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2위 항만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산복도로까지. 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내믹 한 풍경이 있는 만큼 부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직업들도 많습니다. 이외에도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산일보는 이러한 분들을 '기자니아' 영상 콘텐츠에 담고 있습니다. ‘기자니아’는 ‘키자니아(어린이 직업체험 시설)’와 ‘기자’의 합성어로, 기자들이 직접 직업을 체험해 본다는 콘셉트입니다. 체험과 동시에 직업에 얽힌 부산만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담고자 합니다. 영상들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 혹은 유튜브에 '기자니아'를 검색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9일 열린 부산불꽃축제(이하 불꽃축제)가 100만 관람객의 환호 속에 광안리해수욕장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습니다. 엄청난 방문객이 광안리에 몰리는 만큼 매년 이곳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도 문제가 돼 왔습니다. 관람객들이 쓰레기를 거리에 마구 버리면서 해변 일대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기 때문인데요. 특히 부산에서 열리는 불꽃축제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가 해양쓰레기가 될 위험성도 있어 쓰레기 수거는 불꽃축제가 끝난 후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지난 9일 불꽃축제의 숨은 주역, 환경공무관이 돼 봤습니다.
이날 오후 7시께 아름다운 불꽃이 머리 위로 피어나고 있지만, 이를 즐길 새도 없이 부산 광안하수펌프장 앞에서는 노란 조끼를 입은 수영구청 소속 환경공무관과 기간제 근무자 50여 명이 청소 포대와 마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도 조끼를 받아 입고 쓰레기를 담을 포대를 전달받았습니다. 오늘 기자에게 할당된 구간은 삼익비치 쪽 해변가부터 민락동 방향까지의 해변 약 1km 구간의 해변로.
화려한 불꽃축제가 끝난 이날 오후 8시. 30분이 지나 인파들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가장 먼저 마주한 전봇대에는 성인 키 높이 기준 허리만큼 쌓인 '쓰레기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액체가 담긴 페트병부터, 먹다 버린 치킨이 박스에 담겨 그대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꽉 채우면 30~40kg 정도의 쓰레기가 담기는 대형 마대는 작업시작 2분 만에 가득 찼습니다. 5m 정도 전진했을 뿐인데, 대형마대는 5개는 쉽게 채울 수 있었습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며 나무라시던 어머니의 꾸중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가장 많았던 것 '은박돗자리'였습니다. 유료좌석이 아닌 백사장에서 축제를 관람한 이들이 사용한 것입니다. 일회용이 아님에도 방문객들은 그대로 돗자리를 버렸습니다. '여러 번 쓸 수 있을 텐데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가장 수거가 어려운 쓰레기는 액체가 든 '테이크아웃 컵'입니다. 액체를 따라 버리고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컵을 잘못 집어 들어 기자의 바지에 액체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아 버려도 괜찮을 옷을 입고 올걸'. 후회되는 순간입니다.
속상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줍고 있는 기자 옆에 차량 한 대가 정차했습니다. 갑자기 차 창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무 말 없이 쓰레기를 저에게 '투척'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청소하고 있으니 쓰레기를 줘도 되겠다고 생각했겠지'라고 위안하려다가도, 제가 쓰레기통이 된 것만 같아 언짢습니다. 납작해서 손으로 잘 집어 올리기도 힘든 담배꽁초를 열심히 줍고 있는 제 옆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버리고 가는 분들이 예삿일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고마움을 건네는 시민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고생하십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던지요. 쓰레기를 주워서 제가 들고 있는 마대에 직접 넣어주시는 천사 같은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속상함과 고마움이 교차되며 쓰레기를 주운 지 2시간 30분. 굽었던 허리를 쫙 피고 뒤를 돌아보니, 쓰레기 무덤은 온데간데없이 화려한 광안대교 불빛이 비추는 아름다운 광안리 해변로가 펼쳐졌습니다. 약 1km 정도 거리에서 발생한 대형 마대만 최소 10개가 넘었습니다.
불꽃축제가 아름다운 이유는 어쩌면 이곳을 깨끗이 치워주는 '환경공무관' 분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시민들이 화려한 불꽃을 눈에 담을 때 수거 장비를 챙기고, 불꽃 여운 가득한 귀갓길에는 옷을 버려가며 거리를 비우는 분들. 내년 불꽃축제 때는 꼭 쓰레기를 가져갈 수 있도록 봉투를 하나 챙겨야겠습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