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지방 자치와 지역 균형 발전을 외쳐도 중앙과 지방의 종속 관계는 변함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뉴스가 오늘 동시에 2건 있습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의 사용후핵연료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 건립 강행을 계기로 불거진 원전 주변지역 피해 영구화 우려가 지역별 전기료 차등 적용 이슈로 번지고 있습니다. 방사선 피해를 감수하며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 인근에 거주하는 부울경 주민이, 전기를 공급 받기만 하는 수도권 주민들과 같은 전기료를 내는 현실의 부조리를 바로잡자는 목소리입니다.
오늘은 주민 요구가 아니라,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도 비수도권 주민이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비까지 더해 비싼 전기료를 내고 있다고 분석한 사실이 연구 보고서로 확인됐다는 소식입니다.
한국환경연구원이 2021년 12월 말 발간한 ‘재생에너지 확산 이행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송전비 등 부수 비용을 고려할 때 현재의 단일 전기료 체제는 비수도권 주민이 수도권 소비자의 비용까지 부담하는 것이라며, 요금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재생 에너지를 전국에 고루 확산시켜 전력 소비지와 생산지가 가까이 유지되는 분산형 전력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작성되었는데, 연구 내용 중에 현재 전력 시스템과 과금 체계의 문제점이 언급된 겁니다. 보고서는 과거 10년 지역별 발전량과 수요 변화를 기반으로 2030년 지역별 전력 자급률을 예측했는데 서울은 5.7%인 반면, 부산은 179.9%로 약 31배 높았습니다. 비수도권 전체로는 132.6%, 수도권은 74.3%였습니다. 비수도권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에 보내느라 사용한 송전비가 2013년 기준으로만 3조 4700억 원, 2030년에는 4조 7000억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최소한 이 송전비에다,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을 새로 짓고 습식 저장조를 조밀화 하면서 더 커지는 원전 주변 지역의 위험부담까지 전기요금제 개편에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보고서는 전기료가 인하될 경우 영남권에서 3조 1120억 원의 경제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취업자가 2만 명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전기 소모가 많은 업종에서는 전기료가 경영 수지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기업 유치와 육성에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뉴스가 나오는 요즘, 정부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인데 아직은 눈에 띄는 반응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방자치제가 부활·시행된 것도 언 33년이 되었지만 아직 지방이 중앙에 종속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 또 하나의 사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 공모 과정에 구설에 오른 후보 선임을 강행하려는 국토부와 HUG 움직임입니다. 27일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주주총회를 연 HUG는 지난 8~9일 HUG 고위 관계자들을 불러 업무보고를 받고 인사를 논의했다는 의혹을 받는 박동영 전 대우증권 부사장을 최종 후보로 의결했습니다. HUG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과 국토부 내정 발표가 전광석화처럼 이뤄지고, 내정 발표 직후 HUG 임원들을 서울로 불러올렸던 박 전 부사장에게 부산은 무엇이었을까요? 지역 시민사회가 부적절하다고 후보에서 제외하라고 요구하는데도 이렇게 선임을 강행하는 것은,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한 취지에 부합하는 처사일까요? 사무실이 지역에 있고, 직원 몇 명 지역에서 뽑고, 주총만 지역에서 연다고 되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기사는 HUG가 ‘불공정의 아이콘’이 되었다고 질타합니다.
이와 별개로,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이나 관심이 부족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전국 첫 근현대역사박물관은 옛 미문화원(별관)과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본관)를 연계해 3월 1일 재개관하는 부산근현대역사박물관인데, 유물 조사연구와 전시 기획 업무를 담당할 학예직이 8명에 불과해 유물 발굴은 고사하고 제대로 전시 기획도 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피란수도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고 나설 만큼 부산의 근현대사는 파란만장한데 이를 발굴·보존·공유하는데 종사할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반면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사는 50명을 넘는답니다. 근현대역사박물관에 대해 부산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걸맞은 인력 배치 방안을 내놓기를 기대합니다. 시민 염원인 2030세계박람회 유치에도 이런 역사 복원과 기억 작업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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