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불행할 순 없었다.” 난 21일 대낮 서울 신림동 거리에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힌 30대 남성 현행범은 경찰 진술에서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두 달 전 부산에서는 과외 아르바이트 앱으로 대학생을 유인해 잔인하게 살해한 20대 여성 정유정도 있었습니다.
SNS를 통한 자기 과시가 일상화 하고, 매일같이 0.1% 성공한 사람들과 벼락부자들의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갑니다. ‘나만 왜 이렇게 불행한가’ 하는 생각이 쌓이고 쌓이다 그 분노가 겉잡을 수 없어지면 묻지마 범죄 형태로 표출됩니다.
또 반대편에서는 알량한 돈과 권력의 힘을 믿고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힘깨나 쓰고, 돈깨나 있다는 서울 서초동에서는 갑질 학부모들이 젊은 선생님을 휘두르다 선생님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핵물리학자인 부산대 유인권 교수는 오늘 칼럼에서 아비규환인 이 세상에서 힘과 권력만 있으면 나와 내 가족은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어리석음인지를 지적합니다. 과거에는 수만 년에 걸쳐 일어난 지구 온도 상승이 지금은 단 수십 년 만에 일어납니다. 5년 내 지구 온도가 마지노선인 1.5도 이상 오를 확률이 66%랍니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파국의 파장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돈으로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각자도생이 유일한 생존논리로 추앙받는 시대, 유 교수는 그럼에도 절멸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미래를 지금이라도 모두가 인지하면 뭔가 바뀌지 않을까 실낱 같은 희망을 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로와 미래를 살릴 궁리를 하자는 제안까지 합니다.
아수라판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어디서나 펼쳐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고,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서도 기꺼이 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 힘들게 모은 돈을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들은 올 연말에도 나올 겁니다. 이런 분들은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공감하는 마음, 내 손해와 이익을 따지지 않고 나누는 마음이 공통점입니다. 이 관점에서, 우리들의 ‘마음 고쳐 먹기’가 아비규환을 조화롭고 질서잡힌 세상으로 바꿔나가는 시발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에에 끝장을 보려하지 말고, 내 다음 세대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하는 것, 이것이 개심(改心)의 출발점일 것입니다. 나와 다음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다음 세대의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신림역 살해범 조 씨가 말하는 "나만 불행할 순 없었다"는 말과, 유 교수가 얘기하는 '나만 살 수는 없다'는 마음을 잇는 길을 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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