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자 수익의 확대는 이자율의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출 총량의 급증에 따른 것이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1년 새 늘어난 4대 은행의 대출 규모는 100조 원에 육박한다. 우리 사회의 빚이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대출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상징하는 현상이다. 집값만 보더라도 소득으로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치솟아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자영업자도, 기업체도 다르지 않다. 빚의 악순환에 대출만 계속 쌓이는 형국이다.
이렇게 빚지는 사회를 만들어놓은 정부는 대출을 풀었다 조였다 하는 단순 정책만 반복하고 있다. 그마저도 지난 1년간 잇단 실기(失期)로 점철됐다. 2023년 10월 윤석열 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금융 당국은 대출 이자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은행에 주문했더랬다. 은행이 마지못해 대출 금리를 내렸으나 정책 의도와 달리 부동산 시장이 출렁거렸다. 대출 규모가 급증하면서 부동산 거래가 늘어나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의 금리 부담을 덜어주려던 취지가 현실에서는 엉뚱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둘러싼 논란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DSR은 대출자의 전체 금융 부채 원리금 부담을 소득 수준과 비교한 지표다. 금융 당국은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DSR을 강화하는 2단계 시책을 지난 7월에 시행하려다 2개월을 미뤘다. 그 사이에, 돈을 더 빌려놓자는 대출 심리가 자극받았고 실제로 대출 급증과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융감독원이 정반대 카드를 꺼낸 것이다. 지난달부터 은행권에 대출 축소, 심사 강화 같은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은행권의 역대급 이자 수익이다.
■ 서민들 고충 언제까지
정부가 가계부채 억제와 부동산 시장 활성화라는 상반된 정책을 동시에 펼친 탓이 크다. 창과 방패를 함께 쓰는 격인데, 당연하게도 시장은 혼란을 피할 길이 없다.
문제는 내년에도 이런 현상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정부가 서민 주거비 부담 경감 명목으로 내년에 55조 원 규모의 부동산 정책 상품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게 얼마 전이다. 그렇게 되면 올해도 동일한 현상이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가계대출 급증-부동산 시장 불안-은행권 이자 폭리로 이어지는 현실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지금 정부가 모순된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이를 섬세하게 관리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부동산 부양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정책 수정을 하지 않으면 가계부채, 은행권 이자 장사 등의 문제는 해소되기 힘들다. 무엇보다 서민들의 피해와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지 그게 걱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