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조선(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중국포위망을 펴고 있다. 아시아에 `또 하나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한국이 이에 가담하면 (우크라이나 같은) 또 하나의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이 사드를 받아들이면 인민해방군은 동북지구에 강력한 부대를 전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중미 양국 군대가 충돌하는 대단히 민감한 지역이 된다."
지난 2월 16일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 참석차 서울에 온 장예쑤이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이 임성남 외교부 1차관에게 했던 협박에 가까운 경고다. 주유엔대사와 주미대사를 역임한 베테랑 외교관 장예쑤이는 외교적 수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강경한 태도로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HAD) 도입 결정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구축해온 밀월관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것이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1992년 국교수립 이후 최고 수준이라는 한중관계는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신뢰관계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중국경사 또는 친중이라는 미일 양국의 낙인도 감수해야 했다. 지난해 9월 3일 열린 항일전쟁승리 70주년 행사에 미국과 일본은 주중대사를 참석시켰지만 박 대통령은 직접 참석했다. 중국의 최신예 무기가 동원된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을 때 시 주석은 자신의 오른쪽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박 대통령을 나란히 세워 우대했다.
매년 상대방의 생일에 친필 축하 서한을 교환할 정도로 친분을 과시해왔던 두 정상 간 관계는 올해 들어와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물론 그 원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그리고 사드문제였다.
북한이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을 한 데 이어 2월 7일 장거리 로켓 광명성 4호 발사 실험을 단행하자 한미 양국 군 당국은 사드의 배치 가능성에 대한 공식 협의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선 2월 5일 시 주석은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드 배치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설득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사드는 북한을 겨냥한 것이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사드 배치를 정당화했다.
2월 12일 왕이 외교부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가 중국의 안전과 국익을 해친다고 미국을 비난했지만, 한미 양국은 스텔스전투기와 핵추진 항모를 동원한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고 강조해왔던 박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영향력에 기대를 걸었지만, 중국의 능력과 의지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3월 31일 워싱턴 핵안보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한중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확인과 대북 공조 강화라는 표면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드문제를 둘러싼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7번째 한중 정상회담은 사실상 `결렬'되었다.
안보문제를 고려할 때에는 어떤 위협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으로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며 "이미 수차례 밝혔듯이 사드는 북한 이외의 어떤 제3국을 겨냥하거나 제3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또 할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 효과가 점차 가시화(6월 23일 청와대 전군주요지휘관과의 오찬에서의 박 대통령의 발언)되는 상황에서 6개 발사대와 48개의 미사일로 구성된 사드 1개 포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방사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유효한 수단이 될지 의문이다.
일본이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데 이어 미일방위협력지침의 재개정을 통해 중국 견제를 위한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 차원의 사드 배치 결정은 중국에게 한국의 배신행위로 비춰질 것이다. 방어용이라는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드는 북한의 비핵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 나아가 대박 통일을 이루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 여부에 관한 공식 협의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스스로를 루비콘 강의 격랑 속으로 몰아넣어 외교적 입지를 좁히려는 이유도 찾기 어렵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지 않은 지금 서둘러 결정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한국의 대통령 선거와 시진핑 집권 2기가 시작되는 내년까지 주변 환경과 여건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학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저작권자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