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 국제 기사를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영화 촬영차 방문한 이탈리아 남부 휴양지에서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가 돌려받았다는 기사였습니다. 기사를 읽다가 해리슨 포드가 벌써 79세라는 사실에 놀라고, ‘인디아나 존스 5’를 촬영 중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42년을 이어온 시리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1944년의 한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중년의 얼굴을 한 인디(해리슨 포드)가 유물을 구하기 위해 나치에 잠입했다가 들통나 펼쳐지는 액션씬입니다. 젊어진 인디는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열차 지붕을 뛰어다니며 관객을 흥분시킵니다. 중년으로 돌아간 포드의 얼굴은 ‘디에이징’ 기술 덕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종전에는 포토샵으로 주름을 지우고 피부 톤을 밝게 하는 수준이었는데, 특수효과 기업 'ILM'이 제작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나이를 되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인상적인 도입부가 끝나면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1969년의 미국이 펼쳐집니다. 흰머리를 한 인디는 고고학 교수직에서 은퇴할 정도의 나이가 됐습니다. 인디는 이제 조용히 살기를 바라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또 다시 모험을 떠납니다. 나치 열차에서 생사를 함께 넘나든 고고학자 친구 ‘바질 쇼’(토비 존스)의 딸 ‘헬레나’(피비 월러 브리지)가 불편한 동료가 됩니다. 이번 작품에서 인디가 찾아야 할 보물은 아르키메데스가 발명한 원형 숫자판 ‘안티키테라’입니다. 애초 인디는 나치 열차에서 확보한 안티키테라의 반쪽을 갖고 있었지만, 나머지 반쪽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타임머신의 일종인 안티키테라가 완성되면 ‘시간의 틈’을 통해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치 열차에서 만났던 과학자 ‘위르겐 폴러’(매즈 미켈슨)가 네오나치 일당과 함께 안티키테라를 찾아 과거를 바꾸려 한다는 겁니다. 영화는 세월의 야속함을 억지로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머리는 백발에, 얼굴은 푸석해졌고, 근육이 처진 해리슨 포드는 두 발로 전력질주 하는 것조차 힘들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화 속 인디가 보여주는 액션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박력 넘칩니다. 말을 타고 도심 퍼레이드 한복판에 뛰어들고, 인디 특유의 투박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펀치도 지체 없이 날립니다. 모로코 골목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액션 씬을 비롯해 영화 중반까지 시원시원한 액션이 이어져 지루할 새가 없습니다. 다만 뒷심은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전개가 다소 늘어지면서 지루한 구간이 있습니다. 위치추적 장치라도 심은 듯 결정적일 때마다 인디를 방해하기 위해 눈앞에 등장하는 악당들과, 그런 악당들에게서 그리 어렵지 않게 벗어나는 인디 일행의 억지 ‘티키타카’가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주연급인 ‘헬레나’와 조연인 ‘테디’ 캐릭터의 존재감도 아쉽습니다. 캐릭터 자체의 역할은 작지 않지만, 이들이 인디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과정에서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그래도 상상력이 가미된 후반부 시간여행은 흥미진진합니다. 또 비행기 공중액션이나 해저 탐사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블록버스터 본연의 재미를 보장합니다. 4DX 포맷으로 감상했더니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모션체어의 격렬한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인디의 시그니처인 카우보이 모자와 채찍, 그리고 메인 테마곡 ‘레이더스 마치’(Raiders March)는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실제로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4050 세대에게 인기입니다. 관람객 통계에 따르면 30일 오후 2시 현재 ‘운명의 다이얼’ 관람객 중 40대와 50대의 비율이 62%(40대 30%, 50대 32%)에 달합니다. 한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1∼4편을 흥행시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선 총괄 제작자로 참여했고, 연출은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맡았습니다. 스필버그는 제작 초기 단계부터 인디 역에 포드가 아닌 다른 배우를 캐스팅할 가능성은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드 역시 외신 인터뷰에서 “나는 인디아나 존스다. 내가 죽으면 그는 없다”며 여전한 열정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운명의 다이얼’로 지난달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포드는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전작들처럼 가족애라는 핵심 메시지로 마무리됩니다. 맨골드 감독은 ‘운명의 다이얼’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가족을 위한 오락 영화”라며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액션과 연기가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최근 액션 영화들을 보면 액션 자체에 집중해 폭력적인 요소도 많다”고 지적하며 “‘인디아나 존스’는 액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고, 전반적인 스토리텔링이나 감정을 함께 유지했다는 점에서 좀 더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