래서 세레나데를 부르던 안타까운 젊음이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로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불면으로 새던 밤도 있었습니다. 가족들과의 영원한 이별, 뼈저린 회한(悔恨), 그것들은 곱고, 슬프고, 밉고, 분노한 모습으로 내 마음에 살면서 나를 끌고 다녔습니다. 나는 애증(愛憎)에 사로잡힌 포로였고, 그것들을 사랑할 줄 몰랐습니다. 그것들이 내 삶의 실제 내용물이었지만, 나는 그런 것들은 기꺼이 그대로 받아들인 사실이 없었습니다. 하나하나에 대하여 갈증과 증오라는 원망의 이름을 달았습니다. 그런 것들은, 나의 초대나 허락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대로 내 마음에 차고 들어와,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짓밟고 괴롭히는, 불청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것들은 내 마음의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들 전부, 이 화단에 소리 없이 찾아왔다 떠나는 온갖 꽃들처럼, 내 삶에 찾아온 손님들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저 능소화처럼 거만을 떨고, 어떤 것은 제비꽃처럼 슬프고, 어떤 것은 독초처럼 아프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전부 내 마음에서 피었다 지는, 모양과 색깔이 각기 다른 꽃들이었고, 그 꽃들이 없었다면 내 삶은 텅 빈 쭉정이이었을 것입니다.
고운 것은 고운 것대로, 추한 것은 추한 것대로, 괴로운 것은 괴로운 것대로, 아픈 것은 아픈 것대로, 그것들은 전부 나를 찾아온 손님들이었고, 그것들이 나를 찾아온 것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까닭이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님은 나와 형제들을 가족으로 초대하여 서로에게 귀한 손님이 되었습니다. 꽃들이 화단에서 이슬과 햇살을 공유하듯, 우리는 한 공간, 같은 시간대를 공유한 세상의 손님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두 손님이었던 까닭에, 그들의 예정된 시간에 따라, 나의 헤어질 준비 같은 것은 헤아리지 않고 그렇게 내 곁을 떠났을 것입니다.
가슴 떨리던 젊은 날의 환희, 사랑의 상실이 가져온 아픔도, 모두 세월 따라 나를 찾아와 잠시 머물다 간 손님들이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손님들-그리움과 외로움, 늙음에 대한 분노-도 때가 되면 떠나겠다고 손을 내밀 것입니다. 손님은 자기가 가야 할 때는, 아무리 붙잡아도 뿌리치고 홀연히 떠나기 마련입니다. 세상을 연초록 그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이고, 자취 없이 사라지는 봄날 훈풍처럼 말입니다.
아마, 내 곁의 세사(世事)도 그렇게 흘러갈 것입니다. 이제 나는, 화단의 꽃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듯, 모든 인연이 만든 얽매임도 그렇게 바라볼 것입니다. 그도 잠시 나를 찾아온 손님일 테니, 그냥 태연히 맞았다가 애쓰지 않고 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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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낙동강 하구에 허황옥 청동상을 세우자
인구 328만 명(2024년 5월 기준)의 부산광역시는 산하에 16개 구·군을 두고 동부산(금정구· 기장군·수영구·해운대)과 서부산(강서구·북구· 사상구·사하구) 그리고 나머지 8개 구의 중부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서 간 길이는 기장군에서 가덕도에 이르는 직선거리로 약 53km다.
서부산 인구(2024년 5월 기준)는 91만 명 정도로 동부산 94만 명과 비슷하고 일 인당 지역 내 총생산 GRDP(2021년 당해년 가격)는 서부산이 3585만 원으로 동부산 2484만 원의 1.4배 정도이다. 이는 신흥 산업단지가 많은 강서구가 서부산 전체 GR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의하면 전국 250개 시·군·구 65세 이상 인구 비중 고령화 속도는 최근 7년(2015~2022) 동안 전국 평균이 0.677이며 부산광역시는 0.968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특히 서부산은 사하구가 1.236(전국 6위), 사상구 1.220(전국 7위), 북구 1.156(전국 13위)로 급속히 노쇠화되어 가고 있다. 서부산은 동부산에 비해 젊은 층 인구의 유입보다는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며 주거환경, 교육, 의료, 유통, 문화, 양질의 일자리 등의 낙후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서부산 간 격차의 원인은 구조적 요인뿐 아니라 동부산 편중 개발정책 탓이며 동서 간 불균형 성장은 광역시 전체 발전에도 저해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관광 문화적 차원에서 동서 간 격차는 상당하다. 동부산은 해운대, 광안리 등의 세계적 관광명소와 오시리아 동부산 관광단지의 테마파크형 관광자원이 있다. 한편 서부산은 바다 중심인 동부산과 달리 남해바다로 이어지는 낙동강과 서낙동강이 있으며 이러한 강 문화를 적극 개발해 볼 필요가 있다.
서부산은 김해·양산시와 연접해 있고 철의 제국이며 한때 동북아 교역의 중추로 알려진 가락국(금관가야)의 유구한 역사적 유산도 가지고 있다. 가락국은 1~3세기 전반기 가야의 맹주국이며 김수로왕이 인도 아유타왕국에서 바다 건너 서낙동강 녹산 송정부락에 도착한 16세 허황옥(허왕후)을 친히 영접했다는 신화적 전설의 스토리가 있다.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의 정보기술(IT)시대 다음에는 과연 어떠한 시대가 올까? 세계적 미래연구소들은 상상력이 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기술이 평준화되면 세계 어느 곳에서 생산하든지 제품의 품질 경쟁력은 서로 비슷해지고 제품에 어떤 스토리를 입히는지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랑겔리나 해안바위에 설치한 높이 1m 남짓한 보잘것없는 인어공주상은 연간 수백만 명의 세계적인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왕자를 만나기 위해 마녀에게 자신의 영혼까지 저당 잡히지만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안데르센의 애잔한 명작 스토리 덕분이다. 강서구 녹산 앞 바다 대마등에 혼수품 쌍어문(태양신의 고기 두 마리가 마주 봄)을 안고 있는 허황옥 청동상을 세운다면 많은 인도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외 관광객을 하루 정도 묵고 가게 하기 위해서는 야간에 가야문화 소재의 연극 또는 뮤지컬도 좋을 것이다. 관광코스로 서편 서낙동강의 불암동 장어마을 먹거리와 함께 강 주변에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조성하고 낙동강과 서낙동강을 오가는 유람선 운행은 어떨까. 수심이 얕은 서낙동강에는 소형 투어 보트가 적합할 것이다.
서부산권은 조성 중인 에코델타시티를 따라 을숙도 철새도래지와 다수의 생태공원들이 있고 두 줄기 낙동강에는 가야의 역사가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서부산권 관광자원 개발을 위해서는 한국수자원공사의 하굿둑 상시 개방 문제가 선행되어야 하고, 연관 지자체 간 열린 마인드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부산권 주민들의 지역 역사 관광 문화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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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예측 못한 '물 폭탄'… 만반의 고강도 대비책 마련해야
이상기후가 심화되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극한 호우’가 일상화되고 있다. 24일 오전 2시께 부산에는 시간당 강수량 83.1mm가 기록되면서 ‘하늘에서 폭포수가 쏟아졌다’라는 비명까지 나올 정도다. 특히, 영도 166.8mm를 비롯해 원도심인 중·서·사하·동구는 150mm에 육박하는 물 폭탄이 떨어졌다. 돌풍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는 이날 오전 2~3시 사이에 집중돼 상당수 시민이 밤잠을 설쳤다. 폭우로 인해 새벽에 사하구 신평동에서 주택이 침수돼 80대 남성이 구조되고, 지하주차장이 무릎까지 물이 차는 피해를 입었다. 119구조대원의 신속한 구조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자칫 위험한 순간이었다.
기상청 예측도 빗나가기 일쑤다. 기상청은 폭이 좁은 장마전선과 물 폭탄을 동반한 저기압 때문에 국지성 폭우 예측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상청은 “24일 새벽까지 부울경 지역에 5~20mm의 비가 가끔 내리겠다”라고 예보했지만, 오전 1시를 기점으로 호우주의보, 오전 1시 30분에는 호우경보로 위험 경고 수준을 연이어 높였다. 30분 사이에 누적 강수량이 30mm 이상이 높아질 정도로,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졌다는 뜻이다. 이제는 시간당 강수량이 ‘관측 사상 최고치’ ‘200년 만의 폭우’를 기록하는 것은 예사일 정도이다. 잦은 기상 이변으로 한반도도 더 이상 기후 위기의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기후 예보의 정확성 고도화와 함께 재난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시점이다.
특히, 최근 장마전선은 낮에는 소강상태를 보이다, 한밤중에 천둥을 동반한 폭포수 같은 비를 뿌린다. 대피 및 구조가 힘든 야간에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패턴화되면서, 재난 대책 기준을 높이지 않으면 인명·재산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상황이다. 2020년 7월 초량동 제1지하차도의 침수와 3명 사망, 2022년 포항제철소 침수 참사도 모두 야간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시간당 50mm 비가 내리면 시야 확보가 어렵고 100mm 이상이면 인공구조물 파손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재난 당국은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이 인간의 예측과 경험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영도에 내린 집중 호우가 2~3시간 이상 지속하면 도시 기능이 마비되고, 감당 못 할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예측 못한 물 폭탄이 연례행사처럼 일상화됐다면,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부산시와 일선 구·군청은 재난 대비 역량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침수가 잦은 지역과 취약 시설물의 안전을 점검·보강하고 초기부터 신속히 대처해 비 피해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지하차도, 아파트 지하주차장, 반지하 주택, 저지대 주택가, 옹벽 등 위험 지대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재난에 대비해 주민 대피와 인명 구조 등 재난 구조 체계에도 예산과 인력 확대가 시급하다. 기상 이변의 시대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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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피해 최소화와 철저한 관리를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에서 이용자 수 순위 6위와 7위인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업체에 대금 지급을 지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 소비자 환불도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싱가포르 소재 큐텐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계열사인 위메프·티몬에 영향을 미치면서 시작됐다. 이후 피해는 도미노처럼 번지는 양상이다. 업계에선 두 쇼핑몰의 결제 추정액을 근거로 미지급 금액이 1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2021년 환불 대란이 일어났던 ‘머지 포인트 사태’의 재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정부는 신속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판매자와 소비자의 피해가 더 늘어나기 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달 초 위메프가, 최근에 티몬이 입점 업체에 판매 금액 지급을 미뤄 항의 사태를 겪었다. 모두투어·하나투어·노랑풍선 등 여행사들은 22일부터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백화점, 홈쇼핑의 소비재 상품도 마찬가지. 또 전자지급결제대행(PG)업체가 위메프·티몬과 거래를 일시 중지해 신용카드 결제가 안되고 결제 취소에 대한 환불도 당분간 어려워졌다. 네이버페이와 SSG페이 등은 위메프·티몬이 할인 판매한 ‘티몬 캐시’와 상품권 사용을 제한했다. 두 쇼핑몰로 촉발된 사태가 전체 전자상거래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상황이다. 이커머스는 다수의 판매자와 소비자가 엮여 있어 부도가 나거나 문을 닫을 경우 더 큰 피해도 우려된다.
문제는 오래전 결제한 여행 패키지 판매가 철회되거나 비행기·호텔·렌터카 예약이 취소되면서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돌아가고 있는 점이다. 본격 휴가철을 앞두고 갑자기 취소 안내 또는 재결제를 요구받은 소비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지역에서도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부산의 한 호텔 뷔페는 6월 판매 금액 1600만 원이 미수된 채 7월 치 정산까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티몬·위메프를 경유해 방문하는 고객 비중이 절반 이상인 부산의 한 키즈카페도 정산이 밀려 망연자실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이 이제야 미정산·유동성 모니터링에 착수했다는데 피해를 줄일 대책이 시급하다는 점 명심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몸집만 불린 전자상거래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냈다. 소비자 보호 책임이 있는 관련 당국이 지금까지 뭘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정산 방식이 허술했다. 위메프·티몬은 사건이 불거지자 제3의 금융기관과 연계한 에스크로 방식의 정산 시스템을 약속했다. 지금까지는 판매자에 정산하기 전까지 소비자가 결제한 금액을 보관하면서 쌈짓돈처럼 꺼내 썼다는 말이다. 당국은 위메프와 티몬을 거느린 큐텐그룹이 유동성 위기 속에 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 위법성이 없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 또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안전하고 투명한 정산 방식을 의무화해야 한다. 전수 조사로 사고 위험이 있는 이커머스 업체는 발본색원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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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시선] 65세 이상 인구 1000만 명 시대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이달 10일 기준 10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은 단지 인구 구성만이 아니라 사회구조 자체도 전환기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국민 5명 중 1명꼴이 되면서 전반적으로 우리나라는 이전과는 다른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65세 이상은 노인복지법상 ‘노인’으로 분류돼 이제 우리나라도 노인 인구가 전체 20%를 넘는, 이른바 ‘초고령사회’을 코앞에 두게 됐다는 분석이다.
초고령사회의 도래는 노인 인구가 단순히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됐다는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 갈수록 부양 인구가 급증한다는 점에서 연금 문제를 포함해 노동력 부족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때에 따라서는 세대 간 갈등의 실마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미 인구 추계상 예견은 됐었지만 이제 공식적으로 우리나라도 65세 이상 인구 1000만 명 시대를 맞은 만큼 국가적으로 이에 따른 법률 등 사회 체계의 재정비를 서둘러야 할 때가 됐다. 21세기 중후반 우리나라 사회 체계의 안정 여부가 여기에 달려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노인 인구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난 10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는 1000만 62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 5126만 9012명의 19.1%에 달한다. 현재의 노인 인구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내년에는 초고령사회 기준인 전체 인구 비중의 20%를 넘게 된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특징은 그 증가세가 매우 가파르다는 점이다. 10년 전인 2015년까지만 해도 65세 이상은 677만 5101명으로 전체 13.1% 수준에 그쳤다. 그러다가 2020년 850만 명에 육박하며 가파르게 증가한 이후 이번에 불과 4년 만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광역시도 별로 보면 전남의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 비율이 26.67%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이어 경북 25.35%, 강원 24.72%, 전북 24.68% 순이었다. 부울경을 살펴보면 부산은 23.28%, 경남 21.25%로 모두 20%를 넘었지만, 울산은 16.58%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초고령화 도시인 부산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전국 특별·광역지자체 가운데 그 비율이 가장 높았다.
노인 연령 기준은 이미 이슈화
노인 인구 비중 20% 돌파를 코앞에 두고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이슈는 노인 연령 기준의 재조정 문제다. 이 문제는 노인 복지 혜택의 수혜 여부 등 노인 정책의 기준이 되는 만큼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앞으로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65세 이상 인구 역시 계속 늘 것이 이미 분명해진 상황에서 당장 이 기준부터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연령 기준 65세는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의 경로우대에서 시작됐다. 기초연금, 지하철 무임승차 등 주요 노인 복지사업이 이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노인의 신체 여건을 비롯해 사회 여건 역시 적잖이 달라진 만큼 이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노인 인구 급증에 뒤따르는 국가 복지 재정이 큰 부담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연령 재설정은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2025년부터 10년마다 노인 기준 연령을 1세씩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도 각종 노인 복지 혜택의 기준 연령을 만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중한 접근을 주장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령 기준 상향은 이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다 정년과 연계된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의 불일치 기간이 더 늘어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또 개인별로 천차만별인 노인의 건강, 소득 차이 등을 무시하고 일률적인 연령 기준 적용이 바람직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연령 재조정은 복지 서비스 대상의 축소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연금·일자리 체계 개선 시급
노인 연령 기준 재조정과 함께 노후 대책으로 꼽히는 연금 개혁 역시 초고령사회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저출생·고령화 시대는 국민연금 수급과 고갈 문제와 직결돼 있다. 거의 모든 국민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다. 현재 만 63세부터 받기 시작하고 2033년 65세로 늦춰질 국민연금 수급 기준은 오는 2055년께 바닥이 드러날 연금 재정을 감안하면 더는 해결 방안을 미룰 수 없는 상태다.
이와 직결된 사안이 정년 연장이다. 대기업 일부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법률적으로는 아직 정식 공론화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충분한 대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청년들의 일자리 확보와 상충할 수도 있어 섣불리 접근하기도 어렵다. 역시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수적인 사안이어서 국회를 중심으로 한 여야 정치권과 정부의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제도권 내 논의는 미진하기만 하다.
이외 무임승차 등 노인 이동권 확보나 노인 기초연금 등 노인의 기본소득 보장, 노인성 질환 등 노인돌봄 강화 정책도 65세 이상 인구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발등의 불이 됐다.
노인 법률 체계도 손봐야
저출생·고령화로 대별되는 인구 상황을 맞아 우리나라의 역동성과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노인 인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변해야 한다. 여러 번 나온 말이긴 해도 노인도 국가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세대와의 조화로운 삶과 노인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초고령사회에 맞는 새로운 사회 체계 구축이 시급한 시점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은 노인 관련 법률 중 대표적인 노인복지법의 대대적인 조정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근래 국회입법조사처가 노인복지법의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노인복지법을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복지 분야의 기본법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경청할 만하다. 노인의 인권과 시민권 관점을 바탕으로 노인의 빈곤, 요양·돌봄, 평생교육 등 다양한 사업에 대한 원칙을 새롭게 세우고, 이에 맞춰 관련 법률 체계도 재정비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놔두고라도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업이다. 이를 계기로 노인 연령 기준이나 연금 정책 등에 대한 공감대도 자연스럽게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한 사회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일이다. 하지만 이미 현실로 닥쳤고 벌써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우리나라 미래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일임을 감안하면 이제라도 법률 정비와 정책적 실행의 대원칙을 새로이 설정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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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공동어시장의 ‘골든 타임’
10년 전 처음 찾은 부산공동어시장 기자실. 2~3평 남짓 공간은 대낮이 무색하게 그늘이 짙게 졌다. 책상에서 슬쩍 보이는 창문 밖 ‘뷰’는 강렬했다. 파란색 위판장 지붕에 흰색 페인트를 흩뿌린 듯 갈매기 떼와 배설물이 가득했다. 탁한 공기에도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올해 초 다시 찾은 어시장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기자실뿐 아니라 주차장에서부터 진동하는 생선 비린내, 생선 내장으로 미끈거리는 위판장 바닥도 ‘그때 그 모습’이다. 더는 향수를 자극하는 ‘부산다운 풍경’ ‘관광객 볼거리’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부산 시민이라면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2009년부터 총선, 지방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이었다. 지난 2012년 어시장 사장 선거 때는 5명 후보 모두 현대화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수년에 걸쳐 ‘착공한다’ ‘탄력받는다’ ‘본궤도 오른다’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시장은 그대로다. 그간 공영화가 무산되는 등 남모를 속사정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현대화 사업은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한 꼴이 됐다.
지지부진한 현대화 사업은 국내 수산업의 이미지도 갉아먹었다. 시설 노후화, 비위생적인 바닥 위판 방식은 생산 효율성을 낮출 뿐 아니라 수산물의 신선도를 떨어뜨린다는 우려를 샀다. 오죽하면 “부산공동어시장에 가 보면 고등어 먹기가 꺼려진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부산공동어시장과 비슷한 시기에 준공된 노량진 수산시장은 9년 전인 2015년 10월 현대화 사업이 준공됐다. 부산공동어시장은 1973년, 노량진 수산시장은 1971년 각각 현재 자리에 건립됐다. 물론 노량진 수산시장은 지금까지도 구 시장 상인과 서울시 간 갈등이 이어져 오고 있지만 시민의 소비 여건이 눈에 띄게 개선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국내 최대 산지 어시장인 부산공동어시장이 머뭇대는 동안, 노량진 수산시장은 인기 TV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에도 나오며 관광 명소로 도약했다.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는 올해도 어김없이 총선 공약에 올랐다. 초매식에선 박형준 부산시장이 “현대화를 차질 없이 추진해 체험 관광·물류 자동화를 두루 갖춘 최첨단 위판장으로 재탄생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과 7개 수협 조합장 등도 올해 상반기 착공에 뜻을 모았다. 물론 과거를 보면 단순 구호로 치부할 수 있지만, 관계 기관 모두 이번엔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올해가 사실상 현대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다. 기획재정부는 물가 상승분을 제외한 총사업비가 10% 이상 늘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현재 9.1%까지 사업비가 증액된 상태. 또다시 지연돼 공사비 등이 늘어 사업이 재검토되면 국비 비율이 지금(70%)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으로 임시 위판장 설치 여부를 두고 어시장과 부산시가 갈등을 빚고 있는데, 예산이 더 준다면 미래는 뻔하다. 현대화 사업 자체가 무산되거나 기약 없이 밀릴 것이다.
다행히 우려하던 물가 상승분 77억 원도 기재부와 줄다리기 끝에 올해 사업비에 반영했다. ‘대외 걸림돌’은 모두 해소됐다. 다만 부산시와 어시장, 수협 간 세부 설계안, 임시 위판장 설치 등을 놓고 ‘위태위태’한 내부 관계는 이어진다.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가 장기간 답보하면서 총사업비는 1700억 원에서 23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중 국비가 70%, 시비가 20%로, 현대화 사업은 명백한 공영개발이다. 어시장이든 조합이든 정치인이든 자신의 이권만 챙기려는 행태로 또다시 사업이 발목 잡히면, 시민도 더는 혈세 투입에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도 더는 ‘낚이지’ 않을 터.
부산공동어시장은 단순히 국내 수산업의 변천사를 간직한 지역 유산이 아니다. 연근해 수산물 유통의 30%, 고등어 위판량의 80%를 책임지는 국내 최대 산지 어시장의 명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AI(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수산업에 접목되는 시대에 최소한의 ‘변화’조차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건 한순간이다.
현대화 사업은 원도심과 연계한 관광·견학 프로그램 개발, 주변 재개발 활성화, 수산업 벨트 조성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부가 가치가 상당하다. 국내 수산업의 이미지 개선과 부산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더는 지체하면 안 된다. 현대화 사업으로 사라지는 야간 부녀반, 목재 어(魚)상자 등 유·무형의 유산은 기록을 통해 또 다른 볼거리로 활용될 것이다. 지역과 수산업을 모두 살릴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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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날씨 자녀 경보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밭에서 일하던 어르신이 온열질환으로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곤 한다. 장마가 물러나고 무더위가 시작되면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데 고령화가 심한 농촌이 기상 재난에 더 취약하다. 이상기후로 온열질환자가 급증 추세여서 농촌에 부모를 둔 자식들의 걱정도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발생한 온열질환자만 580명에 달해 역대 최대 기록도 갈아치울 태세다. 지난해도 역대 최대였고 32명이 사망했다. 발생 장소는 실외 작업장(32%)이 가장 많았지만 논·밭(14%)도 만만찮은 비율이었다.
최근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부산기상청의 ‘자녀 경보’ 서비스가 새삼 화제다. 기상청이 보호자에게 ‘내일 창녕 낮 최고기온이 31도까지 오르니, 외출 자제하고 물 자주 드시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라고 어르신들에게 안내 부탁드려요’라고 문자를 보내면 자녀가 ‘엄마, 오늘 폭염이래요. 밭에 나가지 말고 꼭 집에 계셔야 해요’ 하고 전화하는 식이다. 폭염 단계(관심·주의·경고·위험)에 따라 안내 메시지 내용도 달리한다. 날씨가 사람 생명이나 신체, 생활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 요령을 제공하는 ‘영향 예보’의 일환이다.
부산기상청 예보과 김연매 사무관이 처음 제안해 2022년 경남 창원시 대산면 한 마을에서 노인 25명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했고 지난해 경남 창녕군에 본격 도입했다. 창녕은 밀양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폭염이 극심한 지역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직원들이 창녕을 직접 찾아 어르신들을 만나고 자녀 연락처를 확보했는데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받기도 하고 기상청에 확인 전화도 줄을 이었다. 설득 끝에 정책 취지에 공감한 보호자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이젠 감사 전화도 받는다. 직원들은 한 건을 보내도 받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재난문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자녀 경보’가 도입된 지역에서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하지 않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밀양에도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점차 서비스를 확대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한덕수 총리가 재난 대응을 강조하며 ‘자녀 경보’를 소개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의 정성이고 집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슈퍼컴퓨터에 이어 인공지능(AI)이 기계학습을 통해 정확성을 높인 예보 모델을 개발해 곧 상용화한다고 하는 시대다. 아무리 디지털 문명이 발전해도 기계가 사람의 정성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