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상한 장마입니다. 지겨울만큼 와야 그치는 게 원래 장마인데, 올해는 비구름 옮겨다니는 범위나 속도가 말그대로 ‘신출귀몰’입니다. 하늘 뚫린 듯 비를 쏟다가 갑자기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또 먹구름이 몰려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12일에는 예전 장마처럼 생각하고, 맑은 하늘 보며 점심 식사를 나갔던 사람들이 비를 쫄딱 맞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아, 누적 강수량보다 시간당 강수량의 의미가 훨씬 더 커졌습니다.
이런 장맛비가 이번 주말까지 부울경에 150mm가량의 비를 뿌린다는 예보입니다. 14일 오전 호우예비특보가 내려지는데, 시간당 최대 80mm의 강한 비가 내리는 곳도 있겠다는 전망입니다.
국지성 호우가 잦을수록 빗물을 저장할 곳이 부족한 도심에서는 배수 설비가 중요합니다. 꼭 3년 전 이맘때 기록적 폭우가 쏟아져 초량지하차도가 급격히 불어난 물에 침수되면서 3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었지요. 이런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도로변 빗물받이와 악취차단판 설치 예산도 크게 늘어 올해만 부산시가 4억 원을 지원했다는데요, 이런 시설들이 제역할을 할 수 있는지 점검을 해봤습니다.
부산 중앙동 골목에 있는 빗물받이 20개를 살펴보니 14개에 덮개가 덮였고, 주요 번화가 거리도 절반 이상이 장판이나 다른 물건들로 막혀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번화가 주변 상인들은 하수구 악취 때문에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힙니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고 덮개 아래 악취만 막는 차단판을 설치한 곳도 있는데 소형 시설이어서 관리가 소홀하다보니 파손되기 일쑤랍니다. 침수를 막기 위해 혈세를 써가며 설치한 시설인데 막상 필요할 때 역할을 못하게 되는 겁니다.
장마철을 앞두고는 행정 당국의 배수설비 점검과 관리가 지금보다는 치밀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고, 시민들도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빗물받이에 던져 넣는 행위를 근절할 필요도 있습니다. 상인들이 호소하는 냄새의 원인이 이런 쓰레기들인 경우도 많고, 이 쓰레기들이 빗물받이 철망 사이를 막아 빗물 흐름을 막기 때문입니다.
한편, 어려운 법률용어로 가득차기 마련인 법원 판결문에서 모처럼 사람 냄새가 난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피고는 매일 술을 마시고, 부인과 자녀를 때리고 협박한 가정폭력 가해자 A씨. A씨는 9살 아이가 독후감을 마음에 들지 않게 썼다, 밥주걱에 밥풀을 묻혔다는 등의 이유로 흉기로 위협하거나 목발로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A씨 부인은 고막이 찢어지는 피해까지 입었지만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약 1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부산지법 서부지원 백광균 부장판사는 지난 7일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CCTV 영상 등 뚜렷한 물증이 없으면 생각보다 형량이 높지 않았기에 피해자 측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판사에게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백 판사는 판결문에서 ‘폭력에 의존해 전근대 사회에서나 통용될 가부장 행세를 일삼은 피고인’, ‘피고인처럼 함부로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경종 울려야 한다’, ‘피고인은 10년 넘게 매일같이 술에 취해 아무 잘못 없는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폭력을 끊임없이 반복해 ~(중략) 여리디 여린 몸과 마음에 영영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며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사건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뚜렷이 밝혔습니다. 찾아보니 백 판사는 부산변호사회 2014년 법관 평가 상위 10인에도 포함됐었네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봤던 것처럼 억울한 피해를 당하다 기댈 곳 없어 법정으로 찾아온 피해자들과 진심으로 공감하는 법조인에게 시민들은 큰 위로를 받고, 지지를 보냈습니다. 만인 앞에 평등한 냉철한 잣대를 갖되, 억울한 피해자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도 내미는 사법기관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