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전국에 쏟아진 비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이 17일 오후 기준 49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간 것도 아니고, 때마다 찾아오는 장마에 이렇게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3년 전 7월 23일 밤 초량지하차도가 기습폭우로 불어난 빗물에 침수되면서 차 안에 갇힌 3명이 숨지는 사고를 겪었기에, 충북 오송에서 발생한 대규모 침수 참사는 왜 매번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지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안타깝고 참담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부산에서는 초량 참사 후 지하차도 21곳에 침수 우려 상황 자동·원격 차단시설을 구축해 통제 기준인 15cm 이전부터 엄격하게 통제하는 체계가 갖춰졌다고 합니다. 일반 건물 지하주차장 등 민간 부문은 아직 통제가 어렵고, 예산 문제로 배수펌프가 확충되지도 못했지만, 최소한 일반 지하차도만큼은 위험하면 차가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차단 시스템을 구축한 겁니다. 하지만 침수 사고 4시간 전부터 홍수 경부가 났는데도, 오송 지하차도는 다른 통제지역을 우회한 노선버스까지 아무 제지 없이 다니게 했습니다. 3년 전 초량지하차도 사고의 위험성과, 이를 막을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구축하는 행정력이 갖춰지지 않았던 겁니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때도 진실 규명과 책임을 다하겠다며 자리를 지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무엇을 했는지 답답합니다.
인파가 넘치는 골목 양쪽에 통제 인원을 배치하지 않아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이나, 홍수경보에 바로 옆 제방이 무너지는데도 400m나 되는 지하차도 양쪽을 막지 않은 오송이나 결국 통제 실패였습니다. 이런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국가와 행정의 기본 소명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입이 아프게 외쳐도 ‘쇠 귀에 경읽기’처럼 똑같은 참사가 반복됩니다.
지역경제를 일으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시민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 행정력의 미비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시지탄이지만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형 사고의 유형을 체계화 하고, 우수한 예방 대책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대책을 행정안전부가 시급히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더 크게 보면 이번 장마(정체전선)는 국지적으로 짧은 시간 엄청난 비를 쏟아붓는 양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후과입니다. 기후재난에 대비하는 정부와 지자체, 개인의 대응 태세도 이런 상황 변화에 맞게 격상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17일 부산지법에서는 2가지 공판이 관심을 모았는데요, 부산 영도에서 등굣길 참변을 당한 고 황예서 양 아버지가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어망실 제조업체 대표에 대한 형사 처벌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그는 스쿨존 위험도 전수조사를 실시한 부산시가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해 “민원이 두려워 결과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처사가 아니어서 제2, 제3의 예서를 만들 수 있는 행위”라고 작심 비판했습니다. 이 경우도 ‘돈보다, 속도와 효율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원칙으로 접근한다면, 개선 대책과 함께 위험 지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행정 신뢰도를 높이는 길일 것입니다. 숨기고, 미루는 행정으로는 예서 양과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법정에서는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포럼을 설립해 선거사무소처럼 운영한 혐의(지방교육자치법 위반)로 기소된 하윤수 부산교육감에 대해 검찰이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700만 원을 구형했습니다. 오는 8월 21일 선고 공판이 이뤄지는데, 벌금 100만 원 이상 형이 확정되면 교육감직을 상실합니다. 임기 중인 하 교육감으로서는 3심제를 충분히 활용해 대법원까지 법적 방어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지방교육당국의 책임자로서 선거 절차에서의 정당성에 흠집이 발생한 것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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