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트 시티’에는 불, 물, 공기, 흙 등 4개 원소가 살고 있습니다. 불의 민족인 ‘앰버’는 물인 ‘웨이드’와 도저히 섞일 수 없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경계는 사랑 앞에서 허물어집니다. 지난 14일 개봉한 디즈니·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엘리멘탈’은 한국계 미국인 피터 손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불의 자치구에 살고 있는 앰버입니다. 쾌활하고 열정적이지만 말 그대로 불같은 성격을 가진 앰버는 이민자 2세입니다. 전통적 가부장제 가정에서 자란 앰버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아빠 ‘아슈파’는 앰버가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 가게를 물려주겠노라 약속하고, 앰버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슈파 가족은 전형적인 한국인 이민자 가정을 상징합니다. ‘아슈파’라는 이름부터 한국어 ‘아빠’에서 따왔고, 가게 외형은 아궁이를 닮았습니다. 아슈파는 엘리멘트 시티로 이민 오기 전에 가족들을 향해 큰절을 했는데, 실제로 밀양 출신인 피터 손 감독의 아버지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가족들에게 큰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엘리멘탈’은 앰버의 성장을 통해 사랑과 평등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합니다. 영화엔 직간접적인 메타포들이 많습니다. 불의 민족은 여러 원소가 섞여 살아가는 도심에선 평범하게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나무를 태울 수 있다는 이유로 식물원 출입을 금지당하는 등 차별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물의 종족은 물론이고, 물의 편의에 맞게 지어진 각종 기반 시설들은 불의 민족에게 불편을 유발합니다. 존재 자체로 밝게 빛나는 앰버는 어두운 영화관에선 주변 관객의 시야를 방해하는 민폐 빌런이 됩니다.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쓰고 잔뜩 위축된 앰버의 모습은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재치와 열정을 누른 채 수동적으로 살아가던 앰버는 유쾌하고 감성적인 물 웨이드와 만나며 변화를 겪습니다. 첫 만남은 최악이었지만, 둘은 점점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며 가까워집니다. 웨이드는 환히 빛나는 앰버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꿉니다. 앰버는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앰버의 마음에 자리 잡은 장벽이 둘을 가로막습니다. 차별에 대한 기억으로 물을 증오하는 아슈파가 딸의 교제 사실을 알게 되면 길길이 날뛸 게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착한 딸이 되고 싶은 앰버는 가업을 물려주겠다는 아빠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불과 물은 결코 함께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불과 가까이 있을 때 물은 증발해버리고, 불은 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절대 섞일 수 없어 보이는 두 원소가 끝내 화합하는 과정은 자연스레 감동을 유발합니다. 차별과 혐오를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렇게 편안하게 풀어내다니, 기발합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지만, 아이들도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입니다. ‘엘리멘탈’은 픽사 영화답게 눈을 즐겁게 하는 영상미를 뽐냅니다. 의인화된 원소들은 귀엽고 매력적입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메시지와 어우러지니 몽글몽글한 감정이 샘솟습니다. ‘굿 다이노’(2016)로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피터 손 감독은 이 작품으로 칸에 초청됐습니다. ‘엘리멘탈’이 제76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겁니다. 당시 무대에 오른 피터 손 감독은 “(‘엘리멘탈’은) 저희 부모님을 모티프로 한 영화다. 1970년대 초 한국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민해 새 삶을 시작하셨다”면서 “위험을 감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 다 다르지만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러브스토리”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원소를 캐릭터로 만들어낸 데는 3D 애니메이터인 이채연의 역할도 컸습니다. 그 역시 한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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