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박사의 글로벌 時事 펀치] 일본 비핵정책의 이면 - 기시, 사토 그리고 아베

입력 : 2016-06-07 11:45:28 수정 : 2016-07-25 16:07:16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지난 5월 27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최초의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피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폭피해자위령비에 헌화한 오바마 대통령은 핵 보유 국가들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추구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 아베 총리도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과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핵 없는 세계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줬다고 높게 평가했다. 최초의 원폭 사용자와 피해자인 양국 정상이 핵 폐기에 대한 결의를 함께 천명한 것 자체는 큰 정치적 의미가 있다.

전후 일본의 핵정책은 유일한 핵 피해국가로서 핵 폐기라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핵 억지력에 의존하는 모순적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런 뒤에는 아베 총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그의 친동생인 사토 에이사쿠라는 두 전 총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1954년 3월 미국은 비키니환초에서 수소폭탄실험을 했다. 부근에서 참치잡이를 하던 일본 어선이 `죽음의 재'를 뒤집어쓰면서 일본 내에서 반미감정과 반핵 움직임이 거세졌다.

3년 뒤인 1957년 2월 총리가 된 기시는 4월 2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위권 차원에서도 일본 헌법은 핵무기의 보유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고다키 아키라 방위청 장관도 참의원 내각위원회에서 `공격용 핵무기의 보유는 위헌'이라는 것이 일본 정부의 견해라고 밝혔다.

그러나 5월 7일 참의원에서 기시 총리는 `자위를 위한 핵무기' 보유는 합헌이지만 정책으로서 핵무장은 하지 않겠다고 말해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이것은 일본의 핵 보유 여부는 헌법이 아니라 내각의 정책판단에 의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후 역대 내각은 이런 입장을 답습하게 된다.

1964년 10월 중국의 핵실험 성공은 일본의 핵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해 11월 총리가 된 사토는 한 달 뒤인 12월 라이샤워 주일미국대사와 만나 "만약 상대(중국)가 핵을 가지고 있다면 나도 갖는 것이 상식이다. 일본의 여론은 이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잠재적인 적의 핵 위협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억지론이다. 1965년 1월 존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사토는 개인적으로 중국이 핵을 가지면 일본도 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에게 사토는 위험한 `핵무장론자'로 비춰졌으며, 핵의 확산을 막기 위해 존슨은 `핵우산' 제공을 일본에 약속했다.

사토는 1968년 1월 국회 시정방침 연설에서 핵을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겠다는 `비핵 3원칙'과 함께 `핵 폐기와 핵 군축' `미국의 핵 억지력에 의존' `핵의 평화적 이용' 등 소위 `핵 4정책'을 내놓았다. 

이를 높이 평가받아 사토는 197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당시 미국 보유 핵무기의 상당수가 해외기지나 해군함정에 탑재되어 전방전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사시 미국의 핵에 의존하는 것과 반입 금지는 당초부터 논리적으로 이율배반적인 것이었다.

또한 당시 외무성과 방위청(자위대)을 중심으로 수면 하에서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특히, 1969년 9월 외무성 외교정책기획위원회가 작성한 기밀문서 `우리나라의 외교정책대강'에는 "당분간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는 정책을 취하지만 핵무기 제조의 경제적·기술적 포텐샬(능력)은 항상 보유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간섭을 받지 않도록 배려한다"고 지적되어 있다.

1969년 2월 외교정책협의를 위해 방문한 서독의 에곤 바르에게 스즈키 다카시 외무성 국제자료부장은 "일본은 안보문제의 해결을 미국에게 맡겼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평화적 이용을 위한 원자력 개발 및 로켓 개발을 목적으로 한 연구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로써 일본은 필요하다면 원자력 개발과 로켓 연구를 연계해 Korea(북한을 가리킨다고 함) 등으로부터 위협이 발생할 경우 핵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2015년 8월 참의원 평화안전법제 특별위원회에서 기시다 후미오 외상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체약국으로서 조약을 성실하게 이행하기 위해 핵무기를 갖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법률 심사와 해석을 관장하는 내각법제국의 요코바다케 유스케 장관은 "헌법상 (핵을)보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나아가 요코바다케는 지난 3월 1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헌법상 (핵무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요컨대 일본은 ①헌법상 핵무기의 보유와 사용은 금지되어 있지 않다. ②정책으로서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는다. ③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경제적·기술적 능력을 확보해둔다는 정책을 일관해서 추구해왔다. 

또한 일본은 비핵국가로서는 유일하게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 받았을 뿐만 아니라 최대 핵시설과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핵 없는 세계를 주창하는 오바마가 향후 30년 동안 1조 달러 이상을 들여 사상 최대 규모의 핵무기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도 비핵 3원칙,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핵 폐기라는 고매한 이상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핵무기 제조 능력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북한의 핵능력 강화에 대항하기 위해 적어도 한국이 핵개발 선언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은 일본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학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저작권자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